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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호 Oct 07. 2024

놓치고 있는 것

 글래디는 무사히 나와 아이들이 있는 곳에 도착했다. 게이드의 상태를 살피려다 코뿔이 잘려나가고 없는 것을 확인했다. 억장이 무너져내리는 느낌이 들었다. 하지만 겉으로 티를 내지는 않았다. 가장 상심이 클 것은 게이드였으니까.


"무사.. 하구나. 게이드 다행이야."


"아빠.. 흐으응"


 게이드는 흐르는 눈물을 참을 수가 없었다. 며칠간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 그리고 보고 싶었던 아빠와 친구를 만났다. 이 순간을 얼마나 기다려 왔는지. 감정이 복받쳐 주체할 수가 없었다. 옆에 있던 레니는 게이드의 우는 모습을 보고 마지막 끈을 놓고 목놓아 울었다. 그동안 울고 싶어도 차마 대놓고 울 수는 없었다. 자신은 죄인이었으니까. 비겁했으니까 눈물도 사치라고 생각했다. 글래디는 아이들이 우는 모습을 지켜봤다. 자신도 눈물이 차오를 것 같았지만 꾹 참았다. 아이들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잠시 아이들을 지켜본 글래디는 아이들에게 말했다.


"가자. 언제 인간이 뒤를 쫒을지 몰라. 최대한 멀리 떨어지자."


 울던 아이들은 계속 울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레니가 앞장섰다. 그 뒤를 게이드가 그 뒤를 글래디가 따라 달렸다. 한참을 달려 언덕을 발견할 수 있었다. 글래디가 말했다.


"오늘은 여기서 쉬어가자. 여기라면 인간들이 따라붙는 걸 쉽게 알아챌 수 있겠어. 긴장도 풀려 많이 피곤할 거야. 모처럼 푹 쉬고 내일 무리로 돌아가자."


 글래디의 말을 기다렸다는 듯이 레니와 게이드는 푹하고 쓰러졌다. 아직까지도 게이드는 두려움이 젖어 있었다. 눈을 감으면 윙- 소리를 내며 자신의 코뿔을 두 동강 내던 인간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지켜보기만 하던 타냐의 얼굴도 보였다. 게이드는 눈을 떠 고개를 수 차례 흔들어 생각을 흩뿌렸다. 게이드는 누워있던 글래디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글래디는 게이드가 불편하지 않게 몸을 틀어 게이드를 품었다.


 같은 시각, 타냐는 알 수 없는 감정에 휩싸였다. 알 수 없는 감정은 분노였다가, 우울함이었다가, 걱정이었다가, 서운함이었다. 감정의 상태만 다를 뿐 흥분한 상태는 계속되었다. 누가 듣건 말건 상관하지 않고 계속 중얼거리며 손이 가는 대로 물건들을 엉망으로 만들고 있었다. 진정이 되지 않았다. 게이드의 마지막 눈빛, 표정, 분위기가 의미하는 것은 분명 분노였다. 코뿔 하나였다. 손톱을 정리하듯, 머리를 정리하듯 그냥 그렇게 필요에 따라 정리할 수 있는 것일 뿐이었다. 시간이 지나면 다시 자라날 것이고, 당장 밀렵꾼들의 손에서 안전할 수 있는 조치였다. 그런 이유로, 그런 사소한 것 하나를 잘라냈을 뿐인데. 그것은 다 게이드를 위한 것이었다. 그걸 몰라주는 서운함과, 분노, 그리고 걱정이 번갈아가며 감정을 휘저어 놓고 있었다.


 타냐는 지금의 상태를 견딜 수가 없었다. 자신이 확인을 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이 추제 할 수 없는 감정이 어떤 것인지. 그 감정이 정확하게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 확인해야 했다. 자신이 놓치고 있는 것이 있다고 생각했다. 타냐는 자리를 박차고 나가 팡을 찾았다.


"팡, 트럭을 운전해 줘. 코뿔소 무리로 가보자"


"갑자기?"


"확인해 봐야 할 게 있어."


"뭔지는 몰라도 진정이 되면 움직이자. 너 지금 매우 흥분 상태야."


"아니, 확인하지 않고는 진정이 안돼!"


"알겠어. 알겠으니까. 상황을 좀 보자고. 곧 날이 저물 거야. 아까도 봤지만 코뿔소들이 매우 흥분상태였어. 너처럼 말이야. 어둠 속에서 흥분한 코뿔소를 마주치는 게 얼마나 위험하겠어. 그런 위험에 너까지 데리고 초원으로 나갈 수는 없어."


"난 어떻게 돼도 괜찮아. 그러니까 쫌..."


"난 안 괜찮아! 다른 동료들이 다친 것 좀 보라고. 정말 계속 이래야겠어? 상황을 먼저 파악해야지! 일단 다친 사람들 치료를 해야 되고, 움직일 수 있는 사람들로 조를 짜서 초원으로 나갈 준비를 할게. 내일 날이 밝은 대로 초원으로 나갈 수 있도록 준비할게. 밤새 진정 좀 하고 있어."


"응."


 타냐는 마지못해 대답했다. 자신의 감정만 앞세운 것에 대한 부끄러움이 몰아쳐 얼굴이 타는 듯 화끈거렸다. 타냐는 숙소로 향했다. 계속 팡을 지켜보고 있을 자신이 없었다. 그리고 지금은 혼자 있는 편이 낫겠다고 생각했다. 숙소에 도착한 타냐는 계속해서 게이드 생각뿐이었다. 침대에 누워 잠을 청하려 해도 오히려 정신은 또렷하게 게이드가 떠나기 전 상황을 재현했다.



<21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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