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래디는 쉬지 않고 달렸다. 해가 있고 없음으로 며칠이 지났는 지를 가늠할 뿐이었다. 오로지 쉬는 시간은 물가에서 목을 축일 때뿐이었다. 쉰다고 해도 쉴 수가 없었다. 게이드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지 않았다. 그럴 때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달리는 것뿐이었다.
레니도 달렸다. 레니도 마찬가지로 쉬지 않고 달렸다. 물가가 나오면 목만 간신히 축이고 다시 달렸다. 하지만 글래디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길을 잘못 들었을 리는 없었다. 해가 지는 방향으로 곧장 달리기만 하면 되니까. 글래디는 상관이 없었다. 자신이 지금 달리고 있는 곳은 게이드가 있는 곳이었다. 그곳으로 글래디가 먼저 갔을 뿐 자신은 글래디의 뒤를 따라 달리고 있는 것이 아니라 게이드를 구하기 위해 달리고 있는 것이었다.
같은 시각 게이드는 우리 바닥에 아무렇지도 않게 털썩 주저앉은 타냐의 옆에 누워있었다. 타냐는 게이드의 머리에서 시작해 등으로 꼬리까지의 등선을 쓰다듬어주고 있었다. 게이드는 타냐의 손길이 좋았다. 타냐가 쓰다듬어 줄 때는 마음이 편해졌다. 낯선 곳에서의 두려움, 가족과 친구가 있는 초원에 대한 생각이 사라졌다. 게이드는 스르르 감기는 눈을 거스르려 하지 않았다. 게이드는 초원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가족과 친구들이 있는 곳, 그리고 이곳에서도 더 있고 싶었다. 타냐의 옆에서 싱싱한 풀과 깨끗한 물을 마음껏 마시고 싶었다. 모두가 여기서 살 수는 없을까. 행복한 상상을 하며 게이드는 잠이 들었다.
게이드가 잠이 든 것을 알아챈 타냐는 쓰다듬는 걸 멈췄다. 그리고 게이드의 상태를 살폈다. 상처도 이제 다 나았고, 전보다 며칠사이에 덩치가 더 커진 느낌이 들었다. 움직임에도 가벼움이 생겼고, 활동을 할 때도 생기가 넘쳤다. 그래서 그런지 거칠거칠한 피부마저도 맨들 해진 느낌이 들었다. 타냐는 이제 때가 되었다고 생각했다. 아쉽지만 게이드를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할 때.
우리를 나선 타냐는 안전을 담당하고 있는 펑에게 말했다.
"이제 게이드도 자연으로 돌려보내야 할 때가 된 것 같아."
"아쉽네. 아직 어려서 그런지 순하고, 잘 따랐는데. 제법 애교도 있었고."
"그러니까 말이야. 그래도 건강을 되찾아서 기쁘네."
"그럼 내일쯤 내보내는 게 어때? 며칠 더 있다 보내고 싶지만 '특단의 조치'가 필요한 코뿔소들이 아직 많아."
"저번에 밀렵꾼들 싹 잡아들여서 좀 여유가 있던 거 아니었어?"
"그게 그렇게 쉽게 사라지나. 임시 조치일 뿐이지. 눈에 띄지 않을 뿐이지 계속 싹은 자라고 있어."
"하... 쉽지 않네. 알겠어 내일 '특단의 조치' 후에 게이드를 초원으로 돌려보내는 걸로 알고 있겠어. "
"그래 수고하라고."
팡은 자리를 떴다. 타냐는 다시 우리로 들어가 잠들어 있는 게이드 옆에 앉았다.
게이드가 미소를 머금은 채로 잠들어 있었다. 행복한 꿈을 꾸고 있는 듯했다. 타냐는 게이드의 머리에서 볼까지 쓰다듬기 시작했다. 코바는 늙은 코뿔소였다. 인간에 대한 경계를 이곳을 떠나는 날까지 풀지 않았다. 그래서 정이 크게 붙지는 않았던 것이 사실이다. 근데 게이드는 좀 다르다고 생각했다. 어린 코뿔소였고, 경계도 금방 풀렸다. 말도 잘 따르는 듯했고, 잘 뛰어노는 모습도 좋았다. 하지만 내일이 되면 다시 초원으로 보내야 한다. 보내지 않고 계속 여기서 잘 지냈으면 하는 마음과 초원을 누비며 뛰어놀 게이드의 모습을 기대하는 마음이 섞여 애매한 상태로 타냐는 한동안 계속 게이드를 쓰다듬었다.
<18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