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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like green Jul 01. 2021

나물 비빔밥

냉동밥은 잘 비벼지지가 않아

담에는 꼭 새 밥 해서 비벼드릴게~


1인 가구의 장보기


 1 가구의  장보기에는 많은 제약이 따른다.  야채나 신선식품이 그렇다. 아무도 책임져주지 않을 건강한 독거인이 되기 위해서는 야채와 과일을 많이 먹어야 하지만 정량대로 파는 채소나 과일은 항상 나에겐 너무 많다. 상하거나 무르거나 썩거나 마르거나...  끝이  좋지 않다. 가끔은 먹으려고  건지 버리려고  건지 싶어 회의감이  때도 있다.


 냉장고는 꽤 오래 식품들을 신선하게 보관해주지만 세상에 영원한 건 없는 법! 그 안에서 사물의 본질이 변하기도 한다. 한 번은 냉장고에서 굴러다니는 우엉을 발견한 적이 있다.

‘이게 무슨 뜬금없는 무슨 우엉이야...’

맹세컨대 나는 절대로! 우엉을 산 적이 없다.

단단한 우엉을 쪼개자 쭈글쭈글한 단면이 주황빛이다. 제주 구좌에서 올라왔다던 한 때 흙당근이었던 아이다. 커다란 마른 대추로 변해버린 사과가 나온 적도 있다. 가끔 내 기억력을 의심할만한 것들이 튀어나오는 곳도 마법 같은 냉장고다.


 이렇게 얘기하면 꽤나 아무것도 해 먹지 않고 라면으로 연명하는 자취생 같지만... 이래 봬도 나는 요리가 취미다. … 특기라고 안 했다. 좋아하는 것과 결과물의 퀄리티가 비례하지는 않는다는 점에서 앞으로도 쭉 취미일 거지만…


 문제는... 내 즉흥적인 장보기 습관에 있다.


 3월 중순이었다.

토마토 마리네이드가 먹고 싶어 방울토마토를 조금 사볼까 하고 들른 야채가게에서 가게 주인이 권한 방풍나물과 취나물을 각각 한 봉지씩 샀다. 별다른 상술도 없었다. 하지만 권하는 족족 손에 들고 있다.

“지금 딱 맛있고 싸~된장과 참기름, 다진 마늘을 조금 넣고 조물조물 무치면 얼마나 맛있게요~“

가게 주인의 말에 이미 군침이 돌고 있었다. 이 가게의 한 봉지는 그냥 한 봉지가 아니라 하안~~ 봉지이다. 다시 말하지만 1인 가구다. 그나마 다행인 건 두 나물의 조리방법이 같다는 정도??


 뭘 샀는지도 모르게 두 손 가득한 장보기 짐을 내려놓자 그제야 정신이 번쩍 든다. 바로 데치랬는데 언제 다 데치고 또 언제 다 먹냐. 귀찮다. 아주 귀찮다.


 그래도 기대한 내 침샘에 어느 정도 성의는 표하고 싶어 반반씩 나물들을 나눠 데친 후 된장, 다진 마늘, 참기름, 깨소금을 넣고 조물조물 나물을 무쳤다. 낫 배드~방풍과 취나물은 향이 좋아 누가 해도 맛있을 것 같다. 그 과정에 지쳤나 보다. 간단히 완성된 두 종류의 나물을 소분해서 냉장고에 넣고는 그대로 뻗어 잠이 들었다.


좀 모자라야 아빠 딸

그 잠깐의 낮잠, 꿈속에서 아빠를 만났다.

아빠는 원래 딱히 가리는 것이 없는 식성이지만 특히 나물, 국수, 비빔밥 이런 걸 좋아하셨다. 나는 꿈에서 잠들기 전에 조물조물 무친 나물을 자신 있게 꺼내고 냉동해놨던 밥을 꺼내 해동시켰다.

냉동? 꿈인데도 냉동??!?

갓한 밥처럼 맛있게 비벼지지 않는 나물밥을 아빠에게 대접하고 잠시 후 잠에서 깼는데 웃음이 났다.

아빠가 봄나물 비빔밥을 드시러 다녀가셨구나...

근데 왜 냉동밥이야~현실 반영 너무하네...


 어쩌면 꿈이지만 새 밥이 지어지는 그 시간에 아빠가 사라져 버릴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던 건지도 모른다. (그게 꿈이란 걸 인지 했었는지 아닌지 기억은 안 나지만…)


 아빠는 이미 내 요리에 몇 번을 당한 경험이 있으시다. 어릴 때 했던 짜디짠 순대볶음, 아빠 생에 첫 파스타,...(그때 아빠는 파스타가 맛있다는 말 대신 새우도 넣었네~라는 말만 세 번을 반복하셨다)


이번에도 어쩌면 역시 막내가 차리는 밥상은 여전히 별로구나~ 이래야 내 딸이지~하셨을지 모르겠다. 그래도 다음 꿈으로 찾아오실 때는 냉동밥 대신 꼭 새 밥을 드릴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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