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Kenny Nov 23. 2020

38년 만에 다시 찾은 교정(校庭)

나른한 주말 오후, 아스라한 추억 속의 길을 걸었다

한 주간의 피로감에 식곤증이 겹쳐 나른한 주말 오후에 무작정 집을 나섰다. TED 강의가 들리는 이어폰을 귀에 꽂고 따뜻하게 옷을 껴입고 나왔다. 동네 한 바퀴 돌면서 기분 전환이나 해볼까 하는 생각에 발길이 닿는 대로 길을 걸었다. 옆 동네를 지나는데 단풍이 제법 예쁘게 물들어 있는 나무들이 보였다. 오늘은 첫눈이 내린다는 소설인데 오전엔 비가 내리더니 여전히 남아있는 늦가을의 풍광이 아름다웠다.



그 길을 지나는데 학창 시절 거닐던 골목길이 보였다. 골목길, 골목길, 아무도 없는 쓸쓸한 골목길~

지금 사는 동네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는 그 골목길로 38년 만에 다시 들어섰다. 주변의 건물은 대부분 재건축을 한 것 같았지만, 약간 높은 지대에 있는 모교로 향하는 그 길은 옛 모습 그대로였다. 골목길을 따라 걷다 보니 어느덧 학교 후문에 도착했다.



후문으로 학교를 드나들던 학창 시절의 기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1학년 때까지 교복을 입고 스포츠형 두발 형태를 유지하다가 2학년 때부터 두발 자율화로 머리를 기르고, 3학년 땐 교복 자율화로 제멋대로 옷을 입고 다녔던 기억이 났다. 머리카락을 기르기 시작한 2학년 때부터 교사들의 학생 교외 생활지도가 어려워졌던 것 같다. 짧은 머리 형태를 보고 고교생인지 여부를 구별했었는데, 교정을 벗어나면 옷을 갈아 입고 성인 행세를 하는 고교생들의 일탈을 방지하긴 무척 어려웠을 것이다. 그 이후로 여러 가지 이유로 다시 교복을 입고 두발을 규제하고 또다시 자율화를 하는 등 몇 차례 번복되었던 것 같다.



후문에서 학생지도를 하던 자칭 타칭 호랑이 선생님이 한 분 계셨다. 그 선생님은 학생 선도를 빌미로 우리들의 엉덩이에 야구방망이로 불질을 해대던 분이었다. 어느 날 그 선생님이 등교하던 한 친구에게 담배 냄새가 난다며 엎드려뻗치라고 했다. 그 친구가 갑자기 가방을 땅바닥에 패대기치면서 선생님께 대들었다. "아! XX! 학교 안 다니면 될 거 아냐!" 그리고는 발길을 돌려서 학교 밖으로 다시 나가더니 바로 담배를 입에 물고 유유히 사라졌다. 그때 그 선생님의 당황해하시던 얼굴 표정이 후문 옆의 경비실에 오버랩되었다.



1학년 때 우리 반엔 친구들보다 나이가 서너 살 더 많은 급우가 한 명 있었다. 우리 모두가 그를 형이라고 불렀다. 우리 형보다도 한살이 더 많으니까 당연히 형이라고 생각했다. 늘 담배 냄새를 풍겼지만 그는 학교에선 무척 조용했다. 아무도 그를 건드리지 않았고 그도 큰 문제를 일으키지 않았다. 단지 아주 가끔씩 여학생을 소개해준다면서 같이 고고장에 가자고 했을 뿐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 날부터인지 학교에서 보이지 않았다. 소문에 의하면 담임 선생님께서 자퇴를 권유해서 학교를 그만두었다고 한다. 자세한 이유는 알 수 없었지만 그 얘기를 들은 이후로는 선생님이 선생님으로 보이지 않았다. 끝까지 다독여서 학업을 마치게 하진 못할 망정 제자에게 자퇴를 권유하다니! 나중에 들은 얘기론 그가 동급생들에게 안 좋은 영향력을 끼쳤기 때문에 자퇴를 권고했다고 한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우리가 그 형 따라 곁길로 샐까 봐 선생님은 걱정을 많이 하셨던 모양이다.



교정을 돌아보는 데 공부하던 생각은 별로 나지 않고 방과 후에 친구들과 어울려 놀던 생각만 난다. 방과 후에 음악다방으로 좀비 영화 다방으로 당구장으로... 시외에서 통근열차를 타고 통학했던 기억도 난다. 기차가 연착하는 날엔 학교에 도착하면 2교시가 끝난 적도 있었다. 콩나물시루같이 많은 사람이 탄 전철을 이용할 땐, 밀치려 해도 꼼짝하지 않는 사람들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이 내리는 용산역이나 서울역까지 가서 내려야 했던 경우도 많다.



제법 오래된 듯한 운동장 옆 쪽의 쉼터는 학창 시절에 있었던 것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하다. 여하튼 그 쉼터에 오르는 낡은 계단이 운치가 있어 보였다. 내가 밟고 뛰놀았던 나무 계단처럼 생겼다. 어느덧 38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까까머리로 뛰놀던 그 시절, 두발 자율화 이후 덥수룩하게 머리를 기르고 대학생 흉내를 내던 그 시절, 교복 자율화로 시장통에서 군복 바지를 사 입고 복학생 흉내를 내던 그 시절... 그 시절이 그립다.


하지만 다시 돌아갈 수 없다. 흘러간 시간은 되돌릴 수 없기 마련이다. 지금 이 순간에 최선을 다하고, 지금 이 순간에 행복을 느껴야 하는 이유다. 지금 이 순간이 내게 최고의 선물이다.


The present is a present.







매거진의 이전글 변경된 일정을 알려주지 않는 이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