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like green Jun 29. 2021

득음의 경지

그 녀석에게 처음 심쿵했던 순간

 대학 때 가장 친했던 친구가 있다. 힙합을 좋아하고 농구를 좋아하고 소처럼 큰 눈에 개성 있는 얼굴(아 그때는 못생겼다고 생각했었다.)을 가진, 웃는 모습이 참 해맑은 친구였다. 졸업을 하고 30대 초반까지도 힘든 일이 있으면 1번으로 전화를 해 울고 위로받을 정도로 친했던 친구다. (어쩌면 내쪽에서만 울고 짜고 했었… 나? :)


 내 인생을 통틀어서 가장 친했던 친구를 꼽으라면 그 녀석을 꼽을 수밖에 없다. 내 졸업식에 호일 펌을 하고 나타나 부모님의 눈살을 찌푸리게 만들고, 내 오빠의 결혼식에 왔다가 일가친척들만 모인 집까지 따라오는 바람에 가족과 친척들을 당황시킨 친구.

“우리 집으로 가자”

“그래”

그 짧은 대화로 친가는 물론 외가 친척들까지 가득 모인 식사 자리 정중앙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던 우리의 뻔뻔함을 생각하면 아직도 웃음이 난다. 현재형이 아니니 대답해줄 수 없지만 가끔 가족들은 그 친구의 소식을 물었다.

 “영길이는 잘 있나?”( 어머니…그 친구의 이름은 영길이가 아닙니다만…)


노래는 추억을 싣고

 킬링보이스에서 에일리의 라이브를 들으며 작업을 하고 있던 중, 그녀의 감동적인 가창력에 ‘듣기만 해도 득음하는 기분’이라는 얘기를 친구들과 하다가 지금은 연락도 하지 않는 그 친구가 갑자기 떠올랐다. 그 친구의 노래실력이  에일리만큼 뛰어났느냐? 으으응… 오히려 정반대다. 그 친구는 사실 음치에 가까웠다. 같이 노래를 부를 때면 잠시 나만 부르자며 입을 막을 만큼 음정이… 하나도 안 맞았다.


 그럼에도 친구는 노래방을 좋아하는 나와 자주 노래방에 다녔다. 내 파트에서 마이크를 내려놓은 채 조용히 노래를 따라 불러주던 그 친구와는 반대로 나는 그 친구의 노래가 시작될 즈음부터 다음 부를 노래와 그다음, 심지어 다다음 노래까지 고민하고 있었다. 탬버린은 분리된 생명체 같은 손이 알아서 쳐댔으니 나름의 예의는 갖췄던 게 아닌가… 하고 변명해보지만 내 인성 무엇인가…


 그 친구의 소원은 한 번이라도 노래를 시원하게 잘 부르는 거였다.

“내가 어젯밤에 꿈을 꿨는데 득음을 한 거 있재?!! 진짜 부르고 싶었던 OOO노래를 막힘없이 시원하게 불렀다 아니가~그렇게 시원할 수가 없더라!!”

“와…그런 거를 꿈으로 꾸나?? 꿈에서라도 엄청 좋았겠다 니~”

“진짜 딱 한 번만 시원하게 노래 불러보믄 좋겠다.”


마침내, 득음

 십 수해의 여름과 겨울을 지나면서 몇 번은 흔들리던 서로의 꿈과 미래를 응원했었다. 다음 십 년 뒤에도 서로에게 힘이 되자 얘기했던 풋풋하던 우리는 속이야 어떻든 어느새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어른의 외형을 갖추게 되었고 몇 년 전에 그 친구는 결혼을 했다.


 난 그날 회사 행사로 강남에서 있었던 친구의 결혼식에 한참 늦어버렸다. 토요일 일산과 강남 간의 교통체증이란… 꽉 막힌 버스 안에서 답답함에 한창 식이 진행 중인 친구에게 확인도 못할 미안하다는 톡을 몇 번이고 보냈다. 다행히 친구의 결혼식은 그날마지막 행사여서 예정된 시간보다 길게 진행되었고, 내가 도착했을 무렵 친구는 신부를 위해 적어온 편지를 읽는 중이었다. 결혼해줘서 고맙다는 말 뒤에 이어진 친구의 노래.

“그대를 만나고, 그대의 머릿결을 만질 수가 있어서~ 그대를 만나고오오~~”

우와…. 뭐야!!!! 갑자기 노래를 왜 이렇게 잘해?? 

라는 반전은 있을 리 없다. 이건 만화나 드라마가 아니지 않은가??  여전한 친구의 노래 실력에 나를 포함한 식장 내 모든 사람들은 배꼽을 잡았다. 여전히 음정은 무시하고 보는구나 ㅋㅋㅋ


 반전은 뛰어난 그 친구의 노래 실력이 아니라 뻔뻔하게, 하지만 용기 있게, 부끄러워하면서도 진실되게 노래를 끝까지 부르는 모습이었다. 이렇게 못 부르는 노래가 이만큼이나 감동적일 수 있다니…


 그 녀석의 진지함에 배꼽 빠지게 웃다 흘리던 눈물이 2절을 향해갈 땐 감동으로 변했고 다들 진심 어린 박수를 보냈다. 나를 포함한 모두가 그 순간 친구의 행복한 미래를 한치의 거짓 없이 빌었을 거다. 내가 갔던 친구들의 결혼식 중 가장 감동적인 식이었다. 막 새 신랑이 된 친구에게 뒤늦게 심쿵하기도 했고…(정신 차려!!! 그는 이미 딴 여자의 남자라고!!! 하하하;)


 이미 남의 사람이 된 남자를 그 순간부터 좋아하게 되었다는 막장 드라마를 쓰자는 게 아니고… 감동적이고 마음을 울리는 노래에 대한 얘기를 하자는 거다. 그 친구의 노래를 나는 수없이 들어왔지만 그렇게 감동적이고 완벽한 노래는 처음이었다. 꿈꾸던 것을 이룬 순간에 부르던 친구의 행복한 세레나데. 정성스럽고 사랑스러웠던 그 녀석의 청혼.

“녀석… 득음했네 드디어”


 사소한 오해로 연락이 끊긴  오래지만...   만에 뜬금없이  튀어나온 기억 속의  친구가  진심 행복하게  살아가기를여전히 바란다.


늦었지만 득음 진심으로 축하해~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