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꼬리 단상 35> 풍경이 되는 슬픔

노란 새, 161쪽

by 봄부신 날

알 타파르에서 죽은 모든 이는 풍경의 일부였고,

마치 무언가가 땅에서 시신을 피어오르게 하는 씨앗을 도시에 뿌린 것처럼,

흙바닥이나 포장도로 위에서 서리를 맞은 꽃송이처럼

그들은 차갑고 환한 태양 아래서 마르고 시들어갔다.

(노란 새, 161쪽)


풍경은 아름다운 것인데, 여기서는 슬프고, 그 슬픔을 넘어 아프다.

C.S.루이스는 한 사람이 한 국가보다 위대하다고 했는데, 전쟁터에서의 '한 사람'은 실체조차 알 수 없는 희부연 풍경으로 가리워진다.


씨앗을 뿌리면 꽃송이가 아름답게 피어나는데,

그렇게 피어나는 꽃송이처럼 돋아나는 죽음이라니.


전쟁의 거칠고, 마르고, 성긴 아픔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을까.

이건 아름다움일까, 잔혹함일까.


주인공이 느끼는 그 이율배반적인 잔혹한 미학은 몇 쪽 앞에서 사실 절정에 이르렀다.


머프는 양손으로 머리를 부여잡았다.

손바닥 언저리로 계속 눈을 문질러댔다.

"내가 아니라서 정말 기뻤어. 나 정말 미쳤지?"

……

나도 같은 생각을 했다.

내가 총에 맞지 않아서 기뻤고……

지금 돌이켜보면 슬프지만, 나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저 친구가 죽고 내가 죽지 않아 감사합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

(노란 새, 15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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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쁨, 이 감사는 어떤 꽃송이일까?

어떤 환희의 제사일까?

미칠 수밖에 없는 이율배반적인 감사의 기쁨.


냉혹하고 차가운 도시 자본주의 정글의 숨어있는 모습일까?

그렇지 않아야 한다.


결국은 죽어버린 머프가, "나 정말 미쳤지?"라고 생각하는 그 마지막 순수함.

그 순수함을 가질 때, 머프는 끝내 죽을 수밖에 없었다.


이 세상이 제로섬 게임이라면

나는 이겨야 할까,

나는 살아야 할까.


우리가 할 일은,

그 질문이 아니다.

이기고 지는 게 아니다.

살고 죽는 게 아니다.


그 전쟁터가 이제는 끝을 맺도록,

진짜 꽃송이가 피어나도록

제로섬이 되지 않도록.


사람 사는 곳이 되도록

참 씨앗을 뿌리는 일을 해야 한다.


10년, 20년 뒤에는

이 전쟁터에, 희부연 풍경 속에

진짜 웃음이 피어오르도록.

진짜 감사가 터져나오도록.

순수함을 가져도 죽지 않도록.

내가 아니라, 우리 아이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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