함께 살아가는 모든 오늘은 보통!
몇 년 동안 아빠는 일산에 있는 암 전문 병원을 다니고 계셨다. 처음 병이 발병해 수술 후 5년 완치 판정을 받기 직전에 병이 재발해 이후 표적치료제로 암세포가 커지는 걸 막고 있었다.
병원에 올라오는 날은 며칠 전부터 불안을 안았고 더 크지도 줄지도 않은 암세포에 대한 진단을 받은 날은 몇 개월치의 안심을 충전해 집으로 내려가셨다. 불안과 안심이 반복되는 날들이었다. 우리는 약을 먹어도 완전히 사라지지 않는 아빠 몸속의 그 이물질들을 원망스러워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평생을 그렇게 다독이며 살아도 괜찮다고 위로했었다.
2019년 5월 23일
‘아빠가 배가 아파서 병원에 갔는데 아무래도 이상이 있는 모양이다. 다니던 병원으로 빨리 가보라고 해서 내일 병원에 올라가기로 했다...”
엄마의 전화를 받기 직전 나는 분수대에서 뿜어져 나오던 물줄기에서 쌍무지개를 보며 감탄하고 있었다.
불안은... 삽시간에 모든 걸 바꿔 놓는다.
밝은 낮을 어두운 밤으로, 따뜻한 봄을 추운 겨울로..
쌍무지개가 언제부터 불길한 징조였나. 심장이 덜컥 내려앉는다. 왜 갑자기?
며칠 전 모가 벌어진 아빠 칫솔을 버리기 전에 욕실 바닥청소를 했었는데 그 탓이었을까? 그게 아니면 지금에 감사하지 못하고 7년 전의 사진을 보며 그때를 그리워한 탓일까.... 그것도 아니라면, 언제까지 이런 일의 반복인가 하고 한숨을 내쉰 탓인가?
어디쯤엔가 내가 잘못 건드린 스위치가 있을 것만 같다. 변화가 시작된 지점이, 이 사건의 복선 같은 것이 어딘가에 깔려있을 것만 같아 과거의 어느 순간들을 자꾸만 떠올려본다. 내가 무언가를 잘못한 게 아닐까... 작은 내 실수가 신의 심기를 건드린 게 아닐까.
다음 날. 엄마 아빠가 올라왔다.
좋은 결과가 아닐 거라는 생각을 애써 떨치며 입원 수속을 밟는다. 어떤 결과에 대한 생각 없이 이대로, 오늘이 영원히 계속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시간이 더 흐르지 않았으면...
내내 걱정이, 불안이 온 마음을 휘감던 그 와중에도 오랜만에 보는 아빠와 엄마가 반가웠다는 건 이상하게 생각해야 할 일일까??
안부를 묻고 어떻게 된 일인지를 듣고…평소와 같은 대화를 이어나갔다.
“딸, 니는 머리가 늦게 셀 거니까 걱정마라~ 엄마도 아빠도 흰머리가 늦게 났거든. 그런 건 고마워해도 된다.”
“아~ 글나??? 이왕이면 풍성한 숱도 주시지ㅋㅋㅋ”
그러자 엄마가 고마움의 지분을 갑자기 요청한다.
“머리숱은 우리도 우짤 수 없다. 근데 나름 좋은 그 피부는 내가 줬다이~”
별거 아닌 것 같은 우스갯소리가 그런 와중의 불안을 잠재운다.
“니는 집에 가서 편히 자라~”
“아이다. 오늘은 내가 요서 잘게. 엄마가 집에 가서 좀 씻고 그래 온나”
“주인도 없는 집에서 그랄 수야 있나~ 그라고 아빠는 내가 있어야지~”
“그라모 다 같이 자자 마~”
그날 밤은 좁은 침대를 나눠 같이 잠이 들었다. 실은 잠을 한숨도 잘 수 없는 밤이었지만 혹시 서로의 잠을 방해할까 아무 말을 하지 않았다.
불안을 안고 있지만 서로를 바라보고 있으면 웃게된다. 평소처럼 바라보고, 웃고 농담을 할 수 있다. 보통의 날들처럼...
그날의 일기 - 밤이 깊어져야 비로소.
창밖으로 어렴풋한 달빛이 든다. 어쩌면 가로등 불빛이나 어떤 건물의 꺼지지 않는 간판 불빛이었는지도 모르겠다. 밤이 깊어져야 비로소 별과 달이 더욱 밝고 아름답다. 나무들 사이로 지나가는 바람의 대화나 풀잎의 속삭임이 그제야 들린다. 깜깜한 밤이 찾아와 우리의 시간이 더욱 소중해졌다.
잡은 부드럽고 따뜻한 손, 투정을 감추는 차분한 목소리, 함께 걷는 이 복도, 시시콜콜한 대화...
훗날 떠올릴 지금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하고 그리울지... 버틴다 여기는 이 순간의 모든 것들이 어쩌면 우리를 지탱해주고 있는 힘일지 모르겠다.
부디.
내일도 우리의 오늘이 보통의 오늘이 되기를 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