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집에 다니러 왔던 아들 내외와 손녀딸이 논산으로 돌아간 후 딸아이가 말했다.
아빠, 손녀딸 입만 입이고 딸내미 입은 입도 아닌가요?
그랬어? 미안하다.
딸에게 사과했지만 소용없었다.
가족 쇼핑에서 오빠와 새언니만 옷을 사주고 자기 옷을 안 산건 괜찮지만, 딸기를 먹지 말라고 한 건 너무 서운하다고 딸이 말했다.
이미 마음의 상처를 크게 입었어요.
사건의 발단은 딸기였다.
논산에 사는 아들 네가 서울 집에 오면서 산지에서 직접 구매했다는 딸기를 한 박스 사 왔다.
알이 크고 붉은빛이 짙은 딸기는 보암직도 먹음직도 했다.
씨알이 굵어선지 스티로폼 박스 안의 딸기 수량이 생각보다 많지 않아 보였다.
딸기를 좋아하는 손녀딸이 혼자 먹기에도 부족할 것 같단 생각이 들었다.
손녀가 올 때면 마트에서 싱싱한 딸기를 사다 놓곤 했었기 때문이다.
띠리리, 띠리리~
여친 조카의 첫돌을 축하해 주고 싶다는 남친과 집에 가서 우릴 기다리겠다는 딸의 전화였다.
모처럼 온 가족이 함께 쇼핑을 할 계획이었지만, 남자 친구를 만난 딸아이가 먼저 집으로 돌아가던 길이었다.
아내가 딸에게 남친과 논산 딸기를 먹으면서 기다리라고 말했다.
난 갑자기 아내와 전화 통화 중인 딸에게 큰 소리로 외쳤다.
딸기는 안돼! 먹지 마!
딸에게 아기가 먹을 딸기에 손대지도 말라고 말한 것이다.
이십 대 중반을 넘어선 어린이집 교사 딸이 당연히 이해하리라 생각했다.
딸이 성인이기 전에 나의 사랑스러운 분신이란 걸 잊고 있었다.
유치부 아이들에게 딸이 성탄절 율동을 가르칠 때도 귀여운 꼬마들보단 교사인 딸만 바라볼 정도로
딸바보였던 내가 딸보다 손녀딸을 먼저 생각하다니!
내가 이렇게 변할 줄 나도 정말 몰랐다.
그로부터 이틀이 지난 지금, 논산 딸기 반 박스가 냉장고에 그대로 남아있다.
서운하고 미안한 마음에 딸도, 아내도, 나도 아직까지 논산 딸기에 손을 대지 않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