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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용호 Oct 02. 2024

길을 가야할 이유

 혼자서 가겠다는 말을 남긴 채 글래디는 떠났다. 마침 해는 지고 있었고, 해가 떨어지는 방향으로 글래디는 전속력으로 달렸다. 남아있는 코뿔소들은 각자 그런 글래디를 걱정하면서도 차마 같이 따라나서려 하지 않았다. 금세 사위는 어둠으로 채워졌고, 모두들 잠든 깊은 밤이 찾아왔다.


 레니는 살며시 눈을 떴다. 아니 정확히 잠이 오지 않았다. 글래디가 달라간 방향을 바라보며 한참을 서있었고, 마음을 먹었다. 글래디의 뒤를 따라야겠다고. 절대 어른들의 말을 어기지 말아야겠다고 불과 얼마 전에 마음먹었지만 이번에는 도저히 참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런 레니 옆으로 코바염감이 다가와 글래디가 달려 나간 방향을 보고 섰다. 레니는 타이밍을 놓쳤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조금만 서둘렀다면, 마음을 조금만 일찍 먹었다면 좋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 레니의 생각을 읽었는지 코바영감이 말했다. 


"말릴 생각은 없다. 레니"


"무엇을 말이죠?"


"글래디를 따라가려던 것이 아니냐."


"왜 말리지 않는 건가요? 글래디 삼촌이 분명 혼자 가겠다고 말했고, 다른 살촌들도 따라가지 않잖아요."


"가지 말아야 할 이유가 그것뿐이라면 내가 말릴 이유는 없지. 내가 가지 말라고 한 적은 없으니까."


"그래도..."


"나도 그런 적이 있었으니까. 내 어미는 동물원에서 초원의 법칙을 잊은 채 살았지. 그래서 이 초원에 처음 나왔을 때 살아남는 법을 몰랐어. 얼마 버티지 못했단다. 그날 밤 사자 놈들이 달려들었으니까. 사실 나만 없었다면 살 수도 있었을 거야. 어른 코뿔소는 사자도 여간해선 공격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나는 달랐지. 나는 발도 느리고 약했어. 나를 보호하기 위해 도망치지 않고 맞섰어. 자식의 목숨을 걸고 싸우는 코뿔소는 사자도 어쩌지 못했지. 사자는 도망쳤지만 엄마도 크게 다쳤단다. 도망칠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지. 마지막으로 엄마는 나에게 앞만 보고 달리라 했어. 곧 사자들이 다시 올 거라고. 엄마는 사자들을 물리치고 오겠다고 했지. 나는 시키는 대로 도망쳤어. 무서웠고, 엄마가 그깟 사자 놈들에게 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으니까. 다시 엄마를 볼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못했으니까. 그게 마지막이었어 엄마를 본 것이."


코바영감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여전히 글래디가 사라진 방향의 하늘을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


"어른 코뿔소들도 정답은 모른단다. 그렇게 하는 법을 어른들의 어른들에게 배웠기에 그렇게 할 뿐이야. 그게 옳다고 믿고 있기 때문에. 어른이기 때문에 그 정답이 옳지 않다고, 잘못됐다고 얘기해 주지 않는단다. 하지만 우리는 본능적으로 알고 있어. 내가 나의 답으로 살지 않는다면 삶이 제대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을 말이다. 다른 이들의 말에 따라 살아간다면 안전할 수는 있겠지. 하지만 살아있다는 것을 느끼는 것은 나의 답으로 살아갈 때야. "


"무슨 말인지 너무 어려운데요. 영감님"


"어떻게 하고 싶은 거냐, 레니"


"당연히 게이드를 구하러 가야죠."


"이미 어른들의 말을 어겼을 때 어떤 문제가 생겼는지 알면서도?"


"그래도..."


 순간 레니는 머뭇거렸다. 다시는 경험하고 싶지 않은 순간이 생각났다. 자신 때문에 게이드가 인간들에게 잡혀갔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그래서 쉽게 답을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말을 할 수 없는 것과는 달리 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가지 말아야 할 이유에 모두 답을 내놓을 수는 없었지만 가야 할 이유가 하나 있었다. 


"가야겠어요."


레니가 결심한 듯 말을 이었다.


"내가 구해야 돼요. 그렇게 약속했어요. 물론 게이드는 못 들었을 거예요. 하지만 제가 약속했어요."


"그럼 내 허락이 필요치는 않은 것 같구나. 응원하마 너의 싸움을."


레니는 글래디가 향한 방향으로 달려 나갔다. 이전에 게이드와 몰래 탈출했던 때와는 달랐다. 지금은 가야 할 이유를 가지고 있었다. 


<17화로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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