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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pr 13. 2020

아들 내외와 함께 여행의 추억 쌓기

부모님과 못 이룬 로망을 아들 내외와 함께 이루다

이십 대 중반에 내가 결혼을 하자 부모님은 곧 미국 이민 길에 오르셨다.

그 이후 아내와 난 부모님과 함께 여행을 할 기회를 만들 수 없었다.

결혼한 지 십여 년 만에 미국 부모님 댁에 방문해서 함께 며칠간 여행할 계획을 세웠었다.

그즈음 회갑을 맞아 잠시 귀국하셨던 어머니께서 디스크 수술 후 갑작스러운 갑상선 암 진단을 받으셨다.

미국 집으로 되돌아가신 어머니는 병상에서 달포를 못 버티고 우리의 곁을 영영 떠나셨다.  

부모님과 함께 여행의 기억을 쌓아보려던 나의 로망은 그렇게 새드엔딩으로 끝났다.


아들이 결혼한 후 다시 로망이 생겼다.

언젠가 아들 내외와 함께 여행의 기억 쌓기를 하고 싶은 로망, 부모님과 못 이룬 꿈에 대한 미련이었을까?

하지만 이제 결혼 2년 차인 아들과 며느리에게 말을 꺼낼 수가 없었다.

인터넷 검색도 해 보았다. 아들 며느리가 시부모와 함께 여행하는 것을 좋아하는지, 안 좋아하는지.

어떤 이는 좋았다고 하고, 어떤 이는 그런 꿈도 꾸지 말라고 했다.

아내에게 넌지시 말을 꺼내 보았다. "아이들 휴가 오면 함께 여행 갈까?

아내도 펄쩍 뛰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라고. 며느리가 퍽이나 좋아하겠다고.


직장 때문에 도서지역에 살고 있는 아들 내외가 휴가를 받아서 우리 집에 왔다.

강원도로 휴가를 가려고 호텔을 예약해 놓았다고 했다.

잘 다녀오라고 하면서, 나도 내일부터 휴가라고 아들에게 넌지시 얘기했다.

아들 내외는 내 차를 몰고 강원도로 떠났다.


다음 날 아들에게서 전화가 왔다.

"엄마, 아빠도 이쪽으로 오세요. 호텔 예약해 놓을게요.

함께 휴가를 보내면 좋을 것 같아서요."

기특한 녀석! 내 마음을 어떻게 알았는지.


하지만 단번에 그러마고 대답할 수 없었다.

"아니다. 엄마랑 아빠는 따로 휴가를 보낼 테니, 너희들끼리 즐거운 시간 보내거라!"

속 마음은 빨리 가서 함께 지내고 싶었지만, 그럴 수 없었다.


아들에게서 다시 전화가 왔다.

며늘 아이와 상의해 보았는데 아무래도 부모님과 함께 휴가를 보내면 더 좋을 것 같다는 것이다.

하루 동안 자기들끼리 놀았으니까, 함께 1박 2일 정도 추억 쌓기를 하는 것도 괜찮을 것 같다고 했다.


아내와 이야기를 해보았다.

"정말일까?"

아내가 말했다. "가고 싶어서 휴가까지 맞춰 놓았으면서, 뭘 그러냐고!"

아내도 내 마음을 벌써부터 알고 있었던 것이다.


강릉 가는 열차 시간표를 검색한 후 즉시 가장 빠른 기차표를 예약했다.

오랜만의 기차 여행이었다. 아내와 함께 하는 여행.

강원도에서 아들 며느리와 함께 추억 만들 생각에 마음이 들떴다.


도착해 보니 아이들이 벌써 호텔 객실을 예약해 놓았다.

체크인을 하고 아내가 미리 검색해 놓은 맛집을 찾아다녔다.

아내와 며느리가 좋아하는 커피 공장도 들렀다.

바닷가에서 함께 사진도 찍고, 너무너무 행복했다.

물론 모든 계산은 내 카드로 결제했다(인터넷에서 얻은 팁이다. 아들 내외와 여행할 땐 먼저 계산하기).


지난겨울, 그렇게 부모님과 못 이룬 로망을 이루었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여행의 추억 쌓기


 

커피 박물관을 둘러보던 아내와 며느리(왼쪽)/테라로사 커피공장(가운데)/호텔 로비의 성탄 트리(오른쪽)
아들 내외를 따라서 우리 부부도 포즈를 취해 봤다. 자연스러움(아들 내외)과 어딘가 부자연스러움(우리 부부)
강릉 안목해변 커피거리의 어느 카페(왼쪽) / 수평선의 해돋이가 잘 보이는 방에 투숙했던 호텔(오른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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