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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Sep 18. 2021

다시 옷깃을 여민다

자유로운 영혼의 공직 채용 소감

정년퇴직 후 2년 반 가량 자유로운 생활을 만끽하다가 다시 공직자가 되었다.

페이스북으로 소식을 전했더니 2~3일간 평소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좋아요와 댓글이 북새통을 이루었다.

지인들이 볼 때, 아직은 내가 자유롭게 사는 것보다 공식적으로 국가에 기여하는 것이 더 낫다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정부부처의 전문경력직 채용 공고를 보고 지원서를 작성할까 말까 고민할 때, 딸아이가 이렇게 말했다.

아빠, 30년 넘게 직업군인으로 고생했는데 또 그렇게 살아야 해? 지금이 아주 편안해 보이고 좋은데!

사실 2년 반 동안 말 그대로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다.

코로나 전까진 여행도 많이 다녔고, 코로나 이후엔 책도 몇 권 출간하면서 심심할 땐 번역, 기고 등 n 잡러로 짭짤한 용돈벌이까지 했다.

다시 공직자의 길을 걷고 있는 두 명의 지인에게도 자문을 구했다.

한 친구는 프리랜서인 현재의 삶을 포기하는 것이 아깝지 않냐고 했고, 다른 이는 공직생활의 의미를 강조하며 적극 권유했다.

이런 생각, 저런 생각에 잠겨있을 때, 누군가 곁에서 말했다.

한번 해보고 아니다 싶으면 그만두면 되잖아!


그렇게 지원서를 냈고, 서류전형 합격 여부를 기다렸다.

발표 당일 해당 부처의 홈페이지에 들어가 보니 경쟁 대상자가 8명이었다.

다른 직위는 3~4명인데 비해 배나 많은 사람들이 지원한 모양이다.

8:1의 경쟁률을 통과해야 한다는 부담감이 생겼다.

내 속내를 읽은 아내가 다독이며 말했다.

최종 선발이 돼도 좋고 안돼도 좋아! 지금처럼 살면 되잖아! 괜찮아!


면접일이 도래했다.

오랜만에 정장을 하고 면접장소에 도착했다.

응시자 중 낯익은 얼굴이 있었다.

그는 나와 다른 전문성을 갖고 있었기에 다른 직위에 지원한 걸로 생각했다.

오랜만에 만난 사이라서 먼저 안부 인사를 나눈 후에 그에게 물었다.

당신은 000 직위에 지원했지?

그가 답했다.

아마, 당신하고 같은 직위일 것 같은데! 다른 걸 생각하고 있는데, 지원서도 써보고 면접 경험도 쌓으려고.

속으로 생각했다. 경쟁률이 7:1로 줄었다.


면접장에 들어섰다.

면접위원은 정부부처 국장급 2명과 대학교수 2명이라고 했다.

위원들이 질문하기 시작했다. 절반은 예상했던 질문이고, 나머지는 전혀 생각해 보지 않았던 것이었다.

준비한 건 준비한 대로, 나머지는 떠오르는 대로 답했다.

나중에 헤아려보니 12~13개의 질문이었다.

3분 이내로 답하라고 했는데, 20여 분간 10개가 넘는 질문을 했으니, 내가 너무 짧게 대답했던 모양이다.


최종 합격 발표 당일이 되었다.

오후 4~5시경 인터넷 홈페이지에 공지한다고 했는데, 합격했으면 누군가 연락해 주려니 했다.

지난 2년 반 동안 세 차례의 면접시험에 응시한 경험이 있었고, 모두 실패했기에 내 눈으로 명단을 확인하고 싶지 않았다.

발표시간 즈음해서 전화벨이 울렸다.

kenny선생님이시죠? 축하드립니다. 최종 면접에 합격하셨습니다. 안내문을 확인하시고 기일 내로 공무원 채용신체검사 결과서를 보내주세요.

다시 공직자가 된다는 생각 때문인지, 수차례 고배를 마신 끝에 합격했다는 성취감 때문인지 그날 밤은 잠을 설쳤다.


다음 날 아침, 신체검사를 위해 병원에 갔다.

밤새 잠을 못 이룬 탓인지 혈압이 평소보다 높았다.

다른 검사를 모두 마친 후에 다시 측정해도 혈압이 떨어지지 않았다.

서너 차례 재 측정해도 마찬가지였다.

설마! 혈압이 조금 높다고 떨어지진 않겠지?

간호사에게 마무리해 달라고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신체검사서를 찾아가라는 문자를 받았다.

병원에 가서 결과서를 받아보니 모두 정상이었다.

이 서류만 보내면 합격이구나!

마음이 편해졌다.


9월 15일, 첫 출근을 했다.

기관장으로부터 장관의 임명장을 받고 공직자 선서를 했다.

이어서 기획운영실장으로부터 현황 소개를 받고, 직원들과의 상견례, 필요한 행정안내가 있었다.

오후에는 선임연구원들이 올해 우리 부서에서 추진 중인 연구 실적에 대하여 개략적으로 설명해 주었다.

이렇게 정부부처 산하 연구소의 부서장이 되었다.


공직자로서 국가와 국민을 위해 새롭게 헌신할 수 있게 됨을 감사하며 다시 옷깃을 여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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