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은 늘 새롭다
긴 연휴의 첫날이다.
특별한 계획 없이 모처럼 아내와 단둘이 집에서 연휴를 보내게 되었다.
10월 중 바쁜 일정이 많아서 일거리를 집으로 가져왔다. 최근에 맡게 된 번역 감수 건이다. 반드시 해야 할 일이 아니지만 사서 하는 거라 일거리라고 하기엔 좀 그렇긴 하다. 번역물 감수 의뢰가 들어왔는데, 거절해도 무방한 걸 하겠다고 했기 때문이다. 여하튼 퇴근 후시간과 휴일을 이용해서 400쪽 정도의 분량을 한 달 내 살펴봐야 한다. 전문적 식견이 없는 이가 번역을 했는지 전문용어의 번역 오류 투성이다. 괜히 맡았다 싶다가도 긴 연휴에 소일거리가 있으니 괜찮다고 자위하면서 맥북 자판을 두드리고 있었다.
전화벨이 울렸다. 급하게 연락 올 일이 없기에 하던 일을 계속했다. 잠시 후 아내의 전화벨이 울렸다. 전화 통화를 한 아내의 말이 친구 내외가 영종도에 가서 칼국수나 먹고 오자고 했단다. 그러지 뭐!라고 했더니 아내가 해야 할 일이 많다더니 괜찮냐고 물었다. 오랜만에 영화 보러 갈까 하는 아내의 말에 시큰둥한 반응을 보인 것이 미안했던 터라 괜찮다고 했다. 그렇게 영종도의 맛집이라는 칼국수집에 갔다.
대기 순서가 80번째란다. 주인장의 말씀이 한 시간 정도는 기다려야 한단다. 아내들이 우리가 기다릴 테니 당신들은 주변 산책이나 하라고 했다. 친구와 함께 이십여분 걸었더니 마시안 해변이 나왔다. 조개 잡는 이들이 제법 많았다.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조개체험장이었다.
조개잡이 체험료 1만 원, 장화대여로 2천 원, 호미대여료 1천 원, 1인당 1만 3천 원이란다. 넷이면 5만 2천 원, 차라리 5만 원어치 조개를 사 먹는 게 낫겠다며 체험장 옆쪽의 갯벌로 향했다. 친구와 둘이 나뭇가지를 주워서 갯벌을 뒤적여 보았다. 아무것도 없었다. 체험장 쪽에서 조개가 제법 나오는 것 같던데, 여긴 뭐가 없네 하면서 나왔다.
근처의 카페로 향했다. 또 다른 친구의 동서가 100억 들여서 지은 카페라고 한다. 주말엔 매출액이 1억 정도 된다고 하더니 주차장과 카페 바깥쪽 야외 벤치까지 빈자리가 없었다. 카페 밖 한쪽 모퉁이에 둘이 앉아 바다 쪽을 바라보았다. 망중한이 이런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아내들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30번째로 대기순서가 줄었다고 한다.
친구와 함께 멍 때리고 앉아 있었다. 20분 정도 후면 차례가 온다는 전화를 받고 칼국수집으로 향했다. 아내가 계산서를 주면서 빨리 가서 먼저 계산하라고 했다. 계산서를 받고 주머니를 뒤져보니 지갑이 없었다. 어딘가에 떨어뜨린 것이다.
주차장, 조개잡이 체험장, 카페, 가고 온 길목 중 한 곳에 있을 거란 생각에 밖으로 나갔다. 주차장부터 시작해서 조개잡이 체험장을 거쳐 카페로 향했다.
어디에도 지갑은 없었다. 막대기로 갯벌을 뒤적일 때 떨어뜨린 것 같아 그쪽에 가봤더니 밀물에 잠겨 갯벌이 보이질 않았다.
지갑 찾기를 포기하고 돌아서는 데, 어떤 젊은 아빠가 물었다. 혹시 지갑을 찾으시나요? 네. 그런데요. 신분증 사진이란 비슷하신 것 같아서요라며 지갑을 내밀었다. 물에 젖고 모래가 묻은 나의 지갑이었다. 고맙다고 인사한 후 다시 칼국수집으로 향했다. 사례를 해야 했는데 깜박했다. 현금도 없었는데 뭐 하며 칼국수집에 도착했다. 마침 칼국수가 나왔다. 맛있게 먹고 나서 아내들과 함께 다시 카페로 향했다.
계산대 앞에 길게 선 줄이 보였다. 다른 카페로 가자고 했더니 아내들이 안된다고 했다. 다른 친구 아내인 사장 누나에게 여길 다녀갔단 말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2층에 빈자리가 한 군데 있었다. 친구와 둘이 앉아 바다를 바라보며 한참 기다렸다. 아내들이 빵과 커피를 들고 나타났다. 칼국수에 밥까지 말아먹었는데 위에 빵이 들어갈 부분이 남아 있었다.
언젠가 텔레비전에서 위 운동에 관한 방송을 본 기억이 났다. 실험대상의 위가 가득 찬 상태에서 맛있는 음식을 보고 먹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뇌에서 위로 먹고 싶다는 생각이 전달되자 위가 움직이더니 한쪽 귀퉁이에 공간이 생겼다. 그곳으로 맛있는 음식이 들어갔다. 내 위의 그 한 귀퉁이로 빵이 들어간 것이다.
두어 시간 앉았다가 차가 밀리기 전에 출발하자며 카페를 나섰다. 주차장으로 가다가 이왕 온 김에 바닷가에 들렀다 가자고들 했다. 신발과 양말을 벗어 놓고 맨발로 해변을 걸었다. 올해는 바닷물에 처음 발을 담갔다. 밀려왔다 나가는 바닷물에 발을 담그고 해변을 쭈욱 걷던 중 그들을 보았다.
빨주노초남보, 파란색만 빠진 무지개색깔의 상의를 맞춰 입은 젊은이들이었다. 동영상을 촬영 중인 모양이다. 일렬로 서서 잠깐씩 춤을 추는 것 같기도 한데 영 어설펐다. 두어 번 그런 모습을 반복하더니 그냥 간다. 나름대로 의미 있는 순간을 만든 모양인데 뭘 한 건진 잘 모르겠다. 여하튼 청춘은 늘 새롭다.
이렇게 긴 연휴의 첫날이 지나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