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양에 의해 국민을 위대하게 만들고, 해양력으로 전략적 전환점을 만든다
해양력의 중요성과 역할을 체계적으로 정립한 Alfred T. Mahan에 의하면 “해양력은 해양상에서 또는 해양에 의해서 국민을 위대하게 하는 모든 것”이다. 영국의 Colin S. Gray는 “해양력은 전쟁에서 승리를 쟁취할 수 있도록 전략적 전환점을 제공한다”라고 주장하였다. 이들의 명제는 해양력이 시대를 초월하여 국가안보와 번영에 결정적인 요소라는 것이다.
해양력의 중요성과 한반도 주변의 해양 환경을 살펴본 다음, 한국에서의 해양력 가치를 판단하고 Mahan과 Gray의 명제가 한국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인가를 삼국시대부터 현대까지 사례를 연구하고자 한다. 한국 해양력이 이들이 제시한 명제에 해당하는 역할을 하고 있나, 미진한 분야는 무엇인지 그 원인과 개선방안을 생각해 보려고 한다.
해양 환경은 경제, 정치, 법, 군사, 물리적 차원에서 군사전략과 깊은 연관성을 띄고 있다. 경제적 차원에서 해양은 국제적 교통의 매체이며 주요 식량자원과 에너지 및 광물자원의 보고다. 해양의 경제적 가치가 증대될수록 국가 간 해양분쟁의 가능성이 더욱 높아진다. 정치적 차원에서는 해양 관할권 확장에 따른 정치적 상징주의로 인한 분쟁 발발 가능성이 농후하다. 법적 차원에서 유엔 해양법 발효로 해양 안보환경이 변했고 무해 통항권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 군사적 차원에서 안보환경과 군사기술의 발달로 해양에서 군사력 사용 영역과 시기가 확대되었다. 물리적 차원에서 해양의 특징인 통일성으로서 아주 작은 국가의 작은 항구에서 출항할지라도 해양을 통해 지구 상의 대부분의 지역에 접근이 가능하다. 국가 간 상호의존성이 커질수록 이 다섯 가지 차원과 관련한 해양 분쟁의 가능성이 높아질 것이다.
해양력은 “해양을 통해서 얻어지는 국가의 군사, 정치, 경제적 힘으로서 국가이익과 국가목표 및 국가정책 추구를 위해 필요한 해양을 통제하고 사용할 수 있게 하는 국가역량”으로 정의할 수 있다. 그렇다면 위의 다섯 가지 차원에서 해양을 어떻게 통제하고 사용하는가에 국가정책 수행과 국가목표 달성이 좌우됨을 알 수 있다. 이것은 국익 추구 수단으로써 해양력의 중요성을 인식케 한다.
Mahan은 국가의 해양력 발전에 영향을 주는 조건을 제시하였다. 첫째, 해양국가로서 지리적 이점을 가지고 있는가? 둘째, 긴 해안선과 좋은 항구를 가지고 있는가? 셋째, 해안선과 좋은 항구를 많이 가진 영토의 크기다. 넷째, 해양업과 해군에 종사하는 인구의 수다. 다섯째, 국민의 해양성 기질이다. 여섯째, 해양에 관심을 갖는 정부 형태와 통치자의 특성이다.
Mahan이 제시한 6가지 조건에 한반도 주변의 해양환경을 비춰 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 지리적으로 한국은 삼면이 바다와 접하고 있는 반도국가다. 국민의 활동 공간 확장을 위해 제한적 육로보다 개방된 해로를 이용한 진출이 용이하다. 둘째, 양호한 해안선과 항구를 다수 보유하고 있으므로 해양으로의 진출이 용이하다. 셋째, 한국은 수준 높은 해양 업무 종사자와 세계적 수준의 조선 기술 및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넷째, 장보고의 해양 개척정신과 바다를 통해 나라를 구한 이순신의 호국정신이 국민성 속에 살아 숨 쉬고 있다. 다섯째, 한국은 1996년 해양수산부를 창설하였고 해양산업 육성 노력과 해양 입국을 위한 범국가적 공감대 형성을 위해 “바다의 날”과 “바다의 헌장”을 제정하는 등 다양한 해양 지향 정책을 수행하여 왔다. 따라서 한반도 해양환경은 해양력을 발전시키기에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다음은 삼국시대와 조선시대의 사례연구를 통해서 Mahan의 명제인 한반도에서 해양력에 의해서 국가를 위대하게 한 경우, Gray의 명제인 해양력이 전승을 위한 전략적 전환점을 제공한 경우를 찾아보자. 장보고와 이 충무공의 활발한 해양활동은 일반적 사실이므로 그들의 업적에 대한 구체적인 논의는 생략하였다.
신라의 해상 경영
신라는 7세기 중엽 이후 선박 운항에 관한 제도 정비, 수군(해군)의 증강, 조선술의 발달을 통하여 제해권을 장악하기 시작하였다. 이를 기반으로 8~9세기에 이르러 약 200년 동안 해양을 경영하였다. 또 해양 진출로 당시 중국 중심의 국제 질서에 참여하여 국제적 지위가 향상되었고, 경제적으로는 국제 무역을 통하여 신라인의 물질적인 삶을 풍요롭게 하였다. 뿐만 아니라 당(唐) 나라의 선진 문물을 수용하여 국민 정신문화의 질을 향상했다. 신라는 제해권 장악에 바탕을 둔 해상 경영과 해양진출을 통한 국제정치적 감각으로 삼국의 통일을 이룩하고 통일신라의 번영을 이루게 된 것이다. 이는 해양에 의해서 국민을 위대하게 만든 사례라 할 수 있다.
백제의 해안 진출
문헌상에 나타난 백제 국가 명칭은 “처음에 백가(百家)가 바다를 건너왔다고 해서 나라 이름을 백제라 불렀다”에서 유래한다. 즉, 백제의 역사는 국가가 생긴 초기부터 해양과 연관이 있다. 백제는 해양을 통한 교역활동으로 경제적 부를 축적하였다. 황해를 끼고 있는 한반도의 서남해안으로 진출 확보하여 광범위한 대외교역을 추진하였다. 그 결과, 고대 동아시아에서 교역권의 중심적인 위치를 구축하였다. 백제의 서남해안 진출은 활발한 해상활동을 위한 전제조건이 되는 양호한 항구와 해상기지 확보를 위한 것이었다. 백제는 이 지역을 확보해서 서해안 항로 장악의 토대를 마련하였고, 이 지역에서 생산되는 주요 자원인 소금을 확보해서 독점 공급함으로 정치적 영향력을 확대하였다. 백제 사례도 해양에 의해 국민을 위대하게 만든 경우라 할 수 있다.
고구려의 해양활동
고구려는 광개토대왕의 군사적 우위성을 활용한 강공책의 일환으로 385년에 요동과 현토를 점령하였으나, 연(燕)에게 요동지역을 침략당하였다. 그러나 402년과 404년에는 다시 연을 공격하여 정벌하였다. 406년에는 후연이 3천여 리를 행군하여 목저 성(城)을 침입하였으나, 이를 격퇴함으로써 요하 이동 지역을 완전히 장악하였다. 이는 고구려가 요동반도와 서한 만(灣), 대동강 하구, 경기 만(灣)을 잇는 황해 중부 이북의 동안(東岸) 해상교통로를 확보하였기 때문이다. 고구려의 경우는 해상교통로 확보가 전승을 위한 전략적 전환점을 제공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조선의 강력한 수군(水軍) 건설
조선은 북방 야인과 남방 왜구의 노략질을 방비하는 것이 국가적 과제의 일환이었다. 특히 조선 건국 전후의 불안정한 대내외적 상황 하에 자주 출몰하였던 왜구는 조선 수군의 건설, 조직, 발전에 근본 원인을 제공하였다. 조직적이고 강력한 수군 체제를 갖추기 위한 노력으로 조선은 세종대왕 시대에 이르러서 지상군과 수군이 1 : 1의 비율이 될 정도로 대단한 규모의 조직과 편제를 갖춘 수군으로 발전시켰다. 임진왜란 시 이 충무공의 연전연승은 지휘관 개인의 뛰어난 역량이라고 할 수도 있으나, 궁극적으로 조선 초부터 착실하게 성장한 수군의 준비된 조직과 함선, 무기체계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강력한 수군 건설을 통해서 전승을 위한 전략적 전환점을 제공하는 데 해양력이 기여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위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한반도는 해양력이 발전하기 위한 최적의 조건을 갖추고 있다. 역사적으로도 Mahan의 명제인 해양력이 국민을 위대하게 만든 사례와 Gray의 명제인 전승을 위한 전략적 전환점을 제공한 사례가 많이 있다. 현재 한국 해양력의 현주소는 어디쯤일까? 정치, 경제, 사회, 군사 분야로 구분하여 현실태를 살펴보고, 개선이 필요한 분야와 그 방안을 제시하고자 한다.
첫째, 정치 분야에서는 해운항만청이 해양수산부로 승격하였으며, 금년 2월 말에 취임하는 대통령 당선자 노무현이 전 해양수산부 장관임을 고려해 볼 때, 정치지도자의 해양에 관한 관심은 성숙된 상태라 할 수 있다.
둘째, 경제 분야에서도 무역의존도가 2000년도 기준 72.6%이며 수출입 물량의 99.7%가 해상수송에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은 한국 경제와 해상교통로 보호의 밀접한 상관관계를 잘 설명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세계 최대 규모의 선박 건조회사인 현대조선을 보유하고 있는 조선 강국이다.
셋째, 사회 분야에서는 서구 문명의 도입으로 변화되는 추세라고는 하지만, 우리의 전통적인 유교 사상으로 인해서 해양에 대한 도전의식보다는 이를 경원시하는 경향이 남아있다. 예를 들면 서구의 청소년들은 10여 미터가 넘는 파도를 타고 윈드서핑을 즐기는 반면, 우리의 자녀들에게 한 길이 넘는 바다는 여전히 두려움의 대상이다. 이러한 사회 풍토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해양이 일상생활의 문턱을 넘어서 경제와 안보의 영역까지 깊숙이 들어와 있다는 것을 국민들에게 각인시킬 수 있도록 해양수산부와 해군본부 및 해양 관련 민간단체가 공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할 것이다. 최근 해군 본부에서 제작 지원한 민간 영화 “블루” 또는 TV 드라마 “태양 속으로”등의 성공적 방영은 이러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군사 분야이다. 21세기 군 구조 개선을 위해 많은 연구와 토의가 진행되고 있다. 그러나 지상군 위주의 한국 군 구조와 지상전력 위주의 한국 군사전략개념을 해군력 증강과 해양전략 측면으로 전환시키는 것은 코페르니쿠스적 발상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농후하다. 하지만 지금 우리 해군은 역사의 전환점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시기에 있다. 해양 수산부 장관을 지낸 차기 대통령을 포함해서 마한이 제시한 해양력의 중요성에 영향을 미치는 6가지 모든 요소가 충족되어 있다. 이제 군 통수권자의 해양에 대한 관심도가 해군력 증강을 위한 정책 반영으로 구체화될 수 있도록 하기 위한 우리 해군의 다각적인 노력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이 글은 노무현 대통령이 당선인 시절이던 2003년 초에 작가가 쓴 글이다. 따라서 한국 해양력의 현재는 당시 상황을 고려한 것이다. 하지만 2020년인 현재의 시점에서 이 글을 다시 읽어봐도 시사하는 바가 있기에 부분적으로 수정해서 독자들에게 제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