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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호 Oct 09. 2024

새로운 코뿔

 며칠을 달려 글래디 일행은 무리로 돌아올 수 있었다. 게이드는 무리로 돌아오는 동안 가장 기본적인 말들 외에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런 게이드를 효과는 없었지만 레니가 따라다니면서 말을 걸었다. 게이드는 타냐로부터의 배신감과, 며칠 전 자신의 코뿔이 잘려나갔을 때의 두려움에서 아직 빠져나오지 못했다. 그리고 사라져 버린 자신의 코뿔이 아직도 적응이 되지 않았다. 코뿔이 없는 코뿔소를 상상해 본 적도 없었다. 자신이 지금 그런 상태였다.


 달리기를 해도 코 끝에 느껴지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바람을 가르는 느낌은 고사하고, 오히려 바람을 역행하는 기분이 들었다. 탈출할 때 레니가 보여줬던 '쾅'도 현재 게이드의 우울함에 한 몫했다. 코뿔이 없다면 자신은 이제 엄두도 내지 못하는 것이었다. 바람을 가르지도, 들이받기를 할 수도 없다면 이 초원에서 자신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은 누군가에게 의지하는 것뿐이었다. 평생을 그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이 게이드를 더 우울하게 만들었다.


 무리로 돌아온 글래디를 기다렸다는 듯이 와콤이 불러 세웠다. 그리고 그간의 일을 일러 받치기라도 하듯 술술 풀었다.


"글래디, 네가 떠난 후로 수 차례 사자들의 습격이 있었어. 우리는 그 습격마다 최선을 다했지만 어쩔 수 없는 희생이 있었지. 어른 코뿔소 여럿이 희생됐고, 그중에 코바영감님도 있었어."


"코바영감님이..."


 글래디는 말을 잊지 못했다. 발이 느리고 코뿔이 사라진 코뿔소에게 초원에서 살아남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이렇게 빨리 그가 죽음을 맞이할 것이라고는 생각해지 못했다. 그리고 이제 게이드가 그러한 처지가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쓰렸다. 그런 글래디를 의식했는지 와콤이 말을 이었다.


 "걱정하지 마 게이드는 아직 어리니까 충분히 우리가 지킬 수 있을 거야."


 "응. 그래야지."


글래디는 걱정이 되었지만 친구의 의지를 굳이 꺾고 싶지는 않았다. 글래디가 말을 이었다.


 "그래서 말인데 이제 네가 돌아왔으니 우두머리 자리는 다시 네가 하는 게 좋겠어. 너에게 힘든 짐을 지어줘서 미안하지만 애초에 난 우두머리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없었어."


 "아니, 넌 충분히 자격이 있어. 와콤, 특히 지금처럼 무리에게 위기가 처했을 때는 나보다 너의 능력이 필요해. "


"지난 며칠 동안 느낄 수 있었어. 너의 빈자리를, 우리에게 글래디 네가 필요해. 난 너만큼 무리를 지켜내지 못했어. 그럴 때마다 생각했지. 내가 랭글러라면, 글래디 너라면 나처럼 희생을 만들지는 않았을 거라고."


"와콤, 나도, 랭글러도 너처럼 멋지게 해내지 못했을 거야. 랭글러는 강했지. 힘도 세고, 덩치도 컸어, 발은 또 얼마나 빨랐는지. 사자 네다섯 마리는 한 번에 달려들었어도 랭글러를 당해낼 수는 없었을 거야. 랭글러에 못 미치지만 나도 힘이 세고 빠르지. 우리는 적이 강했을 때 강했어. 맞서서 싸워야 했을 때는 우리가 필요했어. 랭글러와 나의 코뿔은 사자들에게 충분히 위협이었으니까. "


"잘난 척을 더 할 생각인가? 그래서 네가 우두머리로 어울린다고."


"근데 지금은 적이 달라. 우리에게 겁을 먹지 않아. 인간은 우리를 공격하는 이유도 모르겠고, 사자들은 기존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습격했어. 우리는 맞서 싸우기보다는 피해야 해. 만약에 나와 랭글러였다면 그 습격에서 더 많은 희생을 치렀을 거야. 우린 사자들이 도망칠 때까지 맞섰을 테니까. 하지만 넌 달랐어. 넌 경계를 알고 있었으니까. 희생을 최소한으로 줄일 수 있는 경계를 분명히 알고 행동했어. 인간이 초원의 섭리를 거스른 순간부터 우리에게는 새로운 코뿔이 필요해졌어. 넌 그걸 해낼 수 있어. 이게 인간으로부터, 사자들로부터, 그 밖에 수많은 초원의 위협으로부터 네가 우리를 지켜낼 수 있는 능력이라고!"


"어..."


 와콤은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글래디의 지적은 정확했다. 자신에게 우두머리를 맡기겠다는 결정을 하기 위해 글래디가 얼마나 많은 생각과 고민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와콤은 그저 수긍하기로 했다. 글래디가 돌아와서 인지, 아니면 글래디가 자신을 믿어줘서인지 어쩌면 잘 해낼 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럼 와콤 잘 부탁해. 난 좀 쉬어야겠어."


"어.. 그래, 좀 쉬라고."


 글래디는 와콤과의 대화를 마치고 풀이 죽어 엎어져 있는 게이드 옆으로 갔다. 여전히 말이 없고, 기운은 더 없었다. 글래디는 게이드의 옆에 누웠다. 그리고 풀이 죽은 게이드를 향해 얘기했다.


 "게이드, 충분히 슬퍼하고, 충분히 걱정해도 좋아. 지금 할 수 있는 건 그것뿐이니까. 그렇지만 네 뒤에는 아빠가 있어. 네가 코뿔이 없어 위험할 일은 없을 거야. 네가 코뿔이 없다고 해도 널 사랑하지 않을 코뿔소는 없을 거야. 그 생각이 네 걱정과 슬픔에 맞서 싸울 수 있는 새로운 코뿔이 되었으면 좋겠구나."


 게이드는 대답을 하는 대신 코뿔이 사라진 코를 들이밀며 글래디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게이드와 글래디는 오랜만에 지는 석양을 바라보며 평화롭게 잠에 빠져들었다.


<24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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