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격 요건과 전문성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
최근 입사 지원을 했던 정부 출연 연구기관의 정규직 전문연구원 채용 3차 면접시험의 최종 관문을 넘어서지 못했다. 국제정치학, 통계학, 정보통신공학, 행정학 박사 4명이 최종 경합을 했지만, 모두 고배를 마시고 융합학문적 연구부서인 해당분야 합격자 0명이라는 결과가 발표되었다. 여러 명의 지원자 중에서 4명이 1차 서류전형을 통과하였고, 모두 2차 NCS 직무능력 평가에 합격했지만, 발표 면접과 종합 면접 결과 적격자가 없는 것으로 판단했다는 후문이 들렸다. 다른 분야는 모두 계획된 인원을 선발했으나, 이 분야만 합격자가 없었다. 유사 직위를 채용하는 연구부서는 1차 서류 전형에 합격한 1명이, 2차, 3차 시험을 모두 통과했다. 2, 3차 채용 시험을 치른 후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던 그는 합격했고, 우리 분야의 4명은 모두 불합격이다. 무엇 때문이었을까?
그 기관의 채용시험이 공정하게 이루어졌다는 전제를 할 경우, 이유는 단 한 가지다. 2차 시험까지 통과한 이들은 모두 자격 요건을 갖추고 있지만, 3차 면접을 통과하지 못한 이들은 전문성이 없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유사 직위에 3차까지 단독으로 합격한 이는 그 연구원에 파견돼서 10년 이상 해당 분야를 연구했다고 한다. 우리 분야의 4명 중 1명은 1년 남짓 파견 연구원으로 있었고, 나머지 3명은 자격요건만 갖춘 상태로 입사지원을 했던 것이다. 따라서 불합격자들은 짧은 면접시험을 통해 해당 분야의 전문성을 갖추었음을 입증하기가 상대적으로 어려웠던 것이라는 생각을 해 본다.
작년 초에도 정부 부처 산하 연구기관의 부서장 직위 채용시험에 응한 경험이 있다. 서류 전형을 통과한 7명의 국제정치학, 정치학, 역사학 박사들이 최종 면접까지 올라갔다. 최종 합격자는 정년퇴직 1년 전이라는 59세의 해당 부서 연구원이었다. 채용 절차가 공정하게 이루어졌다고 전제할 때, 정년퇴직 1년 전까지 그 분야 연구원으로 종사했던 그 사람만 한 전문성을 갖춘 다른 지원자가 있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후 그는 64세까지 연구기관 부서장 직위를 수행하게 되었다.
두 사례를 지인들에게 들려주면, 많은 이들이 해당 기관에서 적임자를 미리 정해 놓고 채용시험은 요식행위에 불과하기 때문이라고 얘기하며 위로와 격려의 말을 전한다. 매스컴에 보도되는 입시 비리, 채용 비리 사건들을 보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정부 부처 소속 연구기관과 정부출연 연구기관에서 공고했던 두 차례의 채용시험에서 최종 면접까지 치러 본 경험에 의하면, 자격 요건과 전문성에는 미묘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자격 요건이 충족되면 모두 전문성을 갖추었다고 보기도 한다. 하지만 해당 기관에서 필요로 하는 전문성이 어느 정도의 지식수준과 경험을 요구하는지는 그들이 가장 잘 알고 있을 것이다. 따라서 공정한 채용 절차가 이루어졌다면, 자격요건을 갖춘 이들 중에서 가장 전문성을 갖춘 이가 선발되었을 것이고, 아무도 선발하지 않았다는 것은 그들이 원하는 전문성을 갖춘 이를 찾지 못했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