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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y 25. 2020

길을 물어보기 싫어하는 남자의 자존심

오십 대 중반인데, 아직까진 "남자다움"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지난 토요일, 사회적 거리두기로 인해서 세 달 동안 미루어졌던 모임이 있었다.

서울에서 수원까지 기차를 타고, 수원역에서 시내버스로 갈아타고 모임 장소까지 갈 계획이었다.

약속시간에 늦지 않도록 20여분 여유 시간을 두고 집을 나섰다.

기차를 타러 가는 도중에 아내가 길치인 날 위해 카톡으로 사진을 보냈다.

수원역에서 몇 번 버스로 갈아타면 되는지 캡처한 사진이었다.



수원역에 도착했다.

아내가 보내 준 네이버 길 찾기 캡처 사진이 있었지만,

문득 티맵 대중교통 앱을 이용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목적지를 검색해보니 AK 백화점 앞 10번에서 버스를 타면 25분 정도 걸린다고 나왔다.

눈 앞에 9번, 10번 시내버스 탑승장소가 보였다.


앱이 알려준 대로 10번 탑승장에서 00번 버스를 탔다.

20여분 정도 지나서 앱을 보니 목적지에 거의 도착한 게 아니라 45분 더 가야 한다고 나왔다.

정류장을 확인해 보니 반대 방향 노선에서 버스를 탄 것이었다.

버스 타기 전에 기사에게 목적지로 가는 것이 맞는지 물어보았더라면 좋았을 것을.



버스에서 내려서 길을 건넜다.

다행스럽게 정류장이 바로 있었고 버스도 금방 왔다.

자존심이 상하는 느낌이었지만 버스 기사에게 목적지로 가는 것이 맞냐고 물었다.

버스기사는 00동으로 가는 것이냐고 되물었다.

잘 모르면서 그렇다고 대답하곤 버스를 타는데 기사가 구시렁대었다.

어느 동을 가는지 얘길 해야지 목적지만 얘기하면 자기가 어떻게 아냐고!

역시 물어보는 게 아니었는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기분이 상했다.

물어보기 싫어하는 남자의 자존심은 이런 건가 보다.

여하튼 약속시간보다 30여분 늦게 도착했다.

20분 정도 여유시간을 두고 집을 나섰으니, 길에서 한 시간 가량을 헤맨 것이다.



요즈음엔 은행 안내원이 대부분 남자들이다.

안내와 경비를 겸하고 있다.

하지만 초기엔 은행 안내원들이 여자였다고 한다.

그런데 여자 은행 이용객들이 점점 늘어났고,

남자들은 거의 물어보지 않기 때문에 은행 안내원을 여자에서 남자로 바꾸었다는 설이 있다

과학적 실험 결과,

인간은 동성의 목소리보다 이성의 목소리를 더 잘 듣고 기억하는 것으로 밝혀졌다는데

이것과도 관련이 있는 것 같다.



대부분의 남자들은 모르는 길을 갈 때도 다른 이에게 길을 물어보지 않는다.
 심리학적 이유로 남성의 거세 위협 때문에 남들에게 복종하는 것이 힘들기 때문이라고 한다.
길을 물어볼 때 "복종" 감정이 올라오기 때문에 쉽게 물어보지 못한다는 것이다.



버스 기사에게 목적지로 가는 버스가 맞는지 물어보는 것은 무척 간단하고 쉬운 일이다.

하지만 남자들은 그걸 잘 못한다.

나도 마찬가지다.

물어봤으면 시간 낭비를 하지 않았을 텐데 자존심 때문에 귀중한 주말의 한 시간을 길 찾기에 허비했다.

아내는 내가 오십 대에 들어서 여성 호르몬이 많아져 말이 점점 더 많아진다고 하는데,

여전히 모르는 걸 남에게 물어보긴 쉽지 않은 것 같다. 특히 다른 남자에게.



오십 대 중반인데, 아직까진 "남자다움"이 남아있기 때문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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