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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요나 Nov 26. 2021

많을 다(多), 사랑 애(愛)

나의 사랑스러운 옛 이름




옛 이름은 다애(多愛)였다. 20여 년을 다애로 살았다. 사주에 맞지 않다며 개명을 결정하던 날, 나는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지만 굉장히 마음이 아팠다. 어른들은 때로 자신이 믿는 것만을 진리로 여기며 강요하곤 하는데 그때도 그런 경우였다. 내 평생을 결정하는 일임에도 정작 내 의사는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이름은 약간의 핑계와 돈으로 아주 쉽게 바꿀 수 있었다. 허무하리만치 간단한 절차였다. 그렇게 나라는 존재의 커다란 부분을 구성하던 조각이 하루아침에 떨어져 나갔다. 새로운 이름인 서연(序姸)으로 살아온 인생은 다애의 절반에 못 미친다. 그래서 누군가 나를 부르는 게 아직도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많을 다, 사랑 애. 사랑을 많이 받고 살라는 의미로 엄마가 지어줬다는데, 과연 어땠는가.

이에 명확한 답은 내리기 힘들 것 같다. 내가 누군가를 사랑했다는 사실은 잘 느낄 수 있지만 타인이 날 사랑했는지는 정확히 알 수 없기에. 다만, 나는 오히려 내쪽에서 사랑을 많이 하려고 했다. 다애라는 이름이 나에게 너무나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다. 비록 엄마가 바란 건 '우리 딸이 타인에게 많은 사랑받았으면'이라는 소망에 기원한 것이었고, 막상 내가 추구한 방향성은 그와는 정반대였지만 말이다.

사랑이라는 단어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춘기 시절부터 이름에 지나치게 의미를 부여한 것도 어쩔 수 없는 이치였다고 생각한다. 이제와 떠올려 보면 좀 심할 정도로 내가 가진 모든 것에 사랑을 암시하는 이름을 붙이고 감정을 몰아붙였다. 사랑은 얄밉게도 어떤 관계에서나 참 양가적이다. 빛이 있으면 그림자가 있고 행복한 날이 지나면 곧 스르르 불행이 다가오듯 마냥 그 어감처럼 동글동글 예쁜 울림만 있는 게 아니었다. 내 짧은 역사상에서도 사랑하는 누군가를 온전히 옆에 두었던 경험보다 잃었던 적이 훨씬 많으니. 사람들과 맺은 연은 공들여 노력한 것에 비해 잘 풀리지 못했다. 어떻게 보면 노력이라는 개념이 제일 어울리지 않는 감정인데, 애석하게도 나는 내 이름과 걸맞은 삶에 대한 열망이 커서 깨진 그릇에 감정을 퍼 나르는 작업만 계속 한 셈이다. 그래도 그때를 후회하지는 않는다. 그만큼 최선을 다해서 나를 쏟아부었고 나는 만족할 만큼 감정적인 욕심을 채웠다.

이제는 하나같이 퇴색되어 그때의 짙은 감정은 사라져 버린 지 오래다. 형식적으로 타인을 대하고 어중간하게 지내다 자연스레 끊어내는 일이 익숙해졌다. 만약 진정으로 내가 생각한 크기만큼 이름에 어떤 힘이 존재한다면, 이렇게 변하게 된 이유는 다애라는 이름을 버려서 일지도 모르겠다. 나는 여전히 그 이름이 아프다. 그래도 다애로 시작된 삶이기에, 내 마음속 깊은 곳 외따른 방에 여전히 그 흔적이 남아있다는 건 알 수 있다. 애달픈 마음으로 아주 가끔 꺼내보기만 하는 홀로 남은 옛 조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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