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활훈련으로 대청호반을 걷다)
제50일 차 : 2016년 11월 06일 (일요일)
벌써 50일이 지났다.
그때 절박하게 원하던 단 한 가지 소망은 그저 걷게만 해 주세요였다.
다행히...
갈비 10대가 부러지며 폐에 심한 손상.
그리고 골반뼈와 팔목골절에 허벅지의 깊은 내상의 중상임에도
평소 튼튼하게 몸관리를 했던 덕에 초록잎새는 회복을 향한 쾌속항진 중이다.
을지병원 노사분규 파업으로
조기 퇴원을 해야 했던 초록잎새가 후유증으로 밤마다
통증에 시달리던 고통은 한의원의 진료덕에 호전을 보이고 있다.
그런데...
오늘은 일요일이라 휴진이다.
초록잎새는 진료가 없는 대신 재활 훈련으로 좀 걷고 싶어 한다.
그래서 찾아간 곳...
대청호반 흥진마을의 갈대밭 추억길이다.
신상교를 지나자마자
U턴하여 차를 주차 후 산책을 시작했다.
억새가 나부끼는 대청호반 둘레길을 걷다가
문득 호반의 건너편을 바라니 계족산성이 선명하게 조망된다.
아주 조심스럽게 걷는 초록잎새...
이대로 걸어가다 힘들고 지치면 돌아오기로 했는데
의외로 초록잎새가 잘 버텨주고 있다.
가을의 전령사 억새가 아름답게 흩날리는 강변길은 호젓하다.
휴일인 일요일이라 좀 번잡스러울 줄 알았는데 의외다.
아마도 다들 곱게 물든 단풍 산행지로 떠난 듯하다.
왁작지껄 정신 사나운 그곳보다 이곳이 그래서 훨~ 좋다.
작년엔 가뭄으로 강변이 그대로 드러난
대청호반이 이색적인 아름다움을 연출했었는데 올해는 억새까지 물에 잠긴 풍광이다.
힘들면 좀 쉬었다 걸으라 해도
계속해서 걷던 초록잎새를 벤치에 주저앉혔다.
그런 후...
간식이라도 먹이려 했더니
뭘 먹기만 해도 금방 설사가 나 겁나서 못 먹겠단다.
이런~!
그러고 보니 급하게 서둘러 나오느라 휴지를 챙기지 못했다.
물 한 모금 마시는 것도 조심스러운 초록잎새라 더 앉아 있을 이유가 없어 곧바로 일어나 호반길을 걸었다.
제법 걸었다.
이젠 이쯤에서 되돌아가야 한다.
힘들면 되돌아가자니 그냥 끝까지 완주하겠단다.
단둘만이 걷는 호젓한 호반 산책길이
이젠 막바지에 이르게 되자
억새가 더 풍요롭다.
작년엔 흥진 마을 입구가 더 멋진 모습였는데...
올해는 이곳의 억새가 더 멋지고 넓다.
바람이 불 때마다 일렁이는 은색의 물결이 장관이다.
그 은색 물결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초록잎새의 표정에 쓸쓸함이 베어난다.
마음은 그냥 막 달려도 될 것 같은데 한발 한발 내딛는 게 고통이란다.
워낙 허벅지의 내상이 깊어 실밥을 풀러 버린 자리엔
딱정이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는 상태라 당기고 쓰리고 아프단다.
아직 다 아물지 않은 골반뼈의 영향인지 가래톳이 슨 것 같이 가랑이도 뻐근하다니
더 이상 무리하면 안 될 것 같다.
한달음이면 돌았을 거리를
그 몇 배의 시간을 들여 겨우 돌아 나온 갈대숲 산책길의 막바지에 이르자
초록잎새가 다리를 절기 시작한다.
내가 얼른 가 차를 끌고 올 테니 그냥 여기서 기다리라 해도
웬일인지 고집을 부린다.
그냥 내처 걷겠단다.
힘들어도 이렇게 운동을 해 줘야
뼈가 더 잘 붙고 회복도 빠를 거란 의사 선생님의 조언을 그대로 실행한 초록잎새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그대로
침대에 눕더니 까무룩 히 꺼져 들어가듯 잠이 들었다.
오늘은 모처럼 초록잎새가
재활의 의지를 활활 불살라 버린 휴일의 오후가 되었다.
찬바람이 불어 올 수록 더욱더 산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계절이다.
올 한 해가 다 가기 전 아주 야트막한 야산이라도 좋으니 단둘이 그 품에 안겼음 하는 바람이다.
그 바람의 첫걸음을 뗀 오늘....
119 구조대에 의해 산에서 실려 내려온 지 50여 일 만의 첫나들이가 꿈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