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흙탕 속에 두고 온 내 발
모를 심기 위해 물을 댄 논에 아빠를 따라 들어갔다 발이 빠지지 않아 낑낑댄 적이 있다. 그런 내게
‘그 건 거기 심어두고 내일 찾으러 오자’
하며 아빠는 장난을 쳤다.
아빠가 나를 두고 가지 않을 걸 알면서도 나는 이상하게 조바심이 났다. 아마도 공기의 변화 때문이었을까? 쨍한 해 아래 서 있을때는 재밌게 쫍쫍대던 시원한 진흙탕이 해가 지기 시작하자 전혀 다른 것이 되는 기분.
발바닥 아래에 뭔가가 꿈틀대는 것도 같았다. 톨스토이의 바보 이반에 나오던 그 땅속 악마같은 물컹하고 차가운 그런 것들 같은?? 혹은 거머리와 뱀...
나는 나를 공격할 무언가를 잔뜩 상상하며 울기 시작했다.
“뽁~”
아빠가 나를 번쩍 안아 올리자 애를 써도 빠지지 않던 발이 쉽게 뽑혀 나왔다. 그 때 아빠가 껄껄 웃었는지 ‘요 귀찮은 것~’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발에 진흙이 잔뜩 묻은 채 길가로 옮겨진 나는 말했다.
“다행이다. 이제 발을 가져갈 수 있겠네!!!”
어렵고 곤란한 상황에 처할 때 가끔 논에 빠진 그 발을 떠올린다. 내일 찾으러 오자 한 아빠의 농담처럼 발을 그 자리에 심어두고 온 것만 같은 마음...이도 저도 하지 못하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못하고 갈팡질팡 하는 나는 마치 발이 없는 것만 같다고...
이런 나를 나를 슈퍼맨 같은 아빠가 다시 안아 길 위로 옮겨 주었으면 좋겠다고...
#아래뜰에박힌내발 #아빠는슈퍼맨
그날의 아빠에게 나는 괜한 장난으로 골려주고 싶은 작고 귀여운, 사랑스러운 딸이었겠지?? 지금은 어때요?? 아빠에게 지금의 나도 여전히 사랑스러운 그런 딸일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