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노용호 Oct 06. 2024

우리는 도와주려던 거였잖아!

  글래디는 작게나마 멀리서 들려오는 게이드가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다. 멀리서 들려온 작은 소리였지만 분명하게 게이드의 소리였다. 글래디는 순간 이성의 끝을 놓을 뻔했다. 간신히 이성의 끈을 붙잡고 글래디는 외쳤다. 


"내가 소란을 일으킬 테니 어떻게든 게이드를 데리고 도망쳐!"


  글래디는 그 말을 끝으로 튀어나갔다. 단번에 보호소까지 접근한 글래디는 담장을 들이받았다. 흙으로 만들었지만 제법 단단하게 만들어진 담장은 글래디의 분노 앞에 쉽게 부서져 내렸다. 담장 따위로는 글래디를 막을 수 없었다. 담장이 부서지는 소리 덕분에 인간들의 이목을 끌기에는 더없이 좋았다. 곧 인간들이 몰려들었다. 글래디는 더 날뛰었다. 트럭을 들이받고, 인간들을 위협했다. 총을 들지 않은 인간들은 글래디의 상대가 되지 못했다. 글래디를 붙들려던 인간 셋을 한 번의 몸부림으로 날려버렸다. 글래디는 보호소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인간들이 총을 들 수 없도록 한 명도 놓치지 않고 위협했다. 글래디는 레니가 무너진 담장으로 들어올 수 있도록 인간들을 보호소 안쪽으로 몰았다. 담장이 비어있는 틈에 레니는 보호소 안으로 들어왔다. 


 레니는 보호소 안으로 들어와서 미세하게 게이드의 냄새를 쫒을 수 있었다. 태어나서 지금까지 늘 함께 했던 친구의 냄새였다. 그리운 냄새였다. 글래디는 냄새를 쫓아 게이드를 찾았다. 레니는 인간 곁에 쓰러진 게이드를 발견했다. 레니는 인간을 위협했고, 인간은 레니의 위협에 점차 뒤로 물러섰다. 적당한 거리가 확보되자 레니는 게이드의 상태를 확인했다. 게이드의 얼굴에 코뿔이 없었다.  레니는 게이드의 얼굴을 오래 쳐다볼 수 없었다. 이번에도 자신이 늦었다. 결국 게이드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생각에 절망했다. 자신이 너무도 원망스러웠다. 조금만 더 빨리 달렸다면, 밖에서 인간들을 지켜보는 것으로 시간을 끌지 않았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끝도 없이 자신을 원망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하지만 글래디가 최대한 빨리 이곳에서 도망치라고 했다. 자신이 게이드를 데리고 도망쳐야 글래디도 도망을 칠 수 있었다. 


 레니는 인간을 경계한 채 뒷발로 게이드를 툭툭 건드리며 소리쳤다.


"게이드! 일어나!"


게이드는 꼼짝하지 않았다. 레니는 뒷발에 더 힘을 주어 게이드를 흔들었다. 


"게이드 제발! 일어나라고! 도망쳐야 해! 글래디 삼촌이 시간을 끌고 있어 우리가 도망쳐야 삼촌도 도망칠 수 있다고!"


 게이드는 레니의 힘이 실린 발길질 때문인지 '글래디'라는 이름 때문인지 반응했다. 살짝 띄어진 눈에 익숙한, 너무나 보고 싶었던 레니의 모습이 보였다. 게이드는 레니를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평생을 같이한 레니의 뒷모습, 목소리, 발길질까지 너무 그리워했던 레니였기에 한 번에 정신을 차렸다. 너무 반가운 마음에 그리고 그동안 있었던 일들에 설움이 복받친 게이드는 울먹거리며 소리쳤다.


"레니!" 


"게이드 시간이 없어. 달릴 수 있겠어?"


"응!"


"내가 앞장설 테니 바로 따라와! 이번에도 날 놓친다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


"걱정하지 말라눙!"

 

 레니는 밖으로 달려 나갔다. 게이드는 분노 가득한 눈으로 타냐를 쳐다보고 레니의 뒤를 따랐다. 타냐도 분명하게 느낄 수 있는 정도의 분노였다. 레니는 무너진 담장으로 곧장 달렸다. 뒤를 따라오는 게이드를 신경 쓰며 달렸다. 게이드가 나가는 길만 제대로 알았다면 절대 앞장서지 않았을 것이다. 이번이 게이드 앞에서 달리는 마지막이라고 생각했다. 다시는 게이드를 뒤에 두고 달리지 않겠다고, 어떤 일이 있어도 자신이 게이드의 뒤를 지켜줄 것이라고 다짐했다. 


 레니는 무너진 담장을 지나 글래디와 숨어있던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뒤쫓아 오는 인간들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레니는 게이드에게 말했다.


"잠깐만. 글래디 삼촌에게 우리가 나왔다는 것을 알려야겠어."


 레니는 주변에 가장 큰 나무를 찾아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레니는 그 어느 때보다 코뿔에 집중했다. 마지막 순간 몸을 띄어 코뿔에 체중을 실었다.  


'쿵!'


 글래디의 들이받기에는 비할바가 없는 초라한 소리였지만 글래디에게 분명히 전달되었을 것이라 생각했다.


 글래디는 분명하게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자신의 체력에 한계가 왔다고 생각했기에 더없이 반가운 소리였다. 아직 인간들은 글래디를 제압할 채비를 마치지 못했다. 글래디는 달라붙는 인간들을 한 차례 더 위협하여 간격을 벌렸다. 그리고 발을 구르기 시작했다. 인간들은 빈틈없이 글래디를 포위했지만 도망치기로 마음먹은 글래디를 막을 수는 없었다. 글래디는 인간 하나를 향해 달렸다. 아슬아슬하게 인간은 글래디를 피했고, 그 틈으로 글래디는 달렸다. 자신이 들어온 무너진 담장을 향해 달렸다. 아이들이 무사하다면 이제 글래디를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 


"그만! 멈춰! 쫒지 마!"


 글래디가 도망치는 것을 파악한 팡이 소리쳤다. 도망치는 것이라면 굳이 막을 필요는 없었다. 인간들이 진정했고, 다친 사람을 살폈다. 팡은 게이드 곁에 홀로 남겨 두고 온 타냐가 생각이 났다.


"다친 사람들은 치료소로 옮겨. 너희 둘은 날 따라와."


팡은 비교적 양호해 보이는 사람 둘을 데리고 타냐가 있는 곳으로 달려갔다. 타냐는 다행히 겁을 먹고, 주저앉아 있었지만 별다른 이상은 없어 보였다. 타냐가 무사한 것을 파악한 팡은 게이드가 사라진 것을 알아챘다. 


"괜찮아? 다친 곳은 없어?"


팡은 타냐에게 물었다. 


"응 괜찮아. 너는?"


"다행히도. 멀쩡해."


"팡, 게이드가 탈출했어. "


"괜찮아 어차피 '특단의 조치'는 마쳤고, 놓아줄 것이었잖아."


"근데 이상해. 느낌이 화가 난 것 같았어. 우리가 도와주려던 거였잖아! 게이드는 그게 아니었어! 이해를 바란 건 아니지만 그래도 그동안 그렇게 잘 지냈는데 끝이 이래? 우린 게이드를 도와주려던 것이었잖아!!"


 타냐는 게이드의 마지막 모습에 받은 충격으로 계속 중얼거렸다. 팡에게 하고 있는 얘기였지만 대답을 원하는 말은 아니었다. 그냥 앞에 누가 있던 없던 답답한 마음을 얘기할 뿐이었다.


<21화로 이어집니다.> 





이전 19화 우린 너를 보호하려는 거야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