벚꽃 단상
벚꽃이 피었길래 아내와 여의도 산책을 나섰다.
벚꽃길 출입을 통제하고 온라인 축제를 한다는 현수막이 걸려있었다.
코로나 19가 퍼지기 시작한 지난해 봄에 이어 두 번째다.
전 국민이 백신 접종을 마치는 내년 봄엔 그 길에서 청년들의 웃음소릴 들을 수 있을까?
벚꽃축제를 한 번도 즐겨 보지 않은 대한민국 사람은 아마 없을 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반일감정이 고조될 때마다 벚꽃은 심한 홍역을 앓곤 한다.
일본 국화란 이유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 창경궁과 경복궁에 많이 심었고, 광복 이후 여의도로 옮겨 심었다고 한다.
그 당시 경성을 비롯해서 일본인이 많이 거주하는 진해에 벚나무를 대량으로 심었다고 들었다.
2차 대전 때 군국주의 상징처럼 벚꽃이 사용돼 부정적 인식이 더해졌다.
벚나무가 유난히 많은 진해 모교 교정엔 봄마다 벚꽃이 흐드러지게 핀다.
어느 해 벚꽃을 유난히 싫어하는 교장이 부임했다.
민족정기 회복 차원에서 벚나무를 다른 걸로 교체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독단적으로 그 많은 나무를 벨 수가 없었다.
어느 여름, 강력한 태풍이 불었다.
해일이 몰려와 모교의 저지대 벚나무 대다수가 바닷물에 잠겼다.
염수를 듬뿍 머금은 벚나무를 베어낼 이유가 생긴 것이다.
더구나 피해복구지원금으로 다른 수종을 심을 수 있었다.
결국 바닷가에 있던 벚나무의 일부가 야자수로 대체되었다.
일본 국화인 벚꽃을 대체하려면 무궁화를 심었어야 하지 않았을까?
언젠가 일본 나라꽃과 우리나라 벚꽃이 다른 품종이란 기사를 본 적이 있다.
제주도 한라산이 원산지인 왕벚나무가 일본으로 건너가 벚나무가 됐다는 설도 있다.
유전자 검사 결과 사실로 밝혀졌다고 한다.
고려시대에 제작된 팔만대장경 목판의 60%가 벚나무다.
조선시대에는 활을 만들 때 벚나무 껍질인 화피를 사용하기 위해 벚나무를 군수물자로 관리했다고 한다.
그럼에도 벚나무를 구박해야 할까? 벚꽃이 일본 국화란 이유로.
벚꽃 보러 여의도 다녀오는 길에 들었던 단상을 끄적거려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