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은 70년 세월에 묻혀가고 남침과 북침의 의미는 혼란스럽다.
아 아 잊으랴! 어찌 우리 이 날을
조국을 원수들이 짓밟아 오던 날을
맨 주먹 붉은 피로 원수를 막아내어
발을 굴러 땅을 치며 의분에 떤 날을
이제야 갚으리 그 날의 원수를
쫓기는 적의 무리 쫓고 또 쫓아
원수의 하나까지 쳐서 무찔러
이제야 빛내리 이 나라 이 겨레
학창 시절, 6월이면 학교에서 이 노래를 배우고 익히고 또 불렀던 기억이 난다.
그 당시에는 북에서 내려오면 무조건 간첩 또는 무장공비라고 생각했었다.
북한 말씨를 쓰는 사람은 수상한 사람이라고 생각해서 112에 신고하기도 했다.
반공 포스터 그리기 대회, 반공 글짓기 대회, 반공 웅변대회도 했었다.
반공, 승공이라는 용어를 자주 사용했었다. 공산주의에 반대하고 공산주의와 싸워 이기리라!
세월은 흐르고 흘러 어느덧 6.25 전쟁이 발발한 지 70년이 되었다.
요즈음도 학교에서나 정부 행사에서 6.25의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이젠 북한 이탈 주민이 많이 늘어서 TV 방송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이들도 제법 많은 듯하다.
남북 관계가 대결과 대립에서 화해와 공존 분위기로 많이 바뀌어 가고 있다.
보수 진보 정권이 엇갈리면서 갈등과 평화 무드가 반복되고 있지만 가리어져 있던 북한의 베일이 많이 벗겨진 것은 분명한 사실이다. 그만큼 전쟁의 가능성이 줄어든 것이라면 좋겠다.
지금은 북한이 먼저 기습 "남침"했다는 사실이 명백히 밝혀졌지만, 구 소련의 비밀문서가 노출되기 전엔 6.25 전쟁의 원인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북한이 먼저 38도선을 넘어 남한을 침공했다는 설이 우세했지만, 그와 반대로 남한이 빌미를 제공했고 또 먼저 북한을 공격했다는 "북침"을 주장하는 이들이 제법 있었다.
여기서 나오는 "남침"과 "북침"이라는 용어의 혼란스러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려고 한다.
내가 어려서부터 들어온 것은 "6월 25일 일요일 새벽, 북한 공산군이 38선을 넘어서 남침"했다는 것이다.
남한을 침공한 것을 남침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면 북침은 북한을 침공한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남침, 북침이란 용어를 이해하는 데 혼란을 느끼는 이들도 있다고 한다.
7~8년 전, 문과 대학생이었던 아들에게 들은 얘기다.
친구들 중에 6.25 전쟁이 북침이라고 생각하는 아이들이 제법 있다고 한다.
그들은 북침이란 말이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 것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이런 주장이 바보 같다고 생각하는 이들은 아마 이런 생각을 할지도 모르겠다.
북진, 북벌, 북상 등 북침과 유사한 의미의 단어는 모두 "북쪽으로 향한다"는 공통점이 있다.
따라서 북침은 북쪽을 향해 침략 또는 침공한다는 의미로 해석하는 것이 당연하다.
바보처럼 북침과 남침을 구분하지 못하다니, 쯧쯧쯧!
하지만 초등학교에서 배우는 바람의 방향은 이것과는 다르다.
북풍은 북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고, 남풍은 남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이다.
다른 친구들은 어땠는지 모르지만, 나는 국민학교 때 바람 방향을 이해하기가 제일 어려웠다.
북풍은 북쪽으로 부는 바람, 남풍은 남쪽으로 부는 바람이라고 생각했다.
어쩌면 국민학교 입학 전부터 "북한 공산당이 남침했다"는 말을 하도 많이 들어서 인지도 모르겠다.
북풍이 북쪽에서 부는 바람이란 걸 정확하게 이해한 것은 "북풍한설"의 의미를 알게 된 이후였다.
국어사전을 찾아봤다.
북로, 북류, 북벌, 북상, 북정, 북진, 북침, 북풍, 북행, 북향...
북풍을 제외하곤 모두 "북쪽으로 향한" 의미를 갖고 있다.
북풍이란 단어만 "북쪽에서 불어오는"이라는 반대 방향성을 띄고 있다.
북풍을 한영사전에서 찾아봤다.
북풍은 north wind, northerly wind로 표현할 수 있다.
오히려 그 외의 다른 단어는 모두 한영사전에서 찾을 수 없었다.
북로, 북류, 북벌, 북상, 북정, 북진, 북침, 북행, 북향을 영어로 표현하려면 단어가 아닌 구절로 바꾸어야 한다.
예를 들면 북로는 남에서 북쪽으로 가는 길, 북류는 남에서 북쪽으로 흐름, 북벌은 남으로부터 북방의 지역을 정벌함, 북진은 남에서 북쪽으로 나아감, 북행은 남에서 북쪽으로 감, 북향은 남에서 북쪽을 향함 등으로 바꾸어야 영어로 표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북풍은 "북한에서 불어오는 정치적 바람"이라는 의미로도 사용된다. 북한에서 남한의 선거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자기들과 관계가 밀접할 수 있는 세력들을 선거에 이기게 하기 위해서 일으키는 각종 정치적 바람이다. 이것은 실제로 북한에서 불어오는 것일 수도 있고 북한에서 불어오는 것처럼 보이게 만드는 경우도 있다. 이 용례는 북침을 북한이 (남한을) 침공한 것으로 오해하게 만들 수도 있을 것 같다.
인터넷을 서핑해 보니 북침과 남침의 조어법에 대해 [국립국어원] 홈페이지에 질문을 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우리나라 조어법상 북침이 맞는 건가요? 남침이 맞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던졌다.
외침, 외세가 침략하다처럼 기본적으로 주어+서술어로 단어가 구성되지 주어를 생략하고 목적어+서술어로 구성되냐는 것이다. 예를 들면 북침은 북한이 (남한을) 침략, 남침은 남한이 (북한을) 침략이라고 해야 조어법상 맞는 것이 아니냐는 질문이다.
그에 대한 국립국어원 측 답변이 걸작이다. 한자어의 일반적 짜임을 고려하면 질문자의 생각이 일리가 있다. 하지만 남침은 북쪽에서 남쪽을 침범함, 북침은 남쪽에서 북쪽으로 침략함이라고 사전에 실려 있고, 이대로 쓰여 왔다는 것이다. 그 하나의 용례로 이병주가 쓴 [지리산]을 들고 있다. "고구려는 남침하려는 한나라의 세력을 막기 위해 성을 쌓았다. 이때 남부군 안에서 북으로 가서 휴양한 다음 인원과 장비를 재정비하여 남침함이 어떻겠느냐는 이견이 비등했지만..."
https://www.korean.go.kr/front/onlineQna/onlineQnaView.do?mn_id=216&qna_seq=106780
남침과 북침의 혼란은 중국식 한자, 일본식 한자와 우리말을 혼용하면서 생긴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남침을 영어로 표현하면 Invasion of North Korea, 북침을 영어로 표현하면 Invasion of South Korea다. 즉, 북한의 침략이 남침, 남한의 침략이 북침이라는 이상한 표현인 것이다. 차라리 역사책에 남침이나 북침이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말고 북한이 먼저 침공했다고만 기술하면 혹시 북침을 북한이 침공한 것이라고 오해하는 경우가 줄어들지 않을까? 우리의 일상생활에서 의미의 혼란을 가져다주는 용어들을 모두 찾아내서 알기 쉬운 말로 고쳐 쓰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남침과 북침이란 용어의 혼란에 대한 문제를 제기하면서 북풍이라는 바람을 가져다 쓴 것이 바람에게 조금 미안하다. 동, 서, 남, 북풍을 순수한 우리말로 적어주면 조금 덜 미안할 것 같다. 동풍은 샛바람(봄바람)이다. 서풍은 하늬바람(또는 갈바람, 가을바람)이다. 남풍은 마파람(여름 바람)이다. 북풍은 된바람(겨울바람)이다. 북동풍은 높새바람(계절을 뜻하지 않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