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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ke green Jul 07. 2021

조카, 우리 좀 거리를 둘까

인스타 친구는 되지 말걸 그랬어.

만원이 가져다준 용기

 나에게는 중학생이 된 두 조카가 있다. 오빠의 아들과 딸이다(*언니 쪽으로는 초등학생 조카도 있지만…). 지금이야 키가 나만큼 혹은 나보다 큰 중학생이지만 몇 년 전만 해도 두 녀석의 어깨는 내가 편안하게 손을 올려놓을 수 있을 정도로 낮았다. 지금도 조카들이 사랑스럽지 않은 건 아니지만 그때의 해맑은 귀여움은 어쩔 수 없이 그 시절에 머물러 있다.


 조카들이 초등학교 저학년일 때의 일이다. 명절을 의령 집에서 보낸 나는 오빠네 가족과 함께 부산에 가고 있었다. 비빔밥과 전으로 며칠을 보낸 명절용 위장에 상큼한 무언가를 넣고 싶었던 내가 말했다.

(나) 오빠야~ 우리 카페 들렀다 안 갈래??”

(오빠) 집에 가모 물끼 천진데 카페는 무슨 노므 카페고~물 무라!! 고마 가자.”

(새언니) 오빠, 나도 커피 한잔 하고 싶은데~”

(오빠) 느그는 우찌 그리 사람이 안되노~”

(나) 카페 보이모 사가게 차 세워라이.”

우리의 대화를 듣고 있던 조카들이 끼어든다.

(윤) 나도 가고 싶어요! 카페에는 코코아도 팔죠?”

(채원) 나는 밀크셰이크”

(오빠) 확!!! 마~ 안된다 캐도!!!”

(윤, 채원) 아~ 왜요~ 우리 카페 가요!!!”

(오빠) 니가 살 거 아이모 조용히 해라~”

(윤) 내가 살 건데요~ 우리 돈 있어요! 왜 우리 돈 갖고 사 먹을 건데도 못 가게 해요!!!”

 할머니 댁을 떠나오기 전 용돈으로 받은 만원을 손에 쥔 아이들의 목소리는 당당하기만 했다. 평소 같았으면 아빠의 호통에 꼬리를 내렸을 법 한데 만원의 힘이란 대단했다. 게다가 엄마와 고모가 든든한 아군인 상황이 아닌가. 어차피 상황은 4:1인 거다.

(나) 윤~고모도 사줄꺼양?? 난 레모네이드~”

(윤) 좋아요!!”

(오빠) 그라모 아빠도 아이스커피 하나 사도~안 그라모 안 간다.”

(채원) 그래요!! 오빠 우리가 사자!!”


아빠에게 큰 소리를 치고 나온 요 귀여운 반항아들은 학교 앞 슈퍼와 이 카페의 온도차에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잠시 후 카페로 힘차게 걸어 들어간 두 녀석들.

“네에??”

레모네이드가 4천 원이라는 말에 조카 녀석의 눈이 휘둥그레지더니 이내 세상을 40%나 잃은 표정이 되었다. 밀크셰이크와 코코아, 레모네이드에 아빠의 커피까지 사기에 할머니에게 받은 만원은 택도 없이 모자란 돈이다. 아빠에게 큰 소리를 치고 나온 요 귀여운 반항아들은 학교 앞 슈퍼와 이 카페의 온도차에 적잖이 당황한 기색이었다.


 “고모 목말라~얼른 계산해~”

이미 카드를 빼서 든 나는 괜히 그 귀여운 동심을 계속 골려주고 싶었다. 하지만 만 원짜리를 만지작거리며 “어쩌지?”라는 말만 연신 내뱉고 있는 둘의 모습에 참지 못하고 크게 웃어버렸다.

“하하~ 묵고 싶은 거 무라 요것들아~고모가 쏜다!”

“진짜요???”

“그럼 아빠 커피도 고모가 사주실 거예요…?”

“그렇다니까~”

“와~ 다행이다.”

그제야 잿빛이던 아이들의 얼굴이 제 색을 찾는다.

상황 역전
귀엽던 조카들은 이제 청소당번을 정하는 루미큐브에서 패를 숨기고 설거지 당번을 정하는 화투에서 밑장을 뺀다.

그렇게 귀엽던 조카들은 이제 청소당번을 정하는 루미큐브에서 패를 숨기고 설거지 당번을 정하는 화투에서 밑장을 뺀다. 영문도 모르고 나는 몇 번이나 두 녀석의 협공에 당해 청소와 설거지를 했었다. 이제는 그저 귀엽기만 한 꼬마들이 아니라 재미를 공유할 수 있는 인간이 되었다. 가끔 요즘 보는 웹툰을 공유하거나 클라이밍을 같이 하고 옷을 나눠 입을 때는 친구가 된 것 같아 좋았다. [조카 돌보기]가 아니라 [함께 놀기]가 가능해졌으니까.


 가족들이 모두 본가에 모였던 5월. 인스타그램 알림이 계속 오는 걸 보고 조카들이 내 아이디를 물어봤다. 나는 조카들의 사생활(?)이 조금 궁금하기도 해서 맞팔을 했다. 우리는 이제 웹툰도 같이 보고 클라이밍도 같이 하는데 심지어 인스타 친구이기까지 하다. 야호!!!!


아차… 단순한 이 생각이 내 큰 실수였다.


 공부를 해야 하는 이 중학생들의 일상은 생각했던 것보다 SNS에 많이 올라오지 않았다. 심지어 윤은 프로필 사진도 없이 계정이 깨끗하다.(그런 녀석이 대체 좋아요는 왜 누르는 거야.) 반대로 내 많은 커뮤니티는 SNS를 통해 소통한다. 어쩔 수 없이 내 쪽의 정보가  훨씬 더 많이 공개된다. 고모가 어디를 갔는지 무엇을 먹었는지 어떤 엉뚱한 짓을 하고 돌아다니는지…

신비주의는, 어른스러운 고모의 위엄은 끝났다. 조카들이 좋아요를 누르기 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어째 감시당하는 기분이 든다. 심지어 며칠 전 올린 음식 사진에 “저는요?”라는 디엠이 왔다. 다음엔 조카에게 맛있는 걸 사줘야 한다. 얻을 게 없는, 잘못된 선택이었다. 이건 분명 밑지는 장사다.


띠링.

오늘 또 한 조카 녀석의 “좋아요”가 올라왔다.

누르지 마 이것들아… 공부해 이것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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