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은 지기 위해 핀다

혼불1, 54쪽

by 봄부신 날

"그 들판은 매화낙지다.
산에 가로 막혀서 더 뻗어나가지 못한 것이 서운은 하다만,
땅의 지세가 아주 좋으니라."
"매화낙지?"
"매화 매, 꽃 화, 떨어질 락, 따 지. 그렇게 쓰지."

"꽃이 떨어지는데 무엇이 좋은가요?"
"이 사람아. 꽃은 지라고 피는 것이라네.
꽃이 져야 열매가 열지. 안 그런가?"
(혼불1, 54쪽)


(책꼬리단상 49)매화_혼불.JPG



인생을 오래 산 할머니가 이제 한창 꽃다운 열다섯 소년에게 답한다.

꽃은 지라고 피는 거라고.

꽃이 져야 열매가 연다고.


나도 어른이 되고 나서 한참이 지나서야

꽃이 진 바로 그 자리에

열매가 생긴다는 것을 알았다.


자연과 벗하여 살지 못한 잘못이 그런 무식함을 낳았다.

그것을 모르고도 잘만 살았다.


그러나 이제는

꽃뿐만 아니라

우리 삶이 모두 그렇다는 걸 깨닫는다.


꽃은 지기 위해 피는 것.

한창 혈기 넘치던 20대가 지나야

꽃다운 청춘을 다 바쳐 땀을 흘린

그 자리에 비로소

삶의 경험과 지혜가 담뿍 밴

알찬 열매가 맺힌다는 걸


슬픔, 고통, 땀의 무게가 클수록

환희, 열정, 기쁨의 깊이가 깊을수록

열매는 더 달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 소금의 결정체들이 모두

귀한 거름이 된다는 것을 몰랐다.


그 순간순간의 웃음과 눈물이

모두 소중하다는 걸

하나도 버릴 게 없다는 걸 몰랐다.


그것이 모여

지금의 내가 되었다는 걸 몰랐다.


꽃은 지기 위해 핀다는 진리를

가슴으로 받아들인다면

땅에 떨어져 사람들에게 짓밟혀도

땅에 떨어진 그 낙화가 아니라

아직 저 나무 위에 탐스럽게 매달린 열매일지니


그 속에 나를 닮은

새 생명을 품고 있는

내 분신이 숨을 쉬고 있을 터이니


나는 짓밟혀도

나는 사라져도

이제 기쁨의 눈물을 흘릴 수 있다.


아직 슬픔이 우리에게 있고

아직 고통이 우리에게 있고

아직 땀방울 하나가 우리에게서 떨어져 나간다면

우리에게는 아직 기회가 있다.

아직은 사라질 때가 아니다.


당신이 살아 있고,

내가 당신을 사랑하는 한,

우리는 우리의 사랑이 지는 걸 보기 위해서라도

열심히 사랑의 꽃을 피워야 한다.


(책꼬리단상 49)매화2.JP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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