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이 분다 가라
(한강 읽기) 죽음이면서 시작이다
나는 방금 읽은 부분 옆에 실린 컬러 사진을 본다. 초신성의 폭발 장면이다. 초신성이 폭발하면, 그 은하를 구성하는 10억 개의 별들의 밝기를 합한 것만큼이나 빛이 수일 동안 방출된다. 지구가 속한 은하에서 초신성이 폭발했던 1세기의 기록들은 밤마다 그 빛을 책을 읽을 수 있을 정도였다고 증언하고 있다.
흰 점 같은 별들 위로 거대하고 둥글게 퍼져나가는 불꽃을 나는 들여다본다. 붉으면서 푸르고, 희면서 검다. 죽음이면서 시작이다. 늙은 별이 폭발한 바로 그 에너지로, 희부연 성간구름들 속에서 새 별이 태어난다.
(한강, 바람이 분다 가라, 18쪽)
죽음과 삶은 둘이면서도 하나다.
서로 다른 것 같으면서도 같은 것이다.
죽음이 있어야 삶이 있고
죽음을 알아야 삶을 안다.
한강은 광대한 우주의 탄생과 죽음을 책 서두에 지루하리만치 집요하게 집어 넣는다. 왜 그랬을까 가만히 생각해보니 알 것도 같다. 우리 삶이 우주만큼이나 광활하고 광대하고 크고 멀기 때문이다. 별이 폭발하는 그 무시무시한 뜨거움만큼이나 뜨겁고 번쩍이고 장렬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죽을 때는 소리없이 낮고 조용하게 숨을 멈추는 것 같지만, 실은 우주의 초신성이 폭발할 때 만큼이나 크고 웅장하게 숨을 거둔다. 사람이 죽는 것은 우주가 폭발하는 것과 같다. 그리고 그 에너지로 새로운 생명이 태어난다.
인주의 죽음.
작가는 한 인간 인주의 죽음과 우주의 죽음을 대비시킨다.
왜일까?
죽음이 시작이기 때문이다.
죽음은 끝이 아니라 새로운 것의 시작,
여리여리하고 가냘픈 것의 시작이기 때문이다.
죽어야 새로 시작할 수 있기 때문이다.
죽음이 완성되어야 새로운 시작이 탄생하기 때문이다.
오늘 완전히 죽어야 내일 새로운 에너지로 태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붉으면서 푸르고,
희면서 검고,
죽음이면서 시작인
너덜너덜하고 치욕스러운 내 삶을 들여다보며
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