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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호 Oct 10. 2024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어

 며칠뒤 타냐는 팡과 함께 초원으로 나섰다. 생각보다 부상을 당한 동료들의 상태가 나빠 섣불리 보호소를 비울 수가 없었다. 타냐는 매일 팡을 재촉했고, 팡은 어쩔 수 없이 타냐와 둘만이라도 초원을 살펴보기 위해 나섰다.


"확인할게 뭔지는 언제쯤 말해줄 거야"


그동안 매일같이 시달렸지만 정작 나가서 확인해야 될 것에 대해 분명하게 말해주지 않은 타냐에게 팡이 물었다.


"그게 정확히 뭔지 모르겠어. 그걸 확인하기 위해서 나가는 거야."


"확인해야 하는걸 알아내기 위해 나간다는 거야?"


"그래 맞아."


"갑자기 그 생각이 든 이유는 뭔데?"


"코뿔소들이 습격한 날. 그날 이상한 것을 느꼈어. "


"이상한 것?"


"응. 뭔가 설명하기는 애매하지만 놓치고 있는 것이 있는 것 같았어. 그게 뭔지 확인해보고 싶어."


"알아들으라고 하는 설명이 아닌 거 같은데?"


"팡. 우리가 여기 있는 이유가 뭐야? 코뿔소를 보호하기 위해서야. 근데 코뿔소들은 우리를 습격했고, 탈출을 했어. '특단의 조치'를 할 땐 코뿔소들이 울고 불고 발악을 했다고."


"원래 야생동물들은 위험하다는거 잘 알잖아. 동물들은 우리가 하는 일을 이해하지 못해. 그러니까 단순히 공포스러운 순간에 참지 못하고 흥분을 한 거라고. 며칠 동안 우리랑 잘 지내고 있었잖아. 우리가 동물들에게 이해를 바라고 일을 하는 건 아니지. 그저 그들이 밀렵의 타깃이 되지 않고, 초원에서 잘 살아가면 되는 것 아닌가?"


 타냐는 팡의 말에 덧붙이려다가 말을 멈췄다. 사실 타냐도 그렇게 생각했다. 그 순간의 무서움이 흥분을 시킨 것이고, 본능적으로 행동하는 동물들에게 흔히 일어날 수 있는 행동들이라 생각했다. 동물들에게 이해를 바란 적도 없고, 그저 그들이 초원에서 살아가면 그뿐이었다. 어쩌면 초원에서 잘 살아갔으면 하는 바람을 눈으로 확인하고 싶은 마음일 수도 있었다.


"그걸 확인하고 싶은 건지도."


 타냐는 창밖을 응시하며 팡이 들릴 듯 말 듯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 한참을 말없이 달렸다. 팡의 질문을 계속되었지만 타냐는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느라고 대부분의 질문을 듣지 못했고, 나머지는 적당한 대답이 생각나지 않아 대답할 수 없었다.


 한참을 달리던 팡의 눈에 사자무리가 이동하는 모습이 보였다. 팡은 사자들의 눈에 띄지 않게 트럭을 멀리 돌렸다. 지금은 둘 밖에 없는 상태였기에 어떤 야생동물과의 충돌도 피해야 했다. 사자무리의 눈을 피해 조용하게 트럭을 몰던 팡의 눈에 이상한 것이 눈에 띄었다. 팡은 타냐에게 말했다.


"타냐 저것 좀 봐야 할 것 같은데."


"응? 아 뭐?"


"저거 말이야."


"뭐야? 코뿔소야?"


 타냐는 트럭 전방에 놓여있는 코뿔소 시체를 발견했다. 이미 많이 부패한 상태였고, 야생동물의 습격이었는지 살점이나 내장을 남아있지 않았다. 하지만 뼈의 윤곽만으로도 알아볼 수 있었다. 타냐는 나름 코뿔소 전문가였다. 타냐는 코뿔소 시체를 살펴보다가 한 가지 이상한 것을 찾았다.


"코뿔소야. 근데 팡 이 코뿔 말이야."


"어? 응!"


  팡이 주변을 살피다가 타냐 옆으로 다가와 대답했다.


"이거 1호 맞지? 우리가 자른 코뿔소 뿔"


 1호는 코바에게 인간들이 붙인 이름이었다. 특단의 조치 대상 1호, 게이드는 2호였다.


"아... 그러네... 혹시 밀렵일 가능성은?"


"그랬다면 뿌리까지 잘라갔을 거야. 그리고 뼈밖에 없지만 이 얼굴, 덩치까지 1호야. 내가 옆에서 지켜봤었으니까.


 코뿔소 시체는 코바영감의 것이었다. 타냐는 속이 쓰렸다. 눈물이 왈칵 쏟아질 것 같았다. 1호와 많은 시간을 보낸 것도, 정이 많이 든 것도 아니었지만 자신이 보살폈던 코뿔소가 죽어있었다. 슬픔인지 분노인지 알 수가 없었다. 그저 마음이 답답했고, 왜 마음이 이렇게까지 불편한 것인지 이해를 할 수 없었다. 야생은 초식동물에게 위험한 곳이다. 초식동물에게 위험이 일상이 되는 곳, 그곳에서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걸 눈으로 보게 되니 속이 상했다. 그런 타냐의 기분을 눈치챈 팡이 말했다.


"이곳에 이렇게 있는 건 위험해 적당히 수습하고 떠나자. "


타냐는 아무 말이 없었다. 타냐의 기분이 자신에게도 옮겨오고 있음을 느낀 팡이 뿌리치듯 말을 이었다.


"우리가 막을 수 있는 일이 아니었잖아. 초원에서는 늘 있는 일이라고!"


 그렇게 말하고 팡이 움직였다. 트럭 뒤에서 삽을 들고 나왔고 1호의 뼛조각을 모아 작은 구덩이를 파고 묻었다. 주변에서 돌을 주어와 그 위에 놓았고, 그 위에 풀을 한 아름 꺾어와 놓았다. 이 모든 일은 팡이 혼자 하면서도 어떤 불평도 하지 않았다. 타냐를 위로하는 것보다는 그 일이 더 쉬웠다. 타냐는 그동안 넋을 잃고 있었다. 쏟아질 것 같은 눈물을 주체하는 것만으로도 타냐는 벅찼다. 팡이 수습을 끝내고 타냐를 재촉했다.


"얼른 타. 어두워지기 전에 코뿔소 무리를 살피고 돌아가려면 서둘러야 해."


 타냐는 말없이 팡이 시키는 대로 했다. 트럭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타냐는 정신을 차리기로 했다. 충분히 야생에서는 있을 수 있는 일이었다. 자신이 막을 수 있는 것은 밀렵이지, 초원의 섭리를 어찌할 수는 없다고 위로했다. 그렇게 생각하니 마음이 조금 편했다.


 또다시 한참을 달려 팡은 코뿔소 무리를 발견했다.


<25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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