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빠는 엄마를 지키는 기사
2019년 6월의 오늘
밭일을 미룰 수 없어 본가에 내려갔던 엄마가 일산 으로 올라왔다. 엄마의 귀환으로 아부지는 말수가 늘었다. 고추는 잘 심었는지, 동네는 어떤지, 오는 길은 힘들지 않았는지, 병원에 다녀온 얘기며 먹었던 밥(이 얼마나 불만족스러웠는지) 얘기까지, 나와 있는 동안 얼마나 엄마가 그리웠는지 알 것 같은 대화였다.
반려란 그런 것일까. 나에게는 보이지 않던 모습을 자꾸 보여주는 아빠. 살아온 인생의 반 이상을 함께 한 엄마만이 이런 상황속에 아빠의 투정을 이끌어낼 수 있는거다.
엄마와 오랜만에 한 침대에서 잠이 든 아빠는 다음날 아침 갑자기 씩씩 화가 난 채 숨을 몰아 쉬었다.
“와~~ 진짜, 어후”
“와??무슨 일인데요~”
아빠는 간밤 꿈 얘기를 시작했다.
(꿈속에서) 엄마와 산책 중에 마주친 새파랗게 젊은 놈이 엄마 키가 작다고 놀려대서 화가 나 참을 수 없어 주먹을 휘둘렀다고 한다.
”내 생전 사람을 그렇게 패본 적이 없는데 어찌 화가 나던고 쌔가 빠지게 패줐다 아이가~아따 열 받대... 그랬드마 즈그 새이(형)가 와서 아이고 잘못했다고 사과를 하는 거라~마 싹싹 빌었다!!”
우리는 그 꿈 얘기가 너무 웃겨 깔깔 웃었다. 아직 눈곱도 덜 뗀 채 오랜만에 진짜 크게 웃었다.
“우와~아부지 무서워서 내도 이제 엄마 키 작다고 놀리면 안 되겠네~”
“니도 조심해라이.”
“윽수로 고맙네~~ 힘도 없으낀데 고생했소!!! 아침 묵자~”
엄마는 키가 작다. 작은 나보다도 더 작지만 어릴 때는 엄마만큼 무섭고 또 강한 사람이 없었다. 그래서 우리는 엄마를 작게 느껴본 적이 없다. 지금도 봐. 이 힘든 상황을 평온한 일상으로 끌어가는 강한 사람이잖아.
“당신은 내 말만 들어~나쁜 생각 말고!! 내가 당신 살릴 거니까.”
그런 엄마를 아빠만큼은 종종 귀엽게 여겨 가끔 엄마가 짜증을 낼 때까지 짖궂은 장난을 치기도 했다. 잠든 엄마 코를 붙잡았다가 잠이 깨면 모르는 체하길 반복한다던지... 하는 장난을 치고 엄마가 화를 내며 아빠 등짝을 때리면 그 모습을 사랑스럽게 보며 깔깔 대곤 하셨다. (좋지 않은 꿈을 꾸다 깬 엄마를 보며 “아이고 꿈꿨져??” 하는 걸 목격한 적도 있다.)
엄마와 이렇게 오래 떨어져 있는 일은 없었던 터라 걱정이 되었던 걸까? 아니면 오랜만에 만난 엄마에게 아직 당신의 건장함을 보여주고 싶었던 걸까? 어쩌면 무엇도 해볼 수 없는 현재에 대한 답답함과 분노가 그런 꿈으로 발현된 것이었을지도 모르겠다.
아침을 먹으면서도 아빠는 그 흥분이 가라앉지 않아 중간중간 새파란 놈의 얘기를 꺼냈다. 현실에서 일어날 리 없지만 어쩌면 아빠는 나의 그녀를 용감하게 지켜낸 영웅담을 오래오래 되새기고 싶었는지도 모른다.
‘어이~내가 당신을 지켰어’
뭐가 됐던... 아빠가 이겼으니 됐다.
그 새파란 놈이 몹쓸 병이고 아빠가 용감하게 그것을 때려눕히는 것이면 좋겠다고 마음 깊이 바랬다.
버르장머리 없는 새파란 놈... 혼쭐이 났겠지? 그러니까 꺼져버리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