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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나 Dec 29. 2022

나를 통제하기 위한 계획

미숙한 인생에서 구원의 길은 단 하나

계획을 세운다는 것은 곧 통제하겠다는 뜻이기도 하다. 나 같은 경우, 예상치 못한 오류와 위기에서 철저하게 나 자신을 구원하고자 1부터 100까지 방안을 짜두곤 한다. 집에 두고 모든 일정을 기록하는 커다란 플래너, 그날의 일과를 기록하는 조그만 일기장, 그리고 항상 들고 다니는 휴대용 노트, 실수를 줄이고 커리어를 꾸려나가기 위한 업무용 플래너 까지, 한 번에 관리하는 수첩이 굉장히 많은 편이다. 놀랍게도 그중 무엇 하나도 성가시다고 느껴 본 적이 없다. 단권으로 일원화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긴 했으나 각각 용도가 다르니 달리 쓰이는 게 당연한 듯하여 시도해 본 적은 없다. 전날 밤, 다음날을 기약하며 여러 가지 추정 일정과 계획을 기록하고 다음날 저녁, 줄지은 네모칸에 체크 표시로 꽉 채워나가는 기분은 몹시도 쾌락적이다. 이것은 경험해 본 사람만 알 수 있다. 게임을 해도 자유로운 탐험보다는 퀘스트 위주로 플레이타임을 늘리는 성향의 나에겐 계획 세우기 만큼 재밌는 일상도 따로 없다. 마치 내가 모든 나날을 내 식대로 통제하는, 강인하고 단단한 사람이 된 것만 같다. 그런데 글쎄, 착각이 분명하다. 오늘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단단하기 때문에 계획을 세우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약하기 때문에 여러 가지 대비책을 만드는 게 아닐까? 삶은 유동적이고 융통성이 넘쳐흐르기에 순발력이 부족한 나로서는 밥 먹듯이 이런저런 가정을 하고 준비할 수밖에 없는 것이다. 내 인생인데도 불구하고 생각대로 흐른다는 보장이 없으니 불안해서 1안, 2안, 3안 등 끊임없이 방안을 마련하는 건 아닐지. 왠지 이 말이 맞는 것 같아 괜히 숙연해졌다. 연말을 맞이하여 그동안 쓴 다이어리를 쭉 훑어보는데 재밌는 점을 발견했다. 그동안 의식하지 못한 다이어리 쓰기의 패턴이 있었다. 일상에 관한 내용을 쓰는 평범한 일기 모음인데 한 장 한 장의 모양새가 예사롭지 않았다. 무조건 빈 줄 없이 한 바닥을 꽉 채운다는 점이 눈으로 대충 살펴보기에도 강박적으로 느껴졌다. 마치 지금 쓰고 있는 이 글과도 같다. 단 한 줄의 문단 나누기도, 공백도 없다는 뜻이다. 마지막 줄은 페이지가 끝나는 범위에 맞추어 끝나게끔 유도해서 작성해 뒀는데, 이는 따지고 보면 꽤 편집증적인 면모인 듯하여 징글맞았다. 과연, 이것은 완벽이 아니라 결함의 일부에 불과하다. 나는 하루를 정리하는 일기를 쓰는 것에도 스스로를 통제하고자 하고 있었는데 이와 같은 강박은 가끔 날 지치게 하면서도 완성된 결과물을 통해 희열과 만족을 선사했다. 이건 무얼 의미하는가. 나는 스스로를 가두고 통제하는 행위를 통해 위안을 얻는 셈이다. 한계 없는 자유는 오히려 두려울 지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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