오베라는 남자, 73쪽
사람들은 오베가 세상을 흑백으로 본다고 말했다.
하지만 그녀는 색깔이었다.
그녀는 오베가 볼 수 있는 색깔의 전부였다.
(오베라는 남자, 73쪽)
자신에게 주어진 세상이 흑백에서 색깔로 바뀌는 대상이 나타나는 때가 있다. 그 대상은 자신의 삶에 대한 방향, 무게를 바꾸기도 하고 때로는 자기 자신의 가치관과 세상을 바라보는 느낌을 바꾸기도 한다.
이성이거나, 멘토거나, 아니면 절대자 신이 대상이 될 수도 있고, 어떤 활동이나 책 또는 사건이 될 수도 있다.
그것은 지금까지 내가 이해하고 바라보았던 세상이, 더 이상 과거의 그것과 같을 수 없다는 어떤 영적인 깨달음을 동반한다. 그리고 그 이후 내 삶은 완전히 바뀔 수밖에 없는 자발적인 강요를 강제한다.
그러니까 오베가 만난 색깔의 전부는 기쁨, 환희, 격정, 열정, 새로움, 눈부심, 설렘, 기대, 행복 같은 단어들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제 그가 보는 세상은 이전의 것과 달라졌다. 더 이상 우울하고 우중충하고 잿빛 하늘일 수 없다. 흔들리는 바람만으로도 가슴이 뛰고, 그녀를 생각하기만 해도 머리가 아찔해지며, 영롱한 햇빛은 오로지 그와 그녀만을 위해 비치는 것이다.
영화 “쉰들러 리스트”는 전체적으로 흑백영화로 분류된다. 배경을 흑백으로 처리함으로써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은 역사적 사실감과 극적 긴장감을 높이는데 마지막 부분에 여자 아이 하나가 빨간 코트를 입고 나타나도록 한다.
이 기법은 당시 꽤 충격적인 장면으로 세간에 회자되었는데, 오베의 세상은 스필버그의 그것과 또 다르다. 스필버그는 오직 한 소녀에게만 색깔을 입혔지만, 오베에게 나타난 그녀는, 오베에게 편재해 있는 흑백 세상에서 그녀만 하나의 색깔로 입혀지는 것이 아니다.
그녀를 만남으로 인해 오베의 눈이 바뀌는 것이다. 체질이 바뀌고 생각이 바뀌고, 결국 세상이 바뀌어 버리는 것이다.
그렇게 세상은 총천연색으로 바뀌고 만다.
누구에게나 흑백 삶은 존재한다. 과거일 수도 있고 현재일 수도 있으며, 어쩌면 미래일 수도 있다.
그러나 우리는 그녀를 만날 때(만날 수 있다.) 잿빛 하늘은 사라질 것이다. 하늘은 청명해지고 푸르러지고 하얀 구름이 피어오를 것이다.
내 삶을 눈부신 색깔로 만들어줄 그녀는 누구일까. 아니, 흑백의 삶에서 색깔의 삶으로, 빛의 향연으로 들어왔다면, 나를 그렇게 만들어준 그분은 누구인가. 눈을 감고 흑백이었던 때를 떠올려 본다.
그렇다.
나는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데,
당신을 만나기 전까지 내 삶은 우중충한 회색이었다.
그러나 당신을 만난 뒤부터, 당신이 내 삶에 자리한 뒤부터
세상은 총천연색으로 바뀌었다.
당신으로 인해 내 삶은 색을 입게 되었고,
당신이 준 책으로 인해 색을 볼 수 있는 눈을 뜨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