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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Mar 26. 2022

엘사 이야기

잘 아는 줄 알았지만 전혀 몰랐던 이야기

엘사(Elsa)를 처음 본 건 2015년 11월이다.

공동경비구역에 위치한 중립국감독위원회(중감위) 캠프 잔디 위에서 엘사를 만났다.

겨울왕국의 귀여운 공주를 떠올리게 하는 이름과 달리 엘사는 육중한 몸집에 커다란 두 날개를 활짝 펼친 암소였다.

중감위 멤버에게 엘사에 대해 설명해 달라고 했더니,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면 엘사가 날아간다"라고 간단하게 대답했다.


그 후로 2017년까지 엘사를 몇 번 더 봤지만, 평화가 오면 날아간다는 엘사 이야기를 이미 들었기 때문에 더 이상 관심을 갖지 않았다.

단지 왕스푼(군대에서 사용하는 포크 겸용 스푼)으로 만든 날개가 인상적이라고만 생각했었다.


지난주 금요일, 엘사를 다시 만났다.

거의 5년 만이었다.

연구소 동료들과 함께 판문점을 거쳐 중감위 캠프에 방문했을 때였다.

이미 엘사를 몇 차례 보았던 나는 중감위를 처음 방문한 연구소 동료들에게 엘사를 소개했다.

"한반도에 평화가 찾아오면 날아간다는 날개 달린 소, 엘사예요. 엘사의 날개는 왕스푼으로 만든 거예요."


잠시 후, 엘사를 살펴보던 연구소장께서 말씀하셨다.

"임옥상 씨 작품이로구먼! 유명한 민중화가라네! 날개는 포크, 나이프, 스푼으로 제작되었군!"


가까이 가서 보니, 영어로 쓰인 안내문에 Im Oksang이란 이름이 쓰여 있었고, 엘사의 날개는 왕스푼이 아니라 포크, 나이프, 스푼으로 만든 것이었다.


난 엘사를 처음 봤을 때 자세히 보지 않았고 그저 날개를 왕스푼으로 만든 것으로 생각했고, 누가 만들었는지는 궁금해하지도 않았었다.

대충 본 첫 느낌, 중감위측의 간단한 설명으로 엘사를 규정하고 있었던 것이다.


순간적인 깨달음이 왔다.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실은 내가 엘사에 대해 아는 것이 아무것도 없었군!"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아는 것이 거의 없었군!


집에 돌아와서 구글링으로 임옥상 작가와 엘사(엘자)에 관한 기사를 찾아본 뒤에 조금 더 알게 되었다.

엘사는 스위스 건국 제71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임옥상 작가가 만든 '자유의 암소'였다.

작가는 소에게 자유를 주기 위해 날개를 달아줬고, 우유와 노동력과 고기까지 제공하는 소를 공격하는 인간을 되받아칠 수 있도록 포크와 나이프도 줬다고 한다. 작가의 의도와 달리,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중감위 멤버들의 구전을 통해 전해 내려온 엘사의 사연은 한반도에 평화가 오면 날아가는 소가 되었던 것이다.


우린 인생을 살아가면서 누군가에 대해서 무언가에 대해서 잘 아는 듯이 얘기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하지만 실제로 그 누군가와 무언가에 대해서 완전하게 아는 경우는 그리 많지 않다.

내가 엘사를 자주 봐왔고, 관계자에게 설명을 들어서 잘 안다고 생각했지만 실제론 전혀 모르고 있었던 것처럼.


사람도 마찬가지다.

친숙하고 익숙해서 서로 잘 안다고 생각하지만 그렇지 않을 때가 종종 있다.

수십 년을 함께 사는 부부도 서로를 잘 모르는데, 몇 년간 뜻을 같이 했거나 함께 일을 했다고 서로를 얼마나 깊이 알 수 있겠는가?



Elsa , Nov. 2015 @Kenny


임옥상 작가와 엘사에 관한 2001년 7월 23일 인터넷 한국일보 기사 내용이다.

'매향리 탄피 조형물' 화제 임옥상 씨, 판문점에 '자유의 암소' 설치

미 공군 폭격훈련장 매향리의 폭탄과 탄피로 '반미(反美) 조형물'을 만들었던 민중미술가 임옥상(51)씨와 목가적인 알프스의 나라 스위스가 한반도의 분단 때문에 인연을 맺는다. 8월 1일 판문점 중립국감독위원회 스위스 캠프에서 열리는 제710주년 스위스 건국기념일 리셉션에서는 임 씨가 만든 암소 조형물이 선보일 예정이다.
스위스 중감 위원들은 하늘로 날아오를 듯 거대한 날개를 펼친 이 알루미늄 암소(길이 2m, 너비 3m 50cm)를 '엘자'(Elsa)로 이름 짓고 녹음이 푸르른 캠프 앞뜰에 풀어놓겠다고 한다.
임 씨는 처음 스위스 대사관을 통해 중감위측의 아이디어를 접할 때만 해도 별다른 감흥은 없었는데 현장탐방 후 의욕이 생겼다.
“너무 따뜻하고 고요한 봄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곳에 비무장지대가 있고 중감위가 현존했습니다. 일상에서 잊어버리기 쉬운 분단의 현실을 '엘자'를 통해 일깨워 주고 싶었습니다.”
임 씨에게 맡겨진 것은 풀을 뜯는 형상의 소. "판문점에서 저는 자유를 떠올렸습니다. 소에게도 자유를 주자. 날개를 달기로 했습니다. 소는 우유와 노동력, 마지막에는 고기까지 제공합니다. 소에게 자신을 공격하는 인간을 되받아칠 수 있도록 포크와 나이프를 줬습니다."
판문점으로 가는 길 옆 파주시 도내리 작업장. 임옥상 씨는 알루미늄 주물로 소의 몸통을 만든 뒤 고물상에서 구입한 1만여 개의 양식 포크, 나이프, 숟가락으로 두 날개를 엮어 독특한 조형미와 번쩍이는 광택의 엘자를 마무리해 가는 중이다.
임 씨는 스위스 대사관은 스위스관광청, 문화 홍보청의 재정 지원으로 작품을 완성하고 있는 중이다.

@https://m.hankookilbo.com/News/Read/200107230061140255


옆과 뒤에서 보니 엘사의 날개가 스푼뿐 아니라 포크와 나이프로 만들어진 것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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