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작가를 지척에 두고도 몰랐다!]
오늘에서야 그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자주 들렀던 회사 옆 동네서점 주인장이 한강 작가였다고. 지금은 이직을 해서 그곳에 다니지 않는 회사지만, 이전 동료가 카톡으로 연락을 해왔다. 대박 정보라고 수선을 떨며 알려줬다. 수석님 자주 다녔던 그 서점이 한강 작가가 운영한 곳이었다고.
이제 나도 다른 곳으로 옮겼고, 그때 그 서점 역시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했을 때 많이 아쉬웠다. 양재 시민의 숲 부근에 회사가 있었는데, 그곳에 취직을 하고 가장 기뻤던 것이 바로, 회사 옆에 서점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서점은 늘 오후 2시경에 문을 열었다. 한강 작가는 그냥 서점 주인처럼 책상에 고요히 앉아 있었다. 창가에는 햇빛이 들어 환하게 밝았고 한강 작가가 주인장으로 앉아 있던 너른 책상은 약간 어두침침했다. 그녀는 손님이 책을 편하게 둘러 보도록 배려했다. 공간이 그리 넓지 않은 곳이라 조금 돌아보면 금방 다 볼 수 있는 책방인데도 나는 자주 그 책방에 들렀다. 너무 자주 가서 미안할 때 즈음이면 책을 한 권씩 샀다.
나는 출근 첫날 서점에 들어가 어떤 분위기인지를 알아보고자 했다. 어떤 책이 진열되어 있는지를 보면 대충 서점 주인장의 분위기를 알 수 있기 때문이다. 취향은 나랑 잘 맞았다. 자연을 사랑하고 환경을 가꾸고 아끼며, 자연이 주는 아름다움을 사랑하는 분이었다. 그런 책들이 한쪽 벽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존버거의 사진 관련 책도 많았고 내가 평소 서점에 보지 못하던 책들도 다수 있었다.
책을 살 때마다 스탬프를 찍어 주었다. 정가에서 할인해주는 것은 없었지만 열 번을 방문해서 책을 사면 선물을 준다고 했다. 한강 작가가 주인장으로서 내게 그렇게 말을 했다. 나는 그렇게 해서 내 카드를 만들었고 열 번 방문을 해서 선물로 씨앗을 받았다.
내 기억으로 그곳에서 산 책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책은 <북미의 새>라는 조류도감 같은 책이다.
블로그를 보니 2022년 4월 책의 날을 맞아 서점에서 책을 샀다. 회사 옆 동네서점이라고 되어 있다. 이런 책은 직접 보지 않고는 어디서도 들을 수도 없고 사기도 힘든 책이다. 한강 작가는 무슨 마음으로 저 책을 주문해서 진열해 놓았을까? 내가 그 책을 집어들고 계산대로 갔을 때 그녀는 속으로 깜짝 놀랐을까? <북미의 새>는 미국의 조류학자 오듀본이 직접 관찰하고 그린 그림으로 가득하다. 한국의 새도 잘 모르는 사람이 북미의 새를 알아 무엇하겠냐고 묻는다면 대답할 말이 없다. 나는 한국과 북미의 개념보다, 새라는 이미지에 더 이끌린 것이다. 그렇게 해서 나는 존 오듀본이라는 미국의 조류학자를 알게 되었고, 5월에는 <존 오듀본 이야기>를 구입해 그의 일대기를 읽었다. 조류학자며 식물학자라 되려면 그림을 잘 그려야 한다는 사실도 이때 알게 되었다.
또 한 권의 책은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라는 책이다. 이 책은 서점을 방문한 초기에 구입했을 가능성이 크다. 블로그에 이렇게 서점에 대한 인상을 남겨 놓았기 때문이다.
"아빠는 12월1일 이 책을 서점에서 만났어. 아빠가 퇴사하고 새롭게 출근하게 된 회사 바로 옆에 작은 서점이 있었지 뭐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단다. 비록 인터넷 서점처럼 10퍼센트 할인은 없지만 앞으로 이곳을 자주 이용하게 될 운명임을 즉시 깨달았어. 너도 만약 이 작은 동네서점을 보면 분명히 반하고 말 거야. 책을 사지 않고 책방에서 숨만 들이마셔도 책향기에 취하고 마는 그런 곳이었지. 천천히 둘러보던 중 눈에 들어온 책 한 권. 바로 이 책 『쓰고 싸우고 살아남다』였어."
블로그에 리뷰를 올린 날짜가 2020년 12월이다. 그렇다면 그 때는 양재 시민의 숲에 있던 그 회사에 발을 막 들여놓았을 때다. 그러니 그 곳에서 책을 사고 책을 읽고 딸에게 쓰는 편지 형식으로 리뷰를 작성했을 때가 2020 12월8일밖에 되지 않은 것이다. 물론 이 책은 다 읽고 딸에게 읽어보라고 선물로 줬다.
나는 서점의 주인장이 한강 작가인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심지어 그가 이번에 노벨상을 수상하고 책방 오늘,을 운영하고 있다는 글을 읽으면서도, 그때 그 서점, 오늘,과 연결시키지 못했다.
13일 갑자기 네이버에서 알림 문자가 왔다. <책방 오늘> 리뷰 조회수가 1,000회를 넘어 섰다는 알람이었다. 나는 그걸 보면서도 이게 뭐지? 하고 생각했다. 소설가 한강과 그의 서점 오늘을 전혀 연결시키지 못했다. 갑자기 이게 왜 뜨지? 그렇게 대수롭지 않게 넘어 갔다.
그러다 오늘 이전 직장 동료로부터 그 때 그 서점이 한강 작가의 서점이라는 사실을 전해 들었다. 아, 헐, 대박, 이걸 어째. 온갖 감정이 나를 휘감고 지나갔다. 그 때는 이미 그녀가 <채식주의자>로 부커상을 수상한 이후였는데, 서점을 왜 운영했을까? 하는 궁금증도 생겼다.
오늘 다시 네이버 알람을 찾아봤다. 이제는 조회수가 1,000이 아니라 98,000회를 넘어서 폭발적으로 증가하고 있었다. 그냥 마이플레이스 장소 리뷰였는데, 갑자가 내 리뷰가 상위 5%에 해당한다고 알려왔다.
나도 은퇴하면 책방을 운영해야지, 날마다 아내에게 승산없는 투자라는 말을 들으면서도 꿈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나는 책방을 하게 되면 별도의 칸을 만들어 내 책만 전시해두어야지 하는 꿈도 같이 꾸고 있었다. 그랬는데, 오늘 한강 작가의 서점을 가만히 떠올려보니, 그는 자신의 책방에서 자신의 책을 전혀 전시하지 않고 있었다. 그의 책만 따로 모아둔 곳이 있었다면 내가 낌새를 챘을 수도 있을 것인데, 어디에서도 그런 흔적은 없었다.
그녀는 조용히 정물화처럼 앉아서 서점 일을 했다. 아마 오전에 집필 활동을 했으리라. 그러니 늘 오후 2시에 책방 문을 열었지. 내가 서점에 갔을 때는 대부분 손님이 아무도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 공간에 한강 작가와 단 둘이 있을 때가 많았다. 그녀는 책을 권해주지 않았기 때문에 나는 편하게 책을 구경할 수 있었다. 선물꾸러미 책이 있었다. 안에 어떤 책이 들어있는지 모른다. 투박한 갱지 같은 종이로 포장을 하고, 노란 종이끈으로 매듭을 지은 선물 도서였다. 그때 질문을 했던 기억이 난다. 어떤 책들이 들어 있냐고. 그녀가 뭐라고 대답을 했는데, 나는 그 미지의 책을 차마 사지 못했다.
한강 작가를 지척에 두고서도 몰라보고, 문학적인 대화 한 마디 나눠보지 내가 이렇게 미련하게 느껴진 적이 없다. 내가 한강 작가의 서점에 자주 갔고, 대화도 나누고 했지만 전혀 그녀를 몰라 봤다는 사실에 나는 그녀가 얼마나 위대한 분인지를 새삼 느낀다. 자신을 전혀 드러내지 않고, 알리지도 않고, 그곳에서는 서점 주인장으로만 일을 했다. 맨부커상을 수상한 작가임에도 그녀는 책방에서 책을 팔았다. 카드를 받고 책값을 계산하고, 스탬프를 찍어 카드를 나에게 건넸다. 우리는 지극히 필요한 행동과 말만 주고 받았다.
만약 자신이 한강 작가라고 스스로를 밝혔더라면 어떤 일이 벌어졌을까. 다른 분들은 그 사실을 알고 그곳을 찾았을까? 나만 모르고 있었던 것일까? 모르겠다. 하지만 내가 위대한 노벨문학상 작가를 회사 바로 옆 서점에서 자주 보고 대화도 나누었다는 사실에 괜한 흥분이 된다. 내가 어줍잖게, 내가 낸 책이 이런 게 있는데, 여기에 진열은 할 수는 없을까요? 같은 질문을 던지지 않은 게 천만다행이다.
오늘은 한강 작가가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되었을 때 놀라고 흥분하고 감격을 느낀 것과는 또 다른 놀람과 흥분이 나를 가슴 뛰게 했다. 나만 가질 수 있는 소중한 추억이고 기쁨이다. 지금 곰곰이 생각해보니, 한강 작가의 얼굴이 그때 그 서점 주인장 얼굴과 같다는 사실이 새삼 새롭게 다가온다.
책방 오늘의 주인장이었던 한강 작가의 노벨상 수상을 진심으로 축하하며, 책방 오늘,도 계속 운영되기를 소망해본다. (이제는 그분이 직접 운영하기는 힘들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