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위대한 용기에 관한 책 - 이처럼 사소한 것들

해외소설 추천

by 봄부신 날


[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이 키건

한줄평 : 하거나 하지 않았어야 할 사소한 일의 무게를 느끼게 하는 책


9_e7dUd018svc11uftoczs5jvz_us9xsu.jpg?type=e1920_std


삶은 때로 내가 속한 이 세상과 내가 속하지 않은 저 세상으로 구분된다. 내가 속한 이쪽에서의 편안함이 사실 숨겨진 사소한 것들의 합 속에서 만들어진 것이라면 나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

만약 사소한 그것들이 내게 주어지지 않았다면 나 역시 이 경계 너머 저쪽에 속할 수 있었을 거라는, 당연하지만 너무 사소해서 무심코 지나쳐버릴 수 있는 그것들을 내가 기억하지 않는다면 나는 지금 이 삶을 제대로 살아가고 있는 것일까.

크리스마스를 맞아 평온한 이쪽 삶을 살아가는 석탄 배달부 펄롱은 요즘 그 삶이 위태롭다. 눈에 띠게 드러나는 것은 없지만 수도원에 대한 소문들이 자라나는 딸들을 살펴보게 한다. 나만 괜찮으면, 우리 가족만 괜찮으면 정말 괜찮은 건가. 세상이 어떤 부조리에 놓여 있다고 해도.

"잘 지내는 것 같아? 애들 말이야."
"무슨 얘기야?"
"모르겠어." 펄롱이 말했다.
...
"아무튼 우리는 괜찮지?"
"재정적으로 말이야?"
...
이게 다 무엇 때문일까? 펄롱은 생각했다. 일 그리고 끝없는 걱정. 캄캄할 때 일어나서 작업장으로 출근해 날마다 하루 종일 배달하고 캄캄할 때 집에 돌아와서 식탁에 앉아 저녁을 먹고 잠이 들었다가 어둠 속에서 잠에서 깨어 똑같은 것을 또다시 마주하는 것. 아무것도 달라지지도 바뀌지도 새로워지지도 않는 걸까? 요즘 펄롱은 뭐가 중요한 걸까, 아일린과 딸들 말고 또 뭐가 있을까 하는 생각을 종종 했다. ... 때로 이 나날이 대체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44)

펄롱은 문득 지금의 이 평안함이 자신을 돌봐 준 미시즈 윌슨 여사의 사소한 것들 때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그는 학창 시절에 비웃음과 놀림을 당했지만 미시즈 윌슨 집에 기거한다는 이유만으로 덕을 보았다.

아내는 지금처럼만 잘 지내면 우리 딸은 수도원의 소문 속 그 아이들처럼 되지 않을 거라고 안위한다. 하지만 펄롱은 자신의 마음속에서 뭔지 모를 불안감이 덮쳐 오는 걸 느낀다. 그것은 이대로 살아서는 안된다는, 자신의 삶에 대한 원천적인 부채에 대한 것이었다. 나도 그들과 다르지 않다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한 인식을 하게 되면서, 성탄절은 점점 다가온다.

그리고 석탄을 배달하러 갔다가 마주하게 된 수도원 소녀들의 충격적인 모습. 아이들의 간절한 소망을 못 들은 것처럼 도망치듯 뛰쳐나오며 그는 다시금 자신의 어린 시절의 부채와 마주한다.

"그렇지만 우리가 가진 것 잘 지키고 사람들하고 척지지 않고 부지런히 살면 우리 딸들이 그 애들이 겪는 일들을 겪을 일은 없어."
...
"하지만 만약 우리 애가 그중 하나라면?" 펄롱이 말했다.
"내 말이 바로 그거야." 아일린이 다시 일어나 앉으며 말했다. "걔들은 우리 애들이 아니라고."
"미시즈 윌슨이 당신처럼 생각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란 생각 안 들어?" 펄롱이 아일린을 쳐다보았다. "그랬다면 우리 어머니는 어디로 갔을까? 나는 지금 어디에 있을까?" (57)

자신의 삶 역시 그들과 다르지 않음을 뼈저리게 느낀 그는 자신에게 지구를 들어올릴 만한 거대한 용기가 필요한 사소한 일에 무겁고 어렵게 눈과 몸을 돌린다. 이 책을 읽으면 우리는 다시 이전의 자신으로 되돌아 갈 수 없다. 그것은 펄롱이 끝내 몸을 돌려 성탄절 선물 같은 희망의 손을 수도원 아이에게 내밀면서 시작된 것과 다르지 않다. 우리는 달라져야 한다.

타인을 바라보는 시선은 결국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펄롱은 그걸 알았고 한 걸음 용기를 냈다. 평생 내지 못했던 한 걸음. 그 사소해보이는 한 걸음. 펄롱의 그 한 걸음은 한 아이의 인생을 바꿀 것이다. 천하보다 귀한 한 생명을 건져 올리는 펄롱의 크리스마스 선물은 그러나 온갖 고난의 시작이 될 것이다. 가장 가까운 가족부터 그리고 거대한 수도원의 권력자에 이르기까지.

모든 걸 다 잃는 일이 너무나 쉽게 일어난다는 걸 펄롱은 알았다. (22)

짧은 이야기지만 독자는 결코 이야기에서 자유롭지 않다. 책을 덮는 순간 펄롱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자신의 부채와 직면하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계속 걸었고 펄롱이 알거나 모르는 사람들을 더 마주쳤다. 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 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121)

펄롱은 모른 체 하고 눈을 감고 성당에 가서 눈을 감고 미사에 참석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속이는 위선이었고 신을 속이는 아담과 같았다. 책을 읽으면서 펄롱은 내게 거울로 다가왔다. 펄롱의 위선이 곧 내 위선이었고, 펄롱의 걱정이 곧 내 걱정이었다. 펄롱의 시선이 머무는 곳, 마음이 머무는 곳, 그것이 내 시선이었고 내 마음이었다.

책을 덮으면서 독자인 나는, 내가 어떤 어른인가, 나는 어떤 어른이어야 하는가. 하는 생각에 잠긴다. 펄롱의 용기에 박수를 보내면서도 나는 그럴 수 없을 것이라는 내 속마음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

수녀가 지폐를 세는 동안 펄롱은 수녀를 찬찬히 보았고 너무 오래 제멋대로 살아온 고집 센 조랑말을 떠올렸다. 여자아이에 관해 뭔가 묻고 싶었던 마음이 솟았다가 결국 사라졌고 펄롱은 그냥 수녀가 달라는 대로 영수증을 써주고 나왔다. (53)

용기를 내야 한다. 그것은 사소한 걸음이지만 지구를 들어올리는 거대한 용기다. 펄롱이 먼 길로 돌아가는 길을 택하지 않고, 수많은 사람들을 만날 걸 알면서도 직면하는 그 용기. 세상을 바꾸는 용기가 아니라 나를 바꾸는 용기. 이 책은 사랑에 관한 책이고 용기에 관한 이야기고 결국 나 자신에 대한 이야기다. 내 마음속에 펄롱의 용기를 심는다.

시내 중심 크리스마스 전등이 켜진 곳이 가까워지자, 먼 길로 돌아가는 게 좋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으나, 펄롱은 용기를 내어 평소에 다니던 길로 계속 갔다. ....
"이제 거의 다 왔어." 펄롱이 기운을 돋웠다. "조금만 가면 집이야." (121)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함축의 이미지가 긴장을 높이는 놀라운 성장 소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