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바영감의 이야기는 모든 코뿔소들에게 전해졌다. 누군가 전한 것도 아니지만 모두들 궁금했던 일이기에 코바영감의 사정을 입에서 입으로 전했다. 코뿔소들은 인간들에 대해 더 큰 두려움을 느끼고 있었다. 코뿔이 잘린 코뿔소가 그 생생한 경험을 얘기하는 것은 처음이었으니까. 들어본 적 없던 '보호'라는 끔찍한 만행에 떨고 있었다. 대체 왜 그런 짓을 하는 것일까. 여전히 풀리지 않은 미스터리가 그들의 두려움을 한층 더 증폭시켰다. 코바영감의 곁을 지키고 있던 글래디가 물었다.
"코바영감님 혹시 영감님이 계셨던 곳이 어딘지 아시겠어요?"
"갈 때도, 올 때도 헬기에 매달린 채로 눈을 가렸기에 그곳이 어디인지는 모르지."
글래디도 예상한 답변이었다. 처음 듣는 단어에 글래디는 다시 물었다.
"헬기라는 게 그 큰 새를 말하는 건가요?"
"나를 매달고 왔던 것을 말하는 거라면 맞네. 헬기. 예전에 동물원에 있을 때 몇 번 봤었지. 그때도 이 초원에 내 버려졌을 때 헬기를 타고 왔었고. 아, 동물원 얘기가 나와서 기억이 나는 게 있어."
"뭐죠? 인간들하고 관계가 있는 건가요?"
"익숙한 냄새가 났었어. 그곳에 있을 때는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 보니 동물원 근처에서 늘 나던 냄새였어. 달콤한 과일의 향기 같기도 했고, 오래된 나무의 잎에서 나는 냄새 같기도 하고. 여하튼 그 냄새가 났다면 그 주변이지 않을까."
"동물원이라면 코바영감이 어렸을 적 있었다는 그곳 말입니까?"
"맞네. 그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지 워낙 오래된 일이기도 하고, 그 안에서는 낯설어 생각이 나지 않았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그 냄새였어"
"그곳은 어디쯤인지 기억하실까요?"
"정확한 길을 아는 것은 아니네 나도 그 길을 내 발로 걸어 본 적이 있는 것은 아니니."
글래디는 또다시 실망했다.
"다만, 어렸을 적 동물원에서 어머니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있지. 어머니는 태양이 뜨는 방향으로 곧장 달리면 우리가 살던 곳이 나온다고 하셨어. 그 어머니가 지금의 이 초원 주변에 살았던 것이라면 반대로 태양이 지는 방향으로 곧장 달리면 동물원이 나오지 않을까 싶네."
글래디의 표정에 미세하지만 희망이 깃들었다. 글래디는 원하는 것을 들었다.
"그곳으로 가봐야겠어요."
"어렸을 적 어머니가 살던 곳이 이 초원이라는 보장이 없네. 그리고 얼마나 달려야 하는지도 모르지 않은가."
"며칠을 이 근처에서 뱅글뱅글 돌았어요. 방향이 정해지지 않았기 때문에 매일 해가 지기 전까지만 보고 돌아왔죠. 모든 방향을 그렇게 돌기만 했어요. 근데 이제 방향이 생겼어요. 그 뱡향이 정확하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지금 중요한 건 가봐야 하는 방향이 생겼다는 거예요. 며칠을 달리다 보면 답을 알 수 있겠죠."
글래디는 사실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코바영감으로부터 인간들의 '보호'라는 만행을 들은 후부터 하루빨리 게이드를 구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미 늦었을지도 몰랐다. 하지만 답이 없었다. 어떤 것이라도 해야 하는데 그 어떤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코바영감과의 대화에서 어떤 것도 얻을 수 없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계속해서 질문을 했던 것은 해야 하는 어떤 것을 찾길 바라는 마음이었다. 지금은 차라리 달리는 것이 나았다. 그렇지 않으면 잠시도 견뎌낼 수가 없었다. 글래디는 코뿔소들을 모았다.
"지금부터 나는 게이드를 구하러 갈 거다. 오래 걸릴 것이고, 위험한 여정이다. 며칠이 걸릴지도 모르지만 코뿔소 무리의 안전에 꼭 필요한 일도 아니다. 그리고 우리가 끔찍하게 생각하는 인간들의 소굴로 가는 것이다. 게이드는 우리가 찾지 않아도 코바영감처럼 돌아올 수도 있다. 하지만 나는 찾아 나설 것이다. 게이드는 내 아들이다. 무리의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우두머리로서 지금 이 선택이 부족한 선택임을 잘 알고 있다. 그래서 난 우두머리의 자리를 내려놓을 것이다. 와콤! 나 대신 무리를 책임지는 역할을 해줘야겠어."
"헛소리를 있어보이게 하는구만. 글래디, 네가 간다면 나도 가야지. 착각하지 마 게이드는 너만의 아들이 아니라고. 난 한 번도 게이드를 남이라고 생각해 본 적이 없어. 어렸을 적 게이드는 네 등보다 내 등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냈어."
"그래서 믿고 부탁하는 것이야 와콤. 내가 내 아들을 구하러 가면서 남에게 부담을 줄 수 있을까. 자네만큼은 이해해 줄 거니까. 그래서 부탁하는 거야."
와콤은 대꾸하려 했지만 글래디가 다시 말을 이었다.
"그리고 늘 생각했어 이 무리에겐 나보다 자네가 더 필요한 순간이 있을 거라고. 과감하지만 언제나 끝을 아는 자네의 결단력이 지금 이 무리가 처한 위기에는 필요해."
글래디의 진심에 와콤은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저도 가겠어요!"
역시나 레니가 나섰다. 하지만 이번 역시 레니가 나설 차례는 아니었다.
"아니, 아직 네가 나설 때가 아니야. 여기에 있으렴 네 아빠만큼은 아니더라도 삼촌도 제법 강하단다. 꼭 네 친구를 구해올게."
"그럼 전 뭘 할 수 있나요? 저 때문에 게이드가 붙잡혔어요. 게이드는 어떻게 될지도 모르고, 그 때문에 삼촌들만 고생을 하고 있다고요. 저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만 하면 저는 대체 뭘 하고 있어야 하죠?"
"삼촌들을 잘 보고 배워두렴. 네가 나서야 할 때가 올 거야. 그때가 되면 우리가 어떻게 무리를 지켜냈는지 기억하고 있다가 그렇게 행동해 주렴."
레니가 다시 나서려 했다. 뿐만 아니라 다른 코뿔소들도 서로 같이 가려고 했다. 여기저기 웅성거리는 소리를 잠재우기 위해 글래디가 큰 소리로 외쳤다.
"나는! 혼자 갈 것이다! 게이드를 구하는 것은 내 몫이야. 지금부터 누군가 나선다면 그것은 내 강함을 의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겠어."
초원의 서열은 강함에서 나온다. 강하다는 것은 내 몫을 지키는 것이다. 글래디는 '내 몫'을 강조했다. 글래디의 '몫'을 나눠갖겠다는 것은 그의 강함을 의심한다는 것이다. 글래디는 자신의 뜻을 확고히 하기 위해 자신의 자존심을 걸었다. 그 때문에 아무도 글래디와 함께 가겠다 나설수 없었다.
<16화로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