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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ke green Jul 02. 2021

우리 딸 취미는 벽 타기

인수봉에 저 사람이 우리 딸 일리 없어.

 클라이밍은 여태껏 가져본 취미 중 가장 중독성이 강하다. 등반을 가거나 다음 등반을 생각하는 것으로 일주일을 보내고, 사람들을 클라이머와 일반인으로 구분한다. 등반을 가지 않는 주에 듣게 되는 질문은 대개 이런 식이다.

“이번 주엔 일반인 만나?”

아마 대부분의 클라이머가 그럴 것이다. 그동안 가져본 어떤 취미도 이런 적은 없었다. 그보다 훨씬 오래 즐겼던 스노보드의 경우도 사람을 보더와 일반인으로 구분한 적은 없었으니까… 인류애란 클라이밍을 통해 쌓이는 게 아닐까 싶기도 하다.


우리딸은 저런 건 안해요
꼭 2주 후. 엄마 아빠의 우리 딸내미는 월요일 한낮에 인수봉 정상에서 하강 준비를 하고 있다. “우리 딸내미는 저런 거 안 한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2018년 5월 등산학교를 졸업했다. 등산학교 마지막 수업을 듣던 주에 일산에 오신 부모님은 내가 도봉산 크랙에 열심히 손과 발을 끼워 넣고 있을 때 오빠와 북한산으로 등산을 가셨다. 바위가 많은 산이 예쁘고 워킹이 지루하지 않다고 좋아하셨고(엄마는 특히 바위산을 좋아한다.) 백운대에서 보는 풍경이 기대 이상이어서 감탄하셨다. 그리고… 인수봉 정상에 모여있는 클라이머들을 보고 놀라셨다.

인수봉. 취나드B 등반을 마치고.

“아이고~저저 저거 좀 봐라~효정이가 하는 암벽등반이라는 게 저런긴가?”

“당신은 참~무슨 소리 하노? (손사래) 우리 딸내미는 저런 거 안 한다~ 벽도 다 종류가 있!어!요! 신반에 있는 그런 벽이나 타지~저런 데를 갸가 우찌 가노?”

“하기사~저런 거는 못하긋재?”

아침에 등산학교에 간다는 내 얘기를 들은 부모님은 백운대에서 이런 대화를 나누셨다. 등산학교 이전에는 주로 볼더링과 스포츠 클라이밍을 했으니 엄마가 아는 내 등반은 인수봉에서의 그것과는 거리가 먼 것이었다. (헬멧까지 쓰고 높이 오르는?)

인수봉에 있는 저 사람이 우리 딸일리 없지~~

 그날 저녁 뭘 배웠냐는 질문에 문틈 사이로 요렇게 요렇게 손 발을 끼우는 동작을 취해가며 재밍을 설명하고 다음 주 졸업 등반에 대해 이야기하자 엄마 눈이 똥그래졌고 어이없어진 아빠는 웃으셨다.

“느그 아빠가 물어보길래 니는 그런 거는 안 한다고 했는데!!!”

“딸~간도 크다. 위험한 거 아니가??”

“그런 거” 하는 딸

 처음 클라이밍을 시작했을 때 비리비리한 딸이 건강해졌다고 엄마 아빠는 흐뭇해하셨다. 그도 그럴 것이, 평소 운동이라고는(겨울 한철 보드를 빼고는) 전혀 않고 잦은 야근과 스트레스로 말라가던 딸의 어깨와 팔이 그 취미 이후 단단해져 가는 걸 보고 얼마나 안심이었겠나. 그러던 딸의 취미가 인수봉에까지 닿자 이제는 그저 좋아할 일만은 아니라 생각하신 모양이다. 걱정하는 눈빛을 보내는 부모님께 안전한 등반을 약속드렸다.


꼭 2주 후. 엄마 아빠의 우리 딸내미는 월요일 한낮에 인수봉 정상에서 하강 준비를 하고 있다. 싸왔던 수박을 청설모에게 나눠주며 말이다. “우리 딸내미는 저런 거 안 한다”라는 말이 무색하게…

걱정 마세요~ 청설모 밥주러 온거예요~
 취미의 성장
배워두니 좋잖아?? 나 아니면 누가 감나무에 걸린 작대기를 구조하겠어?

 내 취미의 성장 이후 엄마 아빠는 티비에 나오는 등반 이야기를 허투루 보는 일이 없었다. 김자인 선수가 제2 롯데타워를 오를 때도 나에게 전화를 했고 서채현 선수가 올림픽 예선을 치를 때도 나를 생각하며 보셨다고 한다. 사실 나는 그 발끝에도 못 미치는 실력인데 내 등반을 눈으로 본 적 없는 부모님의 상상 속에서 딸은 그 대단한 선수들과 동급인 모양이다. 저 사람들은 대단한 클라이머가 아니라 [우리 딸이 하는 그 운동을 하는 사람]인 거다. 그 해 가을 감나무에 걸린 작대기 하나를 가지고 내려왔을 때도 클라이밍을 배우더니 유용하게 쓴다고 웃으셨다.

감나무에 걸린 작대기 구조작전

 한 번은 거벽 등반과 알피니스트에 관한 다큐가 티비에 방송되자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대단한 거 같지만 저건 너무 위험한 거 같다~ 저런 건 안 할 거재?”

“엄마는~내가 추위를 얼마나 타는데 저런 데서 등반을 하겠노~ 겨울에는 등반 안 한다 아니, 몬한다”


 그로부터 2년 후 2021년 1월 겨울. 나는 빙벽 등반을 시작했다. 등반이 없는 겨울을 견디지 못해 한번 따라나 가보자 했던 건데… 취미의 렙업. 인생은 항상 계획과는 다른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 같다. 매번 약속 못 지켜서 미안해요~ 내년엔 또 무엇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그래도 걱정 덜하시게 노력할게요. 안등 즐등!!


*안등즐등은 안전한 등반 즐거운 등반의 줄임말입니다 :D

어쩌다 빙벽. 인생은 알 수가 없는거다.


안등 즐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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