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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나 May 09. 2022

글을 쓰는 이유

어떤 형태이든 이제 온전한 나의 꿈




본디 번역가가 되고자 했다. 학창 시절에 도서부 활동을 하며 처음으로 접한 일본 소설은 살아오면서 그동안 맛보지 못했던 신비한 감각을 선사했다. 그 감각을, 다른 사람 손을 거쳐 번역된 문장이 아닌 작가가 직접 써 내린 원문 그 자체로 느끼고 싶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미술가가 되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언젠가는 그렇게 해야지’라고 꿈만 꿔볼 뿐이었다. 이후, 나는 취미로 시간이 날 때마다 틈틈이 일본어를 공부하며 미대 입시에 열중했다. 그리고 원하던 대학에 들어갔다. 차근차근 학사를 이수한 후 무난히 대학원에도 합격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나는 그저 정해진 길만 쭈욱 따라가면 된다고 생각했다. 나름대로 성적도 우수했고, 내가 만들어낸 작품에 따라오는 사람들의 평가도 좋은 편이었다.


하지만 언젠가 도서관에서 오랫동안 좋아해 온 일본 작가의 소설을 읽다가 문득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 내가 원하는 걸 하고 있는 게 맞나? 갑작스럽게 의구심이 들었다. 나는 언젠가부터 그림을 매일 그리지도 않았고, 미술을 향한 열정이 일본어에 대한 열망보다 뒤처진 지가 사실 꽤 오래되었다는 사실을 자각했다. 막연하게 생각만 해봤던, 번역을 공부하고 싶다는 마음이 스멀스멀 피어올랐다. 내 온몸을 구성하는 세포들이 “번역 공부를 해!”라고 필사적으로 외치고 있는 것만 같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내가 좋아하는 외국 작가의 글을 적절한 한국어로 옮겨와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는 건 굉장히 매력적인 일이었다. 한 번 마음을 먹으니 결단은 빨리 이루어졌다. 그렇게 나는 아무런 미련 없이 대학원을 자퇴하고 미술계를 떠났다.


전공생도 아닌 내가 번역의 길을 걷는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20대 후반이라는 나이에 새로이 입시 기간을 거쳐 다시 대학에 들어간다는 것도 내키지 않았고, 통번역대학원을 노려보자니 지원조건이 예사롭지 않았다(번역이나 국문학에 관련된 학사가 있어야 가능했다). 나는 주 6일을 미술학원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밤낮으로 어떻게 하면 번역이라는 바다에 풍덩 입수할 수 있을지 조사에 조사를 반복했다. 결국, 나는 그 바닥에서 꽤나 유명하다는 번역 아카데미에 들어가기로 했다. 관련 전공을 공부하지 않았더라도, 그곳에서 제공하는 기본 및 심화 커리큘럼을 끝까지 이수하면 번역을 해볼 기회를 준다는 곳이었다. 사실 그곳도 입학하기가 녹록지 않았는데, 꽤 난이도가 높은 번역 테스트와 함께 내가 꼭 그 일을 해야만 하는 이유에 대한 자기소개서를 멋들어지게 써내야 했기 때문이다. 경쟁률도 아주 셌던 것으로 기억한다. 나는 번역을 업으로 삼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그렇게나 많은지 그때 처음 알았다. 열정만 있으면 뭐든 다 할 수 있다고 믿었던 시절이라, 다른 사람들을 제치고서라도 내가 꼭 들어가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몇 날 며칠을 필사적으로 매달렸다. 결과는 좋았다. 나는 무리 없이 모든 테스트에 통과해 당당히 입학했다.


그렇게 약 1년여를 매일 새벽같이 일어나 아카데미에서 수학했으나, 번역가의 길은 별다른 기회 없이 틀어지고 말았다. 애초에 샘플 테스트 원고 조자 내 손으로 넘어오는 일이 없었다. 입수는커녕, 단 한 발자국도 내디뎌보지 못하고 커다란 벽에 가로막힌 것이었다. 일본어를 독학했다는 갓 졸업한 미대생에게 누가 출판 원고를 맡기겠는가? 아무리 아카데미에서 훈련을 받았다고 한들, 전문가들 눈에는 기껏해야 1년 동안의 수박 겉핥기로 보였을 것이었다. 이미 그 업계는 몇십 년에 걸쳐 해외나 국내에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아온 프로 번역가들이 즐비했다. 나는 애초에 그들과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결국, 나는 잠시 번역가의 길을 걷는 걸 멈추기로 했다. 친구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사회로 진출하고 있는데, 이도 저도 못 하고 하염없이 한 자리에 고여있다는 느낌에 조급한 마음도 스멀스멀 피어났다. 그 시절의 나는, 이제는 어엿한 어른이니 현실적인 결정을 내려야 할 때라고 판단했고, 끝내 전공과 비슷한 직종으로 적당한 회사에 취업했다.


이후에는 일부러 책과 번역에 관련된 것들을 모두 본체만체했다. 마음이 아팠기 때문이었다. 계속 쳐다보면 기약 없는 그 길을 또다시 걷고 싶어질 테니, 헤엄칠 줄도 모르면서 경각심도 없이 무작정 빠져보려고 할 테니. 정말이지 꾹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안타까운 현실이지만 세상에는 내가 아무리 하고 싶다고 외쳐도 도저히 이뤄낼 수 없는 것들이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내 인생에서 번역이 바로 그런 종류의 것이었다. 그래서 어떻게든 외면해야만 했다.


그런 와중에도 어릴 때부터 쓰던 일기나 인상 깊게 읽은 책의 부분 필사 같은 작업은 꾸준히 지속했다. 일종의 미련이었을까. 아마, 문구류를 좋아한 덕분이라고 생각한다. 멋진 다이어리를 사면 일상을 빼곡하게 채워야만 마음이 놓였다. 번역은 관뒀을지언정, 설령 한낱 낙서일 뿐일지라도 글쓰기라는 행위를 몸에서 떼어놓지는 않았던 셈이다. 하지만 정식으로 ‘내 글’을 써야겠다는 의식은 없었다. 나는 그저 남이 잘 쓴 작품을 읽으며 공감하고 감탄하는 것이 좋았고, 특히 일본어로 쓰인 글을 해석하고 올바른 언어로 옮겨오는 과정이 재밌을 뿐이었다. 의미 없는 낙서를 하다가 소설로 써보면 괜찮겠다, 싶은 소재는 있었지만, 그저 한순간 스쳐 지나간 바람에 지나지 않았다. 무언가 재미있고 신선한 스토리를 기획하고 고심하고 신중하게 써 내려가 끝내 완성하고서 사람들에게 자신 있게 공유한다는 것은 결코 내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번역이 내 길이 아니라고 판단했던 그때처럼.


그러나 내가 쓴 것을 보여주고 싶은 욕구는 계속 지니고 있었다. 문득 내 감정과 일상을 담은 일기를 날 모르는 사람들이 단 한 번이라도 읽어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서로 비슷하게 겪은 일에 의견을 나눌 기회도 더해진다면 더 좋을 테고. 그래서 블로그는 내가 추구하는 방향성에 꼭 알맞은 최적의 공간이었다. 글 형식에 구애받지 않아도 되고, 평가받는다는 부담도 없기 때문이었다. 사실 본격적인 대학입시에 들어가기 전, 꽤 열심히 블로그를 운영한 적이 있었는데, 창작물을 공유하는 플랫폼으로써는 아주 좋은 이미지로 기억 속 서랍에 남겨두었다. 결국 서른한 살의 겨울, 추억의 서랍을 열고 경험을 꺼내 올려 새로운 블로그를 꾸렸다. 활동 일자가 늘어날수록 개인적이면서도 원대한 욕심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혹시나 누군가 읽고 마음속으로 품평을 내릴 수도 있단 생각에, 그동안 일기장에 썼던 낙서글 보다는 어떤 일련의 정돈 작업을 거친 후 게시했다. 그리고, 다시 책도 읽기 시작했다. 개인 일상을 기록하는 것에 더해서, 도서 감상문을 작성하는 쪽으로 글쓰기 스펙트럼을 넓히고 싶었다. 일기보다는 시간을 많이 잡아먹는 작업이었으나, 점차 게시글이 쌓이고 “재밌게 읽었다”, “리뷰를 읽고 이 책에 흥미가 생겨 구매했다”라는 댓글이 늘어갈수록 마음속 깊은 곳에서부터 즐거움이 올라왔다. 하지만 딱 이뿐이었다. 무얼 더 욕심내 보겠다는 생각은 없었다.


어느 날이었다. 회사에서 일하기 싫어 이것저것 꾀를 부리던 도중, 갑자기 그냥 그러고 싶은 맘이 들어 예전에 운영했던 블로그 아이디로 로그인을 했다. 운영 당시 소설처럼 연재 비슷하게 한 시리즈가 있는데, 어린 마음에 별생각 없이 호기롭게 벌인 일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금세 소재도 떨어진 데다가 몇 편 쓰니 질려버린 감도 있어서 내팽개쳤더랬다. 당최 몇 년을 관리하지 않았으니 조회 수도 없었을뿐더러 그 누구에게도 인상 깊게 남지 않았을 터인데, 묘하게도 새로운 댓글 알림이 새빨갛게 존재감을 드러내며 떠 있었다. 뭔가 싶어서 들어가 보니 차마 입에도 담지 못할 상스러운 욕이 쓰여 있었다. 재밌게 읽고 있다는 건지 글이 형편없어서 읽기 싫다는 건지 의중을 알기 힘든 댓글이었다. 그런데 그걸 보자마자 기분이 상하기보다는, 아, 난 앞으로 어떤 형식으로든 계속 글을 쓰겠구나, 그리고 왠지 ‘내 글’이라는 걸 써서 5년 내로 출간을 하겠구나, 라고 뜬금없이 생각했다. 실제로 뭐에 홀린 듯 바로 독립출판이니 뭐니 알아보기도 했었다. 그로부터 몇 개월이 지난 지금도 여전히 ‘내 길이 아니다’라는 생각은 들지 않으니, 마음을 잡은 게 아닐까 싶긴 하다만, 또 미래가 어떻게 변할지는 사실 모르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애매한 심경을 갖고서 살고 있으니, 어찌 됐든 곧 찾아올지도 모르는 미래를 위해 기초를 준비하는 과정에 나를 올려세웠다. 아직 큰 욕심은 없으나 구체적으로 ‘5년 내’라는 단어가 떠오른 이상 실제로 그렇게 되지 않을까. 막연하지만 희한하게도 견고한 느낌이다.


나는 기본적으로 하고 싶은 게 상당히 많은 사람이다. 시간이 비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상황을 싫어하기에 매일 하루가 빈틈없이 차 있다. 그렇게 바빠도 어린 시절부터 빼먹지 않고 해온 것이 바로 글쓰기와 책 읽기, 그리고 일본어다. 이 셋은 내 인생의 동반자와 다름없다. 글을 쓰는 것에 관련해 어떤 사건이 있었고 느낌을 받고 했던 것은 둘째 치고, -물론 글과 멀리한 시간은 있었으나- 아예 인생에서 버린 적이 없는 항목들이란 사실은 지금까지 변함이 없으니, 그냥 이렇게 앞으로도 계속해나가지 않을까, 싶은 거다. 밥을 먹는 것처럼 글쓰기는 내겐 당연한 일상이 되어버린 것이다. 설령 그게 처음으로 꿈꿨던 ‘번역’이 아니라 한들 말이다. 이제는 누군가의 언어를 옮겨오는 것이 아닌, 내 고유의 말을 상대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표현하는 것에 집중하고 싶다. 누군가의 마음에 닿아 환하게 터져버리는, 따스하고 편안한 글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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