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방의 계절, 윤소민
밖에 눈 와요.
바람따라
눈길따라
살짝 휘어진 채로
묵묵히 내려와 자리를 잡습니다.
무게라곤 없어 보이는 눈이
묵직하게 쌓이고 쌓여
세상이 가볍지 않다는 것을
온갖 사물들 위에 내려
그것들의 존재를 없애버립니다.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던 것처럼
처음부터 설경이었던 것처럼
세상의 허물을 덮습니다.
오늘 같은 날은 좀
추워도 좋겠습니다.
발이 좀 시리고, 귀가 좀 시려도
눈을 보며
한 해를 돌아보고
나를 돌아보고
내 마음을 들여다보고
다 덮어두는 것도
괜찮아 보입니다.
밖에 눈 와요.
첫눈이 신중하게 고른 오늘이니까
짜증 내지 말고
기쁨으로 눈을 맞이해봅시다.
밖에 눈 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