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란 새, 161쪽
풍경은 아름다운 것인데, 여기서는 슬프고, 그 슬픔을 넘어 아프다.
C.S.루이스는 한 사람이 한 국가보다 위대하다고 했는데, 전쟁터에서의 '한 사람'은 실체조차 알 수 없는 희부연 풍경으로 가리워진다.
씨앗을 뿌리면 꽃송이가 아름답게 피어나는데,
그렇게 피어나는 꽃송이처럼 돋아나는 죽음이라니.
전쟁의 거칠고, 마르고, 성긴 아픔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건 아름다움일까, 잔혹함일까.
주인공이 느끼는 그 이율배반적인 잔혹한 미학은 몇 쪽 앞에서 사실 절정에 이르렀다.
이 기쁨, 이 감사는 어떤 꽃송이일까?
어떤 환희의 제사일까?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율배반적인 감사의 기쁨.
냉혹하고 차가운 도시 자본주의 정글의 숨어있는 모습일까?
그렇지 않아야 한다.
결국은 죽어버린 머프가, "나 정말 미쳤지?"라고 생각하는 그 마지막 순수함.
그 순수함을 가질 때, 머프는 끝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우리가 할 일은,
그 질문이 아니다.
이기고 지는 게 아니다.
살고 죽는 게 아니다.
그 전쟁터가 이제는 끝을 맺도록,
진짜 꽃송이가 피어나도록
제로섬이 되지 않도록.
사람 사는 곳이 되도록
참 씨앗을 뿌리는 일을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