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심 갖고 감시하지 않으면 “음습함”이 서서히 우리 삶의 영역을 침범한다
직장 본관 건물 한편에 있는 잔디밭의 모양새가 조금 이상하게 보였다. 가까이 다가가 보니 잔디밭이 아니다. 잔디밭을 완전히 점령한 이끼였다. 음습한 곳에서나 자라는 이끼가 도심 속의 잔디밭을 점령한 것이었다. 건물을 지었을 때는 여기가 분명히 잔디 밭이었을 텐데 어떻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 인적이 드문 곳도 아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나치는 곳이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습한 곳이라서 처음엔 약간의 이끼가 끼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 누구도 그 작은 이끼에 관심을 갖지 않았겠지! 이끼는 점점 더 자기 영역을 넓혔을 것이다. 잔디를 조금씩 서서히 죽여가면서. 그리고 지금은 이끼 밭이 된 것이다. 아무도 관심 갖지 않고 아무도 감시의 눈길을 주지 않는 곳에서 조금씩 서서히 자기 영역을 넓혀 가면서 이젠 그곳의 주인이 되었다.
잔디는 없고 이끼만 남아 있는 과거의 잔디밭
어떤 이가 영화 [이끼]를 평한 글에 이런 표현이 있었다. "음습한 바위틈에 몸을 숨기고, 숱한 비바람을 견디며 꽃을 피우거나 우거진 그늘을 자랑하지도 않고 오로지 자신만의 생존을 위해 납작 엎드려 버텨 온 식물이 바로 이끼다. 영화 [이끼]는 이런 이끼의 속성처럼 음습한 분위기 속에서 뭔가 감추려는 사람들과 그것을 알려고 하는 이들의 갈등을 그린 영화다. 온갖 부정과 불법을 저지르면서 본능에 충실한 삶을 살고 있는 인간이 되고픈 동물(?)의 삶을 입체적이고 밀도 있게 그려냈다."
직장 건물 한편을 차지한 이끼는 영화 평론에 쓰인 것과 동일한 방법으로 자리를 차지했을 것 같다. 이끼는 "음습한 건물 뒤에 몸을 숨기고, 숱한 비바람을 견디면서도 꽃을 피우거나 크게 자라나지 않고 오직 생존을 위해 납작 엎드려 버티면서" 아주 천천히 아주 조금씩 잔디를 몰아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을 것이다.
다른 이가 웹툰 [이끼]를 소개한 글에는 조금 더 재미있는 표현이 있었다. "웹툰 [이끼]의 배경은 '시골마을'이다. 그곳은 기자도, 검사도, 시민단체도, 그 누구도 신경 쓰지 않는 곳이다. 그러나 그런 곳에서도 명백하게 악은 제 배를 채우며 살고 있었다. 견제하는 이가 없기에 그 수법은 누구보다도 악랄했다. 이들은 두려울 것이 없었다. 모두 한 통속이고, 후환이 없는 약자만 골라서 수탈했기 때문이다. 아주 가끔씩 자신들에게 저항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미친 사람, 이상한 사람,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 공공에 피해를 주는 사람으로 몰아가면 그만이었다. 이 추잡한 마을의 시작은 이상을 꿈꾸는 남자로부터 시작되었다. 그는 총명하고 유능했지만, 그의 마을은 온갖 비리와 악행의 소굴이 된다. 자신의 이상을 실현하기 위해 그가 부정을 저지른 순간부터 예견된 것이었다. 그가 원칙을 어기고 정의만 내세웠던 결과일 것이다. 그리고 그가 이룬 모든 것은 그의 곁에서 검은 속내를 숨기고 있던 악한이 모두 빼앗아간다. 그는 자신만의 이상에 심취해서 스스로 악행을 저질렀다. 그리고 그것이 악이라고 생각하지도 않았다. 자기의 이상 실현을 위해 곁에 있는 자에게 그 이상을 설명하면서 그에게도 힘을 실어 주었다. 곁에 있던 그의 모든 것을 알고 있다고 확신하면서. 하지만 훗날, 그는 자신이 만들어 준 힘에 의해 감금되고 조롱을 당한다. 곁에 두었던 자의 실체를 파악한 순간, 이미 너무 늦었기에 그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감시와 경계를 게을리하고 제 편이라고 믿었던 자로부터 당한 것이었다. 감시 없는 힘은 반드시 타락하기 마련이다."
직장 한편의 잔디밭은 많은 사람이 지나는 곳이었지만, 아무도 신경 쓰지 않는 곳이었다. 그런 곳에서 처음엔 이끼가 잔디와 공생하면서 잘 지냈을 것이다. 이끼는 물기를 머금어주고 잔디는 약간의 그늘을 만들어주면서. 하지만 잔디가 감시와 경계를 게을리한 사이 제 편이라고 믿었던 이끼는 잔디를 완전히 몰아내고 주인이 되었다. 물론 그 길을 지나는 사람이 아무도 관심을 갖지 않은 탓도 있었겠지만.
최근 제기된 사회단체의 이슈를 접하면서 이끼가 생각났다. 처음엔 그들도 이상을 꿈꾸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들의 이상에 매료된 사람들은 그들을 금전적으로 정신적으로 후원했을 것이다. 하지만 관심과 감시와 경계가 소홀해지면 "음습함"이 우리 삶의 영역을 서서히 침범하듯, 그 단체의 영역에도 그런 그림자가 드리워졌을 수도 있다. 시간이 지나면 밝혀지겠지만, 정의를 외치는 사회단체만큼은 "이끼"가 끼지 않았으면 좋겠다. 그러려면 누군가의 관심과 감시와 견제와 경계도 함께 있어야만 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