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습격이야!!"
초원에 알렌의 외침이 울렸다. 모든 코뿔소들이 알렌의 방향으로 고개를 돌렸다. 빠르게 달려오는 사자들의 모습이 보였다.
"아이들과 어르신들을 도망치고, 젊은 코뿔소들이 맞서서 최대한 시간을 끈다."
어디선가 와콤이 튀어나오며 소리쳤다. 다른 코뿔소들은 일사불란하게 움직였다.
"대형을 유지해 절대 혼자서 깊숙이 들어가서는 안돼. 세 명씩 짝을 지어 서로 엉덩이를 맞대고 사자들이 포위할 수 없도록 해! 그리고 내 지시에 따라 적당히 시간이 벌리면 즉각 도망쳐!"
와콤은 며칠 사이에 피해를 최소화시킬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다. 지난번 습격 이후로 사자들의 포위에 처했을 때 벗어날 수 있는 방법을 고민했고, 세 마리의 코뿔소가 엉덩이를 맞대고 사방에서 오는 적을 막아서는 방법을 고안했다.
"레니, 나도 같이 사자들을 막아야겠어. 네가 게이드를 맡아서 지켜줄 수 있겠지?"
글래디가 달려오는 사자들을 기다리며 레니에게 말했다. 자신이 게이드를 지켜줄 수 있다면 좋겠지만 게이드만 챙길 수는 없었다. 우두머리는 아니지만 무리의 젊은 코뿔소로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네, 알겠어요. 삼촌"
레니는 글래디의 말에 즉각 대답했다. 레니는 자신이 나서야 할 때를 찾고 있었다. 늘 게이드에게 짐을 지고 있는 마음이 들었다. 앞으로는 게이드를 어떤 순간에서도 지켜내겠다고 다짐했던 레니였고, 지금 그 순간이 왔다.
"게이드 앞장서! 이제 내가 네 뒤를 따를게"
게이드는 글래디에게서 눈을 떼고 달렸다. 지금은 아빠를 붙잡을 상황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아빠는 강하기 때문에 반드시 살아올 것이었다. 레니는 달리는 게이드의 뒤를 따랐다.
사자들은 곧 들이닥쳤다. 사자들은 날이 갈수록 전략적으로 바뀌었다. 몇 마리가 한 번에 달려들어 포위하는 방식에 견고함이 생겼다. 하지만 코뿔소들도 바뀌었다. 와콤의 전략은 사자들의 포위를 쉽게 뚫었다. 전에는 코뿔소 한 마리를 포위하기 위해 2~3마리의 사자가 달려들었다면 이제 3마리를 포위하기 위해 10마리의 사자가 달려들어야 가능했다. 물리적으로 가능하지 않은 숫자였기에 코뿔소들은 포위되지 않았다. 사자들은 날카로운 발톱으로 코뿔소의 등을 찢었고,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 넣었다. 코뿔소들은 뿔로 들이받아 사자를 날렸다. 넘어진 사자를 발로 밟고, 체중을 실어 뭉갰다. 한동안 그들의 싸움은 치열하게 번졌다. 코뿔소들의 전략적인 변화에 사자들은 조금씩 물러서기 시작했다. 그중 한 마리의 사자가 코뿔소들의 경계를 넘어 앞서 도망친 코뿔소들을 쫒았다. 싸움에 온 정신을 쏟고 있던 코뿔소들은 그것을 눈치챌 수 없었다.
게이드는 예전보다 훨씬 느린 속도로 달렸다. 인간들에게서 돌아올 때는 레니도 지쳐있어서 느끼지 못했지만 속도가 현저하게 느려졌다. 아무래도 코뿔이 바람을 갈라주지 않아서 일거라고 레니는 생각했기에 마음은 급했지만 게이드를 재촉할 수는 없었다. 삼촌들이 사자들을 잘 막아서 그 들이 자신들을 쫒지 않길 바랄 뿐이었다.
레니의 바람과는 달리 사자 한 마리가 레니와 게이드를 쫒고 있었다. 처음에는 격차가 있었지만 달리는 와중에 그 격차는 줄어들고 있었다. 사자는 곧 레니의 뒤를 따라잡았다. 레니는 사자가 지척까지 와서야 느낄 수 있었다. 레니는 외쳤다.
"게이드 앞만 보고 달려!"
레니는 외침과 동시에 다른 방향으로 달렸다. 원래 사자는 가장 뒤에 코뿔소만 쫒았다. 게이드와 다른 방향으로 달린다면 사자는 자신을 쫓아올 것이고, 게이드가 없다면 더 빨리 달릴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게이드가 다른 방향으로 멀어지는 것을 그리고 사자가 자신을 쫒는다는 것을 확인한 레니는 더 빠른 속도로 달렸다. 레니와 사자의 거리가 점차 벌어졌다. 하지만 레니의 예상치 못한 것이 있었다. 사자는 본능적으로 사냥을 했다. 레니와의 거리가 벌어지는 것을 느낀 사자는 방향을 틀어 게이드를 쫒았다. 게이드의 속도가 훨씬 느리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느낀 것이었다. 게이드를 쫒는 사자를 눈치챈 레니는 사자가 달린 방향으로 방향을 틀었다.
사자는 빠른 속도로 달려 게이드를 덮쳤다. 게이드는 사자를 뿌리치려 했지만 코뿔이 없는 상태에서는 어려웠다. 어쩔 수 없이 게이드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사자는 넘어진 게이드의 목덜미에 송곳니를 박아 넣으려 했다.
'퍽!'
레니가 달려와 코뿔로 사자를 들이받았다. 사자는 몇 발자국 날아가 땅에 떨어졌다. 그 틈에 레니는 게이드 곁으로 다가가 사자를 막아섰다. 충격이 좀 있었지만 사자는 금세 다시 일어서 레니를 공격하려 했다. 레니는 물러서지 않았다. 게이드를 뒤에 둔 채로 앞으로 달려 나갔다. 하지만 상대는 레니의 들이받기를 피했고, 목표를 잃은 레니는 중심을 잃고 넘어졌다. 넘어진 레니 위로 사자가 덮쳤다. 사자는 레니의 몸통을 발톱으로 누른 채 목덕미를 향해 이빨을 들이댔다.
'퍽!'
이번에는 게이드였다. 코뿔이 없어 충격은 약했지만 사자를 저지할 정도는 되었다. 그 사이 레니는 일어섰고, 사자를 코뿔로 들이받았다. 사자와의 간격은 다시 벌어졌다. 사자는 다시 달려들었고, 코뿔소들은 다시 떼어내었다. 사자는 한 마리였지만 아직 어린 코뿔소들이 상대하기에는 벅찼다. 사자 하나, 코뿔소 둘의 싸움은 계속되었다. 점점 시간이 지날수록 레니와 게이드의 몸에 사자의 발톱에 의해 할퀴어진 상처가 늘었다. 코뿔소들의 움직임이 점점 느려지는 것을 노련한 사자는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었다. 사자는 느려진 코뿔소들에게 상처를 하나씩 늘려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레니와 게이드는 버티기 어려워졌다. 사자는 그동안의 수많은 사냥의 경험을 통해 때를 느낄 수 있었다. 사자는 뒤로 물러서는 듯하더니 이내 속도를 내어 뛰어올라 레니를 덮쳤다. 레니는 느릿한 움직임으로 겨우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사자는 레니를 노린 것이 아니었다. 사자는 레니 뒤에 서 있던 게이드의 목덜미를 물었다.
'탕!'
<25화에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