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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ke green Jun 28. 2021

가끔 인생은 코미디

아무도 웃어주지 않아도 :)

 요즘은 전처럼 티비를 잘 보지 않지만 가끔 새벽에 재방송되는 코미디 빅리그나 예능프로를 켜놓고 미친 듯이 웃을 때가 있다. 굳이 택한다면 각본있는 코미디보다는 현실개그나 예능 쪽이 더 끌린다. 잘 짜여진 코미디는 물론 감탄을 자아내지만, 출발이 정해져 있어도 어디로 빠질지 모르는 이야기들이 더 호기심을 자극하기 때문이다. 예측 불가능에 대한 기대??? 물론 그런 프로에도 어느 정도 작화가 있겠지만... 그게 어느 쪽이든 코미디는 반전과 허점을 유쾌하게 받아들이는데에서 시작되는 거라는 생각이 든다.


 그런 관점에서 굳이 티비를 켜지 않아도 우리 주변에는 코미디가 많다. 어른들을 흉내 내는 아이들의 어눌한 말투 라던지, 누구를 향해서도 웃어줄 것 같지 않은 친구가 맹하게 표정을 풀며 팔자걸음으로 걸어오는 모습이라던지, 출근길 머리에 달려 있는 헤어롤, “정숙”이라는 단어 대신 “경숙하세요~”라고 외치는 조카의 어설픔 같은 것들이 그러하다. 그저 코미디라 치부하기엔 내가 사랑하는 허점들이다. 완벽하지 않음에서 오는 친근한  허점들은 사람간의 경계를 허문다. 때로 사랑스러움을 느낄 정도로... 물론 그 정도는 상대적이고, 적어도 무례의 선을 넘지는 말아야 하는거지만…


 함께 글쓰기를 하는 모임에서 재밌는 일화에 대한 공통주제가 주어졌고 바로 떠올랐던 게 다음 얘기들이다. 거창하게 재밌다고 할 순 없고 혹은 이 이야기에 얽힌 사람들에 한정된 코미디 일지는 모르지만 나는 그 순간순간에 진심으로 웃고 즐거워 했던 에피소드이다.


자리끼의 정체

  종종 입을 벌리고 자는 나는 그 때문에 목이 건조해져서인지 자다 깨어 물을 마시는 일이 잦다. 그래서 머리맡에 자리끼를 두곤 한다. 자다가 물을 마시는 게 숙면을 방해한다고 하지만 어릴 때부터 자리끼 챙기던 습관을 이 나이가 되어서 갑자기 고칠 수 있을 리 없다.


 야영장에서도 자리끼를 찾아대는 걸 보고 친구가 하루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효정~ 궁금한 게 있는데~ 자리끼라는 말은 무슨 뜻이야?? 혹시 잘 있기~인 거야??”

 친구의 반짝거리는 궁금증과 순수하고 신박한 해석에 잠시 나는 당황했다.

“어어?? 글쎄... 한 번도 궁금해해 본 적 없는데... 잠자리에 두는 끼니 이런 뜻 아닐까??? 목마름을 채워주는 물도 일종의 끼니이니까??”

“아~~ 잠자리에 두는 끼니~ 그게 맞을 거 같다”

“근데~잘 있기.... 진짜 신박하다~ 밤새 잘 있기! 이 물 마시고 목 말라죽지 않기!!! “


너 이 녀석... 천재 아냐??


*쓰고 나서 찾아보니... 자리끼는 잠자리에 머리맡에 두는 물을 칭하는 말로 잠자리+끼니의 합성어라고 한다. 즉  잠자리에 두는(먹는) 끼니라는 얘기. 나 좀 똑똑인데??? 여기서 드는 합리적인 의심... 그렇다면 과거에는 물과 함께 간단한 간식도 두었던 게 아닐까? 내가 지금 배가 고파서 해보는 의심은 아니다...


퐈놀리가 싫었어

 풀이는 겁이 많고 얌전한 강아지다. 지금이야 좀 친해졌다고 언니 오빠가 없는데도 겁내지 않고 집안 구석구석을 돌아다니고 당연한 듯 침대에 올라와 내 곁에서도 잠을 자지만, 익숙해지기 전에는 침대에 올라오지도 않았고 간혹 욕구를 참지 못해 올라와도 내 손과 발이 닿지 않는 모서리에 자리를 잡았다.


 풀이가 우리 집에 이틀간 머무르기로 한 그날은 마침 친구(아까 그 잘 있기~의 주인공)가 우리 집에 온 날이었다. 그리고 고등래퍼4 파이널이 생방송되는 중요한 날이기도 했다. 이 프로의 찐 팬인 친구는 방송 시작 전부터 이미 앉았다 일어났다 예열을 하다  방송이 시작되자 빠르게 물아일체의 경지로 들어섰다~ 난 그 정도는 아니지만  “우우우우~”에 감동 먹은 후 상재의 우승을 내심 기대하고 있었다.


  산만한 두 여자의 미친 춤사위가 시작되자 풀이는 안방 침대, 그것도 우리와 가장 멀리 떨어진 구석에 몸을 구겨 넣고 미동도 않는다. 그런 풀이를 아랑곳 않고 우리는 상재의 파이널리를 신나게 따라 불렀다. 들썩들썩~퐈놀리 퐈놀리~그러자 꼼짝 않고 구석을 지키던 풀이가 참지 못하고 거실로 뛰어나왔다.

 “으르르르르르” (->말한 게 분명하다 :0 )

 풀이가 친구를 향해 이 한마디를 던진 후 다시 침대 제일 구석자리로 돌아갔다. 다시 말하지만 풀이는 겁이 많고 얌전한 강아지다. 당황한 우리는 잠시 춤과 노래를 멈췄다.


“... 쟤 지금 나보고 조용히 하라 그런 거지?”

“어~우와!! 무슨 말을 하는지 명확하게 들리네?”

“으르르... 조용히 살자 어?? 춤추지 마. 화낼 거야! 한 거 맞지?”

“깔깔 경고네 경고~”


 종간의 언어장벽은 생각보다 낮다는 걸 깨닫게 되는 순간이었다.

도시농부

 풀이와 친구가 돌아가고 열흘이 넘게 지났다.

그때 엄지손톱만 하던 파가 이제 손바닥보다 더 커져 있었다. 파에 물을 주고 설거지를 하고 다 된 빨래를 꺼내러 세탁실로 갔다.


 이상한 일이지... 세탁실에서 여태껏 맡아보지 못한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쓰레기통도 비우고 청소도 다했는데 왜지? 소독제와 페브리즈를 뿌려도 잠시일 뿐 불쾌하고 이상한 냄새는 사라지지 않았다.

 

슬슬 걱정이 밀려온다. 이 세탁실 어느 공간에 쥐가 들어와 죽은 건 아닐까?? 이 정도 냄새라면 죽은 지 오래된 것 같은데 사체를 어떻게 찾고 처리해야 할까?? 세탁실 문턱에서 하는 상상은 자꾸 나쁜 방향으로 흘러갔다. 10분간의 고뇌…


 그러다 세탁기 밑에서 발견한 진한 풀색의 봉지.

‘저 봉투 익숙한듸....’

얼마 전 다녀간 풀이를  산책시키며 똥을 담아 오던 똥봉투가 아닌가! 어쩌다 쓰레기통을 탈출한 그 봉투는 세탁기 밑으로 숨어 들어가 열흘간 잘 버티며 풀이의 똥을 퇴비로 만들어 버린 것이다.

 고작 파를 키울 뿐이던 나는 이제 퇴비까지 만들 수 있게 되었다.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도시농부”의 완성. 하지만... 도저히 그 퇴비를 써 볼 용기는 나지 않는다. (진심 냄새가 아주 지독했다 ㅜㅠ)


 매일, 매 순간 재밌거나 웃음이 나온다면 그건 나사 하나가 빠진걸 테지만 잠시 잠깐 피식 웃음이 나거나 다시 생각해도 재밌는 일들이 내 인생을 조금 더 반짝거리게 만들어주는 거 아닐까. 각잡혀 팽팽한 것보다 인생은 가끔 코미디인 쪽이 가장 좋다고 생각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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