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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ke green Jun 11. 2021

발등이 닮았어

어쩔 수 없는 아빠 딸이야~

햇살정원

경상대학병원 완화의료 병동의 햇살 정원.

이름에서 느껴지는 것처럼 햇살이 환하게 들고 가끔 바람이 부는, 싱싱한 나무와 꽃들이 모여있는 야외정원은 아니다. 조화와 인조잔디, 물레방아와 모형 오리, 토기들로 꾸며진 실내 휴게실로 아빠가 입원해있는 동안 매일 산책을 했던 곳이다. 산책이라고 해야 병동 밖을 나갈  없던 아빠와 함께   있었던 가장 푸른 공간... 그나마도 아빠와 내가 손을 잡고 걸어서 그곳을 다닐  있던 어느 날에 있었던 일이다.


당시 나는 아빠가 입원해 있던 진주의 경상대학병원과 일산을 왔다 갔다 했다. 프리랜서로 일을 하고 있었던 때라 일이 있을 때에는 작업공간이 갖추어진 일산에서, 나머지 시간은 병원과 고향집에서 주로 시간을 보냈다. 일이 많지 않아 아빠와 함께 보낼 시간이 그나마 많았던  지금 생각하면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시간도 지금은 너무 부족했다 느껴지지만..


그날은 일을 급히 마무리 짓느라 컨디션이 좋지 않았던 건지 가벼운 감기에 걸려 콧물을 훌쩍이며 아빠를 만났다.


“훌쩍.. 흠흠”

 “또 감기 걸렸나?”

병동 내의 복도를 한참 왔다 갔다 걷다가 햇살 정원의 벤치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아빠가 물었다.

옆에 있던 언니가 말을 보탠다.

“맨날 감기재~이기(얘가) 운동한다 우짠다해도 약골이다~”

사실 나는 1년의 절반 이상을 약한 감기와 함께 살아가는 편이다.

“훌쩍, 내가 아빠 닮아서 감기를 달고 산다 아이가~”내가 대답하자 아빠는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딸~그런 거는 안 닮아도 되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나는 얼마나 철없는 말을 해버린 건가... 아빠의 약한 유전자를 닮아버렸다는 딸의 대답이 한없이 한없이 약해져만 가는 아빠에게 얼마나 아픈 얘기였을까.


사실 그때까지도 아빠가 곁에 없을 미래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었고, 우리가 이 힘든 시기를 건너가 당도한 어느 한날에 다 같이 웃으며 이런 얘기를 할 수 있을 줄 알았다.


 “그때 우리 정말 힘들지 않았나??”


평소와 다름없이 내 감기를 걱정해주는 아빠의 모습에서 마음의 불안을 덮고 안도했었다. 그래서 투정 부리며 나는 ‘감기에 자주 걸리는 것까지 아빠를 쏙 빼닮은 아빠의 딸~’이라고 말하고 싶었던 거였다.

‘우리는 괜찮아. 오늘도 보통의 오늘이야...’

평소와 다름없는 날 위한 걱정이 오래오래 계속될 줄 알았고 그러기를 바랐다. 내 걱정이 되어서라도 조금 더 아빠가 내 곁에 있어주길 바랬던 이기심...


만약 그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시간이 이렇게 짧을 줄 알았더라면 나는 내 가장 강하고 예쁜 모든 구석에서 아빠의 유전자를 찾아 말해주었을 거다.


그 후로 시간이 더 흘러 아빠를 보내드려야 했던 때.

장례식장에 온 오빠 친구가 나에게 말했다.

“형제 중에 쩡이 니가 아빠를 제일 많이 닮았네~”

어릴 때부터 엄마 닮았다는 얘기만 항상 들어왔던 나는 그 장소에서 처음이다시피 한 아빠 닮았다는 말이 의아하면서도 내심 고맙고 행복했다. 내 안에 아빠의 모습이 있다는 그 말이 내내 머릿속을, 심장 언저리를 훑었다.

‘아빠 닮았네~ 쩡이 니가 젤 아빠를 많이 닮았네~’  

거울을 한참 봤다.

‘어디야?? 어디지??’

거울 속 내 얼굴에서 그 오빠 찾아낸 아빠와 닮은 포인트를 찾을 수 없던 나는 이내 어딘가 느낌이 닮았나? 점잖고 푸근하고 인상 좋은 아빠와 내가 닮았다니 나도 어느 정도 쓸만한 인상인 건가??? 라며 나름 긍정적인 결론을 내렸다.


그로부터 한참이 지난 어느 날 방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내 맨발을 들여다보다가 나는 그 안에서 아빠를 발견했다. 길고 잘생겼던 아빠의 발과 무지외반증에 못생긴 내 발이 꼭 닮을 리는 없지만 흉 없이 매끈한 피부에 살이 없어 조금 불거져 보이는 뼈, 그 뼈 위로 튀어나온 핏줄이 아빠의 발등과 꼭 닮았다고...


“아빠~~ 우리 발등이 꼭 닮았네~그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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