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을 달리던 글래디는 코바영감이 얘기했던 그 냄새를 맡았다. 달콤하면서도 오래된 나뭇잎에서 나는 냄새. 달리는 것에 집중하고 있어 알아채지 못했지만 한참 전부터 나고 있었다. 글래디는 달리는 속도를 줄였다. 일단 코바영감이 얘기했던 곳의 근처에 도달을 했다는 것에 감사했다. 방향이 맞았고, 며칠을 내내 달려온 것이 의미가 있었다는 사실에 감사했다. 사실 며칠이 지났을 무렵부터 불안했다. 이 방향이 아니면 어쩌나 하는. 이렇게 시간을 낭비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이 시간 동안에도 게이드에게 무슨 일이 생길 수도 있다는 생각에 몇 번이고 돌아가고 싶었다. 다시 방향을 잡아보자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내 그 생각을 접었다. 지금은 이게 최선이었다. 다른 어떤 방향도 지금으로선 이 방향보다 나을 것은 없었다. 그렇게 불안한 마음을 다잡으며 이를 악물고 달려왔다. 그리고 찾았다. 글래디는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여기서부터는 인간들이 어디서 나타나도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한참을 주변을 살피던 글래디의 눈에 트럭이 보였다. 멀리서 윤곽만 희미하게 보였지만 이 초원에서 저렇게 크고 빨리 달릴 수 있는 것은 인간들의 트럭 밖에 없었다. 글래디는 근처 바위뒤로 몸을 숨겼다. 글래디의 방향으로 지나지는 않지만 눈에 띄어 좋을 것은 없었다. 글래디는 트럭의 방향을 눈으로 좇았다. 트럭에 집중하고 있는 그때 레니가 나타났다. 레니는 글래디를 발견하지 못했다. 트럭을 쫒는 것인지 트럭으로 돌진했다.
"무모한 녀석 같으니."
트럭과 레니 사이의 거리는 아직 한참 멀었다. 글래디는 달렸다. 곧 레니를 따라잡았고, 레니와 트럭의 사이를 가로질러 달렸다. 레니는 트럭을 쫒다가 글래디를 발견했다. 글래디가 달려간 방향으로 틀어 글래디의 뒤를 쫓았다. 글래디는 얼마 더 달린 뒤에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눈으로는 계속해서 인간들의 트럭을 쫒았다. 레니가 글래디의 뒤를 따라와 멈춰 섰다.
"어떻게 된 일이야! 분명 내가 쫓아오지 말라고 하지 않았나?"
"삼촌을 쫓아 온 것이 아니에요. 저도 할 일이 있어 왔을 뿐이라고요."
"무슨 일? 이건 애들 장난이 아니라고 인간들이 얼마나 끔찍한지 그만큼 들었으면 이제 알아먹어야지! 방금 전에도 봐! 무턱대고 그렇게 인간을 쫒으면 어쩌려고? 인간들에게 잡히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
글래디는 화를 내면서도 인간들에게서 눈을 떼지 않았다.
"잡히면 게이드가 있는 곳으로 가겠죠. 지금처럼 어디에 있는지도 모르고 초원을 달리느니 인간들이 게이드 옆으로 데려다준다면 그것도 좋은..."
"멍청한 소리! 코뿔소를 그 자리에서 죽이는 인간들도 있어. 게이드가 잡혀간 건 그나마 운이 좋았을 뿐이야. 코뿔소를 죽이지 않는 인간들에게 잡혔을 뿐이라고."
레니는 아차 싶었다. 그건 생각도 못한 일이었다. 사실 자기 딴에는 좋은 생각이라고 생각했다. 게이드가 있는 곳으로 인간들이 데려다준다면 그때 게이드를 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 보면 될 거라고 생각했다. 레니는 자신의 생각이 너무 짧았던 것이 부끄러웠다. 글래디는 말을 이었다.
"그래서 두고 오려고 한 거다. 알았으면 지금이라도 돌아가."
글래디는 계속해서 인간들을 응시하고 있었다.
"아뇨. 그럴 수 없어요. 저는 게이드에게 약속했어요. 내가 구하러 가겠다고 말이죠."
"방금처럼 구하기는커녕 너마저 위험할 뻔했어. 레니, 그런데도 그런 얘기가 나오는 거야? 내가 누누이 말하지 않았어. 넌 아직 어리고 더 크면 네가 나서야 할 때가 올 거라고."
"나 때문에 게이드는 위험에 빠졌어요. 게이드가 인간들에게 끌려갈 때 저는 그 자리에 있었어요. 겁이 나서 나설 수가 없었어요. 그때 나서야 했어요. 어떻게든 구했어야 했다고요. 난 비겁하게 도망쳤어요. 그리고 게이드가 없는 내내 그날 그때 다른 선택을 했어야 했다고 후회했죠. 이젠 알아요. 그렇게 도망치고 뒤에 숨어서는 어른 코뿔소가 될 수 없다는 것을요. 덩치가 커지고 달리기가 더 빨라 진다고 어른이 되는 건 아니잖아요. 약속을 지키고, 지켜야 하는 것 앞에서는 용기를 내야 어른이 이 된다고 아빠가 말했어요. 나는 랭글러의 아들이에요. 적어도 이제는 아빠의 이름 앞에 비겁해지고 싶지 않아요. 코뿔소라면 지켜야 할 것 앞에서는 용기를 내야 해요."
글래디는 인간들에게서 눈을 떼고 레니를 봤다. 지금 레니의 모습은 어린 시절 랭글러를 떠올리게 했다. 랭글러는 크고 강했다. 날카로운 코뿔과 투지는 코뿔소뿐만 아니라 초원의 그 누구도 그를 함부로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글래디의 진정한 강함은 지켜야 하는 것 앞에서 나왔다. 무언가를 지켜야 하는 상황이 오면 그는 몇 배의 힘과 몇 배의 속도를 냈다. 투지는 맹수와 같았다. 레니가 그런 랭글러의 피를 이어받았다는 사실을 새삼 느끼는 순간이었다. 글래디는 레니를 믿어보기로 했다. 적어도 레니가 그의 아들이라면 충분히 게이드를 구할 수 있을 거라는 느낌이 들었다.
"좋아. 그럼 내가 시키는 대로 한다. 네가 날 쫓아 온 것이 아니라도 이젠 내 말을 들어야 해. 그것마저 어기겠다면 흠씬 두들겨 패서라도 돌려보내주마."
"그럼요 삼촌, 무엇이든 시켜만 주세요. 돌아가라는 말만 빼고는 뭐든 들을게요."
"일단 인간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가보자. 따라와"
"넵!"
글래디는 앞장서 달렸다. 인간들과의 거리가 멀리 떨어져서 희마하게 보였다. 한참을 인간들이 사라진 방향으로 달리던 글래디는 무언가를 발견하고 레니에게 신호를 주었다. 글래디와 레니는 얼마 가지 않아 큰 바위 뒤에 몸을 숨겼다.
"저기 앞에 보이지? 인간들의 트럭이 들어간 곳."
"네"
"일단 저곳으로 인간들이 들어갔으니 주변을 좀 더 살펴보자."
"네, 삼촌"
<19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