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뒤 미영의 회사, 특히 미영의 팀은 아침부터 고성과 욕설이 난무했다. 매일 아침 VIP 고객 몇 에게 보내야 하는 특가 안내 문자를 며칠 전 실수로 일반 고객들에게 발송한 것. 가격을 원상태로 돌리기에는 이미 많은 일반 고객이 VIP용 특가로 결제를 한 상태였고, VIP특가가 마진도 없이 진행이 되는 상황이라 가격을 더 내리지 못하고 일반 고객이 받은 메시지와 같은 가격으로 VIP들에게도 메시지가 발송되었다. 그리고 그 사실을 어떻게 알았는지 VIP고객 몇이 자신들이 내야 하는 가격과 일반 고객이 내야 하는 가격이 같은 것을 두고 컴플레인을 걸었다. 상황을 제대로 인지하지 못한 CS팀 상담원들은 고객들이 잘못 이해하고 있다는 듯이 안내를 했고, 절대 그런 일이 있을 수 없다며 잡아 때다가 고객이 전달한 증거를 보고서야 사죄를 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대표는 아침부터 미영의 팀까지 친히 행차해서는 노발대발 난리가 아니었다. 팀장에게 무슨 깡으로 그런 일을 벌인 것인지, 본인에게 개인적인 원한이 있었던 것인지, 일을 하는 것에 불만이 있었던 건지, 이런 일이 왜 일어났고, 이번이 처음인 것인지, 또 재발할 가능성은 없는지, 메시지 발송 업무는 어떻게 진행이 되고 있는지 높은 언성으로 조곤조곤 물었다. 평소에도 회의 때마다 늘 해왔던 지랄이기에 이번에는 좀 지랄의 정도가 심해도 사안이 상안이니 만큼 듣고 넘길만했다. 팀장이 뻘소리를 지껄이기 전까지는.
"저.. 그게.. 메시지 작성은 미영 씨가 맡아서 하고 있었는데 어제 급한 일이 있었던지 실수를 한 모양입니다."
미영은 얼굴이 벌게지고, 호흡이 차오르는 것을 느꼈다. 문자메시지의 내용을 작성하는 것은 자신의 일이 맞았다. 하지만 메시지 내용에 들어가야 하는 대상, 가격, 상품 등 재고 상황에 따라 매일 같이 달라지는 내용에 대해서는 팀장이 직접 MD팀과의 협의 후에 자신에게 내용을 보낸다. 문제는 미영이 받은 할인정보와 문제메시지의 내용이 같다는 것. 즉, 문제는 미영이 전달받은 내용 자체가 오류였다. 그리고 문자 발송 시스템에 미영이 내용을 업로드하면 팀장이 한번 더 확인하고 발송을 진행하는 시스템이었다. 잘못된 정보를 전달한 것도, 최종적으로 내용을 꼼꼼히 확인하지 않은 것도 팀장의 잘못이었다는 것을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 아니었던가. 팀장의 말을 듣고 대표는 미영을 향해 눈을 부라렸다. 가뜩이나 눈이 큰 데다 얼굴도 불어진 대표는 어린 시절 부모님과 함께 찾았던 어느 사찰 입구에 서 있는 사대천왕의 얼굴을 생각나게 했다. 더 이상 미영이 참지 못하고 말을 보탰다.
"그건 팀장님이 내용을..."
팀장은 미영과 팀장 사이를 가로막으며 눈짓으로 미영에게 신호를 보내며 미영을 말렸다.
"미영 씨! 나설 자리가 아니에요. 대표님이랑 얘기 후에 따로 얘기하도록 해요."
말은 미영을 혼내는 투였으나 대표가 못 본 얼굴에서는 '제발 한 번만'이라는 표정을 지었다. 미영은 더럽고 치사해서 넘어가기로 했다. 사실 여기서 미영이 나서 무슨 말을 한다고 해서 상황이 더해지면 더했지 덜하지는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표가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겠다는 이전에도 골백번은 더 했던 엄포를 놓고 돌아갔다. 팀장은 미영에게 미안했는지 자신이 쏘겠다며 커피 한잔 하러 가자고 했다. '그깟 커피 더럽고 치사해서 안 얻어먹는다' 소리가 튀어나올 뻔했지만 이 상황을 따져 묻고 싶었던 미영은 따라나섰다. 팀장은 미영을 회사 좀 떨어진 카페로 데려갔다. 짠돌이 팀장이 할인이 되는 회사 1층 카페를 놔두고 살아생전 그런 것이라고는 모를 거라 장담하는 '커피맛'이 좋다며 다른 카페로 가자고 한 것은 본인이 뭔가 꿍꿍이가 있음이라고 미영은 생각했다.
팀장은 커피를 받아 자리에 앉자마자 본론을 털어 놓았다. 자신이 미안했다고. 자신이 적당히 둘러대서 이일로 미영이 손해 보는 일은 없도록 할 거라고, 이런 일은 생각보다 빈번하게 일어났던 일이고, 회사 입장에서야 피해를 좀 보겠지만 큰 일은 아닐 거라고, 그러니 이번에는 좋게 좋게 넘어가자고, 미영의 얘기 한 마디를 듣지 않고 팀장은 줄줄이 쏟아내었다. 미영은 불쾌하다는 티를 팍팍 내며 땅이 꺼져라 한숨을 쉬었다. 팀장이 이렇게까지 얘기한다면 평사원이 자신이 무슨 말을 할 수 있으랴. 한숨 하나 크게 내쉬는 것도 눈치를 봐야 하는데. 밥벌이 참 치사하다는 생각을 하며 미영은 가장 쉬운 답을 내뱉었다.
"네, 알겠습니다."
이 쉬운 대답 하나가 앞으로 미영의 회사 생활에 어떤 폭탄이 되어 돌아올지는 예상치 못한 채, 미영의 회사, 미영의 팀, 팀장은 평화를 되찾는 듯 보였다. 미영만은 아직 이었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