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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Kenny Apr 02. 2022

매화에 물을 주어라

퇴계 이황의 유언

서울의 봄을 알리는 듯 연구소 주변의 매화나무가 꽃망울을 터뜨리기 시작했다. 고결함을 일컫는 문인화의 주제인 사군자(四君子) 매난국죽(梅蘭菊竹)에 포함될 정도로 옛 선비들의 매화 사랑은 유별났다. 그중의 으뜸은 “저 매화나무에 물을 주어라”는 유언을 남긴 퇴계 이황이라 할 수 있다.


매화는 유박(柳璞)이 지은 『화암수록(花菴隨錄)』에 나오는 화목구등품제(花木九等品第) 중 1등급에 해당하는 꽃이다. 높고 뛰어난 운치를 취한다는 최상위 등급에 매(梅), 국(菊), 연(蓮), 죽(竹), 송(松) 5가지 식물이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매화다.


퇴계는 평생 140여 회의 벼슬이 내려졌지만 병이나 일신상의 이유로 70여 회를 사임했다고 알려져 있다. 1566년 7월, 퇴계가 오지 않자 명종(明宗)은 독서당(讀書堂) 신하들에게 ‘현인을 불러도 오지 않는다(招賢不至歎)’라는 제목의 시를 짓게 하였고, 화공(畵工)에게 ‘도산도(陶山圖)’를 그리게 하고 송인(宋寅)에게는 ‘도산기(陶山記)’와 ‘도산잡영(島山雜詠)'을 쓰게 해서 병풍을 제작할 정도였다는 일화가 있다.


퇴계가 출사를 거절한 이유는 학문의 목적은 출세가 아니라 자기 수양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퇴계의 성정을 고려해 보면, 사군자에 해당하면서 높고 뛰어난 운치의 1등급 식물인 매화가 퇴계 자신을 닮았기에 매화에 물을 주라는 유언을 남길 정도로 매화를 사랑한 것이 아니었을까?


반면, 매화에 물을 주라는 퇴계의 유언이 단양군수 시절 그의 방기(房妓)였던 두향(杜香)을 보살펴주라는 의미였다는 해석도 있다. 그가 물을 주라는 매화나무는 임기를 마치고 단양을 떠나는 퇴계에게 두향이 정표로 준 것이기 때문이다. 그의 생전에 정성껏 돌보던 사랑의 표징을 염려하며 남긴 그의 유언은 두향을 잘 보살피라는 의미라는 것이다. 실제로 퇴계가 세상을 떠나자 절개를 지키려던 두향은 호수에 몸을 던졌고, 퇴계의 후손들이 그녀의 묘소를 잘 관리했다는 설이 있다.


두향과의 러브스토리가 사실이든 아니든 매화를 사랑했던 퇴계는 당대 최고의 로맨티스트였음에는 틀림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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