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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y 22. 2020

부부의 날과 결혼기념일은 아내를 위한 날이다

아내의 기대감을 충족시키기 위한 이벤트를 해야 하는 날

어제는 부부의 날이었다.

아내에게 전화를 걸었다. 저녁 준비하지 말고 외식하러 나가자고.

평소보다 일찍 퇴근했다. 아내는 외출 준비를 한 상태로 기다리고 있었다.

어떤 메뉴를 원하는지 아내에게 물어보았다.

이것저것 얘기하더니 선뜻 결정하지 못했다.

쌈밥도 괜찮을 것 같다고 하더니, 나에게 정하라고 했다.

동네 쌈밥집에 가자고 했더니, 지난번에 보니 문을 닫을 것 같다고 했다.

동네보단 걸어서도 갈 수 있는 여의도로 가자고 했다. 아내의 생각을 눈치챘다.


산책 겸 30여분 걸어서 여의도 IFC 몰에 도착했다.

식당가에서 몇 군데 돌아보다가 00 제면소 샤부샤부를 선택했다.

아내가 영등포 타임스퀘어보단 좀 더 비싸다고 하면서도 메뉴가 제값 하는 것 같다고 했다.

오랜만에 맛있게 잘 먹는 아내의 모습을 보니 기분이 좋았다.

아내의 기대감을 충족시킨 것 같았다.

친구에게 전화가 와 있었다. 통화가 되지 않았다.


오늘 아침 어제 통화하지 못한 친구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냥 안부 전화였다고 했다. 친구에게 물었다.

어제 부부의 날 이벤트로 뭘 했냐고.

친구가 답했다. 부부의 날인데, 남편이 꼭 뭘 해줘야만 하냐고.

내가 말했다. 돈 버는 남편이 전업주부인 아내에게 뭔가 해줘야 하지 않냐고.

그 친구가 다시 말했다. 아내가 자기보다 월급을 더 많이 가져간다고.

친구는 대표이사, 친구 아내는 이사다.

친구에게 말했다. 그럼 돈 잘 버는 아내에게 이벤트를 해달라고 하라고.


친구와 전화를 끊고 생각해봤다.

결혼기념일이나 부부의 날엔 아내에게 뭔가를 해줘야 한다고 생각했고 그렇게 했다.

언젠가 TV에서 "남편의 이벤트를 기대하는 아내"에 대한 프로그램을 본 기억이 났다.

남편들과 아내들의 의견이 분분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남편은 나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나와 다른 생각을 가진 남편 중 한 사람이 말했다.

양성 평등을 주장하는 여성들의 입장에서 남편의 일방적 이벤트를 원하는 건 모순이 아니냐고.

대부분의 아내들이 이 주장에 대한 반론을 제기하지 못했다.

그런데 한 여자 탤런트가 손을 휘휘 저으면서 큰 소리로 말했다.

아버지도, 할아버지도 일방적으로 어머니와 할머니에게 이벤트를 해줬다.

난 그걸 보고 자랐고 내 남편도 그렇게 해 주길 바랄 뿐이다. 왜 여기서 양성 평등이 나오냐고.

프로그램 참가자 모두가 박장대소를 하면서 박수를 치더니 결론 없이 끝을 맺었다.


전화 통화했던 친구처럼 나와 의견을 달리하는 이들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내겐 결혼기념일이나 부부의 날이나 아내에게 뭔가를 해주는 날이다.

아내의 기대감을 충족시키는 이벤트를 하면서 나도 행복을 느끼기 때문이다.

부부 사이에 누가 누구에게 무엇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따지다 보면 한도 끝도 없다.

셈하지 않고 서로가 서로를 위하면서 할 수 있는 만큼 해주면 그냥 좋은 것 같다.


언젠가 카페에서 다정한 모습의 노부부를 보면서 우리도 저렇게 늙어가자고 했던 때가 생각난다.

어느덧 아내를 만난 지 40여 년 가까운 세월이 흘렀다. 결혼한지도 30년이 넘었다.

사랑이란 그런 거 같다. 내가 준 만큼 받기를 원하기보단 그냥 아낌없이 주는 것.

결혼기념일이나 부부의 날에 내가 이벤트 해 주는 건 아내가 내게 해 주는 것에 비하면 아무것도 아니다.

아내는 내게 아낌없이 주는 나무 같은 여자다.

내가 하는 건 그저 함께 손을 잡고 걸어가는 것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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