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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나 Jan 24. 2023

영감이 왔다가 사라졌다

중복과 표절

오랜만에 좋은 생각이 났다. 기발한 아이디어라고 생각했다. 당장 수첩에 메모를 하기 시작했다. '이건 된다'라고 느꼈다. 메모한 것을 지인에게 보여주며 신이 나서 말했다. 이런 류의 이야기를 쓸 거야, 어때? 재밌을 것 같지? 그러나 곧이어 날카로운 대답이 돌아왔다. 이거 '기묘한 이야기'에 나온 건데? 나는 시무룩해졌다. 언제부터인가 수많은 이야기들이 머릿속에 뒤섞여 출처를 알 수 없게 되어버리는 일이 잦아졌다. 그동안 살아오면서 책을 너무 읽었고 영화를 시도 때도 없이 봤으며 지인들의 수많은 경험담을 흡수했기 때문일까? 내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것이 사실 내 이야기가 아님이 밝혀지는 순간은 그렇게 서러울 수가 없다. 이제는 도무지 창작이란 게 의미가 없는 행위 인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정녕 진실된 내 역사를 써야 한단 말인가? 그건 또 부담스러운데. 

나는 아직 다른 사람들이 어떻게 자기만의 글을 쓰는지 모르겠다. 내가 쓴 문장들이 자칫 어딘가에 이미 나와있으면 어쩌지,라는 걱정에 그냥 노트를 덮어버리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사실 이미 나올 것들은 다 나왔고 어떻게 변형하느냐에 따라 새로운 이야기가 전개된다고들 한다. 글쓰기뿐만 아니라 모든 창작 분야에서 그럴 것이다. 지구상에 수십억이 넘는 인구가 살고 있는데 내 이야기가 나만의 이야기일 리가 없는 건 당연지사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새로우면 좋겠다고 여기니 참으로 끝이 없는 문제로다. 그래서 결론은 오늘도 허탕 쳤다는 것이고 언제 또 영감이 찾아올지 모르겠다는 고민이다. 맘속으로는 꼭 써야겠다고 정해놓은 주제가 있긴 한데······.

여러모로 경험을 적게 쌓았다는 게 후회되는 날이었다. 너무 집만 좋아했다. 좀 여러 군데를 돌아다니고, 여러 사람을 만나고, 여러 일을 겪었더라면 좋았을 텐데. 날이 갈수록 나는 우물 안 개구리라는 생각이 든다. 물론 문화적으로 접한 간접경험은 많지만, 그야말로 간접경험일 뿐이니 작품으로 구체화하기엔 어딘가 부족하고 아쉬울 수밖에 없다. 그래서 특별한 상상을 하지 못하나 보다. 특별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 한 아직 내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만(아마도), 이마저도 현실의 제약에 얽매이다 보니 마음껏 활용할 수가 없을 듯하다. 현실을 살며 상상을 형태로 일구어 내는 게 인생에서 제일 어려운 일이 아닐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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