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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호 Oct 12. 2024

특단의 조치는 보호가 아니었다.

 팡이 운전하는 트럭은 코뿔소 무리 근처에 다다랐다. 타냐는 어떻게 가고 있는지도 모르게 머릿속이 1호에 대한 생각으로 가득 찼다. 그의 죽음이 의미하는 것은 생각보다 컸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이 일이 옳은 일이라면 1호는 어떻게든 잘 살아가고 있어야 했다. 불과 며칠이었다. 그 짧은 사이에 1호는 죽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이 어쩌면 잘못된 일이지 않을까 의심이 들었지만 애써 부정하고 있었다. 만일 그렇다면 자신이 어디까지 무너져 내릴지 예상도 되지 않았다. 그런 타냐의 잡념을 깨트려준 건 팡의 말이었다.


 "타냐, 저기 코뿔소들이야. 아무래도 가까이 가지는 못할 거 같아. 코뿔소들이 놀랄 수도 있고, 흥분해서 우리를 공격한다면 우리끼리로는 위험해. 여기서 지켜보자."


"알겠어."


 타냐도 이해했던 부분이기에 반문 없이 대답했다. 타냐는 시트 뒤에 있던 망원경을 집어 들었다. 코뿔소 무리를 자세히 살폈다. 한참을 두리번거리던 타냐는 찾고 있던 것을 발견했다. 아직 어린, 코뿔이 없는 코뿔소 2호였다. 2호는 다행히 아주 건강한 상태로 보였다. 보호소에 있을 때보다 훨씬 잘 뛰었다. 다른 코뿔소들과 장난도 치고, 풀도 뜯고, 진흙에서 뒹굴었다. 한결 마음이 놓인 타냐는 팡이 들릴 듯 말 듯 혼자 중얼거렸다.


"봐, 잘살고 있잖아. 1호는 운이 나빴을 뿐이야."


 "응? 뭐라고?"


 "아냐. 그냥 그렇다고."


 팡도 망원경을 들고 초원의 여기저기를 살피고 있었다. 타냐가 코뿔소들에 관심이 있었다면 팡은 주변을 살피고 있었다. 초원에서는 1초도 경계를 늦춰선 안된다는 것이 팡의 신념이었다. 특히 지금 둘 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슨 일이 벌어진다면 안전을 보장할 수 없었기에 그의 신경은 더 곤두서 있었다. 그런 팡의 눈에 무언가 발견됐다.


 "그나저나 저기 봐."


 팡은 한 지점을 가리켰다. 코뿔소 무리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 타냐는 팡이 손가락으로 가리킨 지점을 망원경으로 응시했다.


"사자들 이잖아!"


"응! 심상치 않아."


 팡의 말과 동시에 사자들은 달렸다. 코뿔소의 울음소리가 들렸다. 다른 코뿔소들에게 신호를 보내는 듯했다. 무리의 반 이상이 도망치기 시작했다. 2호도 무슨 이유인지는 모르겠지만 시간을 끌다가 뒤늦게 도망가는 무리를 따랐다. 남아있던 코뿔소와 사자들의 혈투가 벌어졌다. 사자들은 날카로운 발톱과 이빨을 사용해서 코뿔소들을 몰아붙였다. 코뿔소들은 코뿔을 활용해 사자들에 맞섰다. 코뿔소들은 생각보다 코뿔을 잘 활용했다. 사자들의 몸통에 꽂아 넣기도 하고, 넘어진 사자를 찍어 누르기도 했다. 들러붙은 사자를 떼어낼 때도 유용했다.  사자의 발톱과 이빨에 비해 날카롭지는 않았지만 특유의 단단함과 코뿔소가 가진 힘이 더해져 강한 무기가 되었다.


 타냐는 놀랐다. 코뿔소들끼리의 싸움에서 코뿔을 이용하는 것은 종종 봤었다. 하지만 맹수에게서 코뿔을 활용하여 맞선다는 것은 처음 알았다. 초식동물은 늘 맹수들의 식량감이라고, 오로지 도망 다니는 것만이 그들이 살아가는 방식이라고 생각해 왔다. 맹수들이 큰 코뿔소에게 덤비지 않는 것은 덩치가 가진 힘에서 나온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코뿔이 그들이 가진 유일한 무기였다. 코뿔소가 가진 힘을 상대에게 위협이 될 수 있게끔 해주는 것은 코뿔뿐이었다.


 타냐는 자신이 지금까지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는 것을 알았다. '특단의 조치'는 코뿔소가 야생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무기를 빼앗는 것이었다. 코뿔소들을 살리기 위한 것이 아닌 더 큰 위험으로 내모는 행위였다. 밀렵의 위험으로부터 '보호'라는 이름으로 그들의 무기를 빼앗고 야생으로 내몰았던 것이다. 자신들이 했던 것은 보호가 아니었다. '특단의 조치'는 인간의 생각이었다.


 코뿔소와 사자들은 점점 지쳐갔다. 사자들은 코뿔소들의 반격에 주춤주춤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사냥의 기회를 보는 것이지 도망치는 것은 아니었다. 그중 한 마리의 사자가 혈투가 벌어지는 현장을 돌아 코뿔소들이 도망쳤던 방향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도망친 무리에서 뒤처진 코뿔소를 쫒는 것이리라. 타냐는 순간적으로 소리쳤다.


"팡! 쫓아."  


팡도 같은 것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그렇게 할 수는 없었다. 자연의 일에 개입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단체 규율이었다. 팡이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대꾸했다.


"안된다는 거 알잖아. 쫒아서 어쩌려고."


"알아. 일단 확인만 하려는 거야."


"안돼. 규율뿐만이 아니야. 지금 더 가까이 붙었다가는 사자들과 코뿔소 무리 사이에 끼게 된다고."


"어떻게 되든 지금 쫒아야지. 그냥 이렇게 지켜만 볼 수 있어? 지금 쫒지 않는 다면 이 순간을 며칠이고 몇 달이고 후회할 거야 아니 어쩌면 평생을 후회하며 살게 될지도 모르지. 나만 그렇다고 생각해 팡?"


 팡은 타냐의 말에 대꾸를 할 수 없었다. 타냐가 진심으로 속상해하고 있는 것이 느껴졌다.  지난 며칠 동안 의기소침해 있던 타냐를 지켜봤다. 그리고 타냐 못지않게 팡도 2호에게 어느 정도 정을 가지고 있기에 타냐 때문이 아니더라도 자신도 가고 싶었다. 그리고 타냐의 말처럼 후회하고 싶지 않았다.


"몰라, 위험해지더라도 내 탓은 하지 마!"


 팡은 한마디를 던지고 트럭을 거칠게 몰았다. 조심스럽게 운전하는 것은 의미가 없었다. 이미 야생의 한복판에 있었다. 차는 사자가 달려간 방향으로 거침없이 달렸다.


"저기!"


 타냐가 외치며 손가락으로 가리킨 방향에는 사자와 코뿔소 2마리가 혈투를 벌이고 있었다. 코뿔소 중 한 마리는 분명 2호였다. 코뿔소들의 몸에는 벌써 상처가 여럿 있었다. 사자도 지친 상태였고, 어딘가 부상을 당한 듯 보였지만 사냥을 계속하기에는 충분했다. 코뿔소들과 사자들은 여러 차례 엎치락뒤치락했다. 위험한 순간들이 계속되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아찔한 순간들이 많아졌다. 타냐는 총을 만지작 거리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사자를 쫓아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단체의 규율은 인간이 야생에 개입해서는 안 됐다. 거기다 사냥을 하고 있을 땐 더 그랬다. 사냥을 하는 입장이든 당하는 입장이든 모두 생존이 달린 문제였기에 절대 개입해서는 안 됐다. 그랬기에 타냐는 총을 계속 만지작거리고만 있었다.


 일촉즉발을 상황들은 계속됐다. 코뿔소들은 지금 쓰러진다고 해도 이상할 것이 없어 보였다. 사자는 사냥이 진행될수록 더 노련해졌다. 상대가 지쳐갈수록 사냥의 본능이 살아나는 느낌이었다. 타냐는 총구를 사자에게 조준했다. 자신은 할 수 있었다. 단 한 발이면 사자를 쫓아내고 2호를 구할 수 있었다. 어쩌면 그게 공평한 것이지 않을까. 자신들이 2호의 뿔만 잘라내지 않았어도 사자를 충분히 쫓아낼 수 있었을 것이다. 그랬기에 자신들이 이미 야생에 개입한 것이라고 생각했다. 타냐는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하지만 손이 덜덜 떨렸다. 제대로 조준을 할 수가 없었다. 사실 타냐는 총을 쏴본 적도 많지 않지만 살아있는 생명에게는 쏴본 적이 없었다. 타냐는 떨리는 손을 주체하기 위해 총을 살짝 내리고 숨을 가다듬었다. 그 순간 사자는 뛰어올랐다. 2호가 아닌 다른 한 마리를 덮치려 했다. 다행히 그 코뿔소는 피했지만 문제는 사자가 2호에게 달려들었다. 타냐는 순간적으로 비명에 가까운 소리를 질렀다.


"안돼!"


'탕!'


 총성과 동시에 한 발의 총알이 사자의 오른쪽 엉덩부근에 박혔다. 사자는 충격으로 몇 발자국 옆으로 날아가 떨어졌다. 팡의 손에 방금 전까지 타냐가 쥐고 있었던 총이 들려있었다. 사자는 고통 때문인지 쓰러진 채로 몸을 뒤틀었다. 멀리 있어서 소리가 들리지는 않았지만 몸부림만으로도 고통의 신음이 전해졌다.



<27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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