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확인

천 개의 파랑, 천선란

by 봄부신 날

[누구를 먼저 구할 것인가 - 사랑의 확인]


“보경과 보던 텔레비전 프로그램에서요. 거기서 바다에 빠지면 누구를 가장 먼저 구할 거냐는 질문이 나왔어요. 그게 소중한 사람의 순위를 매길 때 사용되던데…. 그런데 참 이상한 비유예요. 왜 꼭 절망의 상황에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믿는 걸까요? 가장 좋아하는 케이크를 누구에게 먼저 줄 거냐는 비유도 할 수 있을 텐데요.”


“좋아하는 걸 나누는 건 쉽게 할 수 있잖아. 근데 절박한 상황에서 구할 수 있는 건 특별한 사람이 아닌 이상 잘 못 해.”

“왜죠?”

“나도 잘 모르는데?”

“그럼 연재는 열 명의 사람이 바다에 빠졌을 때 그 속에서 지수를 가장 먼저 구할 건가요?”

“빠진 아홉 명이 내가 모르는 사람이면? 근데 나는 애초에 걔랑 바다 근처에 가지는 않을 건데.”


(천 개의 파랑, 천선란 저)



참으로 짓궂은 질문이다.

사랑을 획인할 때 사람들은 가끔 이런 곤란한 질문을 던진다. 쟤와 나 중에 누구를 먼저 구할 거야?

여기서도 MBTI가 발동된다면, 가령 나는 이런 생각을 먼저 한다.


"나는 수영을 못 해.

내 마음은 너무 아프지만

나는 너를 구해줄 수 없어."


맥락은 '수영'이 아니라, 누구 먼저,다.

알면서도 이런 질문 앞에 서면, 그 상황을 먼저 떠올리고 현실적인 생각과 가능성을 점친다.


수영 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지. (찾아지겠니?)

119에 먼저 신고하고, 나는 발을 동동 굴리겠지. (최선을 다한 거야.)


이런 생각도 애초에 이 문장을 보고 글을 쓰려 했던 초점을 벗어났다. 그것도 한참.


애초에 그런 가정 자체가 잘못이다. 우리는 그런 상황 앞에 절벽처럼 마주하면, 아무 생각도 떠오르지 못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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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굴 먼저 데리고 나올 것인가.

만약 헤엄치는 것에 대한 가정 때문에 사고의 회로가 막힌다면. 집에 불이 났다고 해보자.


가령, 배우자, 아이들, 그리고 부모님과 함께 잠을 자는데, 불이 나서 누군가를 구해서 데리고 나와야 한다면, 단 한 사람만 구할 수 있다면 그건 누구인가.


사실 이런 질문은 잔인하다. 사랑을 확인하는 게 아니라, 사랑이라는 채찍으로 상대를 갈가리 찢는 것과 같다.


심리학자의 연구에 따르면 위급한 상황이 생기면 사람은 생각을 깊게 하지 않는다. 본능에 따른다.


가까이에 있는 사람, 내가 구할 수 있는 사람,을 먼저 구하려고 하지 않을까.


내가 그런 상황에서도 무언가를 계산하고, 따지고, 후일을 두려워하여 판단을 내리고 행동한다면, 그것은 진정한 사랑이 아닐 수 있다. 그것은 거래를 기반으로 하는 사랑이요. 사랑의 옷을 입은 거짓 몸이다.


사랑은 계산하거나 따져서 득실을 생각하지 않는다. 내가 손해 보는 것이 사랑이다.


내 모든 것을 다 주고도 이름을 남기지 않는 것이 사랑이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누굴 구할 것인가가 아니라, 혼자 위험에 빠졌을 때, 어떻게 할 것인가를 생각해보는 게 더 합리적인 질문일 수 있다.


하늘만큼 땅만큼 사랑한다고 하는데,

나를 위해 대신 죽어줄 수 있는가.


물론, 꼭 대신 죽어야 진정으로 사랑하는 것이라고 판단하는 것도 반드시 옳은 것은 아니다.


오래 전 이야기지만, 자녀와의 관계를 주제로 소규모 모임에서 강의를 한 적이 있었다.


그때, 자녀가 죽을 병이 걸렸는데, 부모가 장기 기증을 하면 자녀는 살고, 부모 자신은 반드시 죽는다. 당신은 자녀를 위해 목숨을 내놓겠는가. 하는 질문을 했었다.


나는 최소한 50퍼센트는 나올 줄 알았다. 하지만 그렇게 말한 사람은 30퍼센트가 채 되지 않았다. 아마 심리학자 연구처럼 생각할 시간이 많다보니, 이런 저런 다른 변수들을 생각하느라 그리 되었을 것이다. 결코 자기 자녀를 사랑하지 않는 것임에도, 자기 자녀를 위해 죽을 수 있다는것은 또 다른 문제였다. 남아 있는 가족 부양, 연로하신 부모님 등 생각해야 할 변수는 많은 것이다.


오래 전 일이지만 아직도 생각나는 장면이 하나 있다. 그땐 지금처럼 휴대전화도 없었고 인터넷도 없었으며 응급잔화도 응급병원도 심지어는 119도 없던 때였다.


오전 아홉 시가 되지 않아, 문을 연 병원도 없고, 거리에 사람도 별로 없었다.


실성한 한 여인이 손에 아기를 안고 길거리를 뛰어다니며 뭐라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잘 알아듣지 못했지만 자세히 들어보니 자기 아이를 살려달라고 울부짖는 소리였다. 아이가 숨을 쉬지 않는데 누구라도 도와 달라고 거리에서 미친 사람처럼 이리저리 헤매고 다니며 소리지르고 있었다.


나는 그때 어린 초등학생이나 중학생 정도 소년이었는데, 지금도 그때 그 젊은 어머니의 절박한 모습이 떠오르고, 그 아이는 살았을까, 하고 걱정이 되곤 한다. 아마 살았다면 지금 어는 하늘 아래에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사랑이란 무언가를 계산하고 재지 않는다.

사랑이란 절박함이고, 전부이다.

단, 그럼에도 불구하고 연약한 인간이기에 아무것도 해주지 못할 수 있다는 거. 사랑하지만 아무 힘이 되지 못 할 수도 있다는 것. 그것이 슬플 뿐이다.


혼자 거동을 못하는 독거노인인 어머니는 가끔, 이렇게 살아서 무얼 하냐며, 세상에 아무 쓸모 없는 존재 같아 힘들다며 우울에 빠지곤 한다. 그러면 나는 어머니에게 이렇게 말한다.


엄마. 사랑하는 자녀들이 아직 살아 있잖아요. 우릴 위해 기도해주세요. 우린 그 기도의 사랑으로 잘 이겨내고, 잘 살아갈게요.


사랑은 보이지 않는 곳에서

기도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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