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O서킷 트레일 8일 차 토레스 델 파이네 전망대
배낭여행 제12일 차
산행일 : 2023년 3월 16일 목요일
산행지 : O서킷 트레일 8일 차 (토레스 델 파이네 전망대)
누구랑 : 산찾사 & 오석민
동경로
칠레노 산장 05:04 출발
토레스 델 파이니 삼봉 전망대
칠레노 산장 09:26 ~10:14
여행자 센터 셔틀버스 정류장 11:36 ~ 14:00
라구나 아마르가 국립공원 탐방 안내소 15:00 출발
나탈레스 도착 후 택시로 숙소이동
산행거리 : 15.28km 산행시간 : 06:32 (오룩스맵에서 기록된 산행 정보로 표기)
(산행지도)
칠레노 산장 6인실엔 비수기라 그런지 4명만 배정됐다.
우리와 맞은편 침상의 젊은 연인은 새벽부터 산행준비를 한다.
시계를 보니 4:25로 아직 이르다.
어차피 깨어난 김에 아예 불을 밝힌 우리도 산행 준비에 나섰다.
우린 늦게 내려올 경우 체크아웃 시간 넘길 수 있어 패킹한 배낭을
이곳 산장에서 지정한 보관대에 들여놓고 서브배낭만 챙겨 식당으로 향했다.
그런데...
일부 트래커들이 식당에서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전날 뜨거운 음식과 찬음식을 선택하라 했을 때 우린 좀 늦게
내려올 경우 식은 음식을 제공하는 걸로 이해했는데 새벽 산행에 나선
트래커에겐 이렇게 이른 시간임에도 뜨거운 음식을 제공한다는 걸 뒤늦게 알았다.
그럼 찬음식은?
아래 사진에서 보이는 식탁에 보자기로 씌워 놓은 음식이다.
산장에선 아침 영업을 해야 하니 그들이 정한 시간 내에 못 올 경우엔 가차 없이 치워 버린다.
그들 말을 이해 못 해 찬음식을 선택한 우린 그래서 이날 조식을 포기해야 했었는데
지금 생각하니 차려 놓았던 저 음식이라도 챙겨갈 걸이란 후회가...
ㅋㅋㅋ
지난밤엔 밤새 비가 내리고 기온은 떨어져 체감온도는 영하의 추운 날씨다.
어둠에 싸인 산장밖을 나서자 보슬비가 내린다.
그래도 가야지 어쩌겠나?
이날 그곳을 가려는 주목적은 아침 햇살에
토레스 델 삼봉이 붉게 변하는 장면을 보기 위함이다.
그런데...
이미 예전 W트레일을 완주할 때 한낮에 다녀갔던
석민 씨는 이런 날씨가 지속된다면 굳이 올라야 할 이유가 없다.
그가 가던 길을 되돌려 내려올 수 있어 오늘은 나 홀로 산행해야 할 가능성이 농후하다.
이른 아침 서둘러 떠난 탓에 지금 걷는
속도로 올라서면 우린 한동안 일출을 기다리며 떨어야 한다.
그래서 우린 최대한 게으른 걸음으로 땀나지 않게 걸었다.
그러다 보니 몇몇 트래커들이 우릴 추월한다.
그들 중엔 이젠 다정한 산우가 된 미국인 부부도 있었다.
산장을 떠날 때 내리던 비가 이젠 눈으로 내린다.
등로엔 풀잎에 쌓인 흰 눈이 마치 활짝 피어난 야생화 마냥 어여쁘다.
캄캄한 어둠 속을 걷다 보니 어느새 수목 한계선을 넘겼나?
숲 속을 벗어나자 너덜길이 이어지고 불빛들은 정상을 향하고 있다.
그렇게 걷다 보니 어느덧 동녘엔 일출의 산고로 붉게 물들어 가고 있다.
마침내 우린 정상에 도착했다.
다행히 눈도 그치고 운무에 갇혔던 토레스 델 삼봉도 서서히 그 모습을 드러낸다.
날은 완전히 밝았지만 토레스 델 삼봉을
비춰야 할 햇살은 더디게 오는 바람에 한동안 우린 추위에 떨어야 했다.
그러다 어느 순간....
회색빛의 암봉이 붉게 변하기 시작했다.
와우~!!!
바로 이 모습을 보기 위해 우린 야간 산행을 했다.
비가 내려도 눈이 내려도 개의치 않고 꿋꿋하게 올라선 보람이 있다.
나는 참 날씨복은 타고났나 보다.
산장을 떠날 땐 전혀 기대할 수 없었던 풍광이 지금 내 눈앞에 펼쳐지고 있다.
그게 얼마나 감사하고 고맙던지?
이곳 삼봉 전망대에선 48세의 영국 여성을 또 만났다.
그 여인은 어찌나 우릴 반겨하던지?
그녀가 자신의 핸드폰을 건네며 함께 사진을 찍자 하여
그냥 내 핸드폰으로 담았는데 나중에 그녀에게 이 사진을 보내 주는 건 석민 씨 담당....
우야튼 멋지다.
예전엔 한낮에 오늘은 새벽에 올라
또 다른 모습의 이런 풍광을 경험한 석민 씨의 감정은 남다를 듯...
선뜻 발길을 돌릴 수 없었던 우린 그러고도 한참을 전망대에서 서성댔다.
그러다 마침내 추위에 굴복당한 발길을 돌려야 했는데
와우~!
어둠에 싸인 등로가 이런 줄 차마 몰랐다.
완전 너덜길에 암릉에 살짝 덮인 눈으로 내리막길은 위험 천만한 등로다.
다들 설설설 기다시피 내려서는 하산길에서 바라본 풍광도 역시 선경이다.
이런 풍광을 내 생전에 또다시 볼 수 있을는지?
아마 그런 일은 없을 것 같다.
돈과 시간도 그렇지만 이젠 체력이 문제라 힘들 것 같다.
그래서 나는 한시라도 젊어서 다녀야 함은 만고불변의 진리임을 새삼 다시 또 절감하고 있는 중이다.
내 인생 처음이자 마지막이 될 풍광을 우선 가슴에 담아둔다.
그런 후엔 훗날 그 추억을 소환하기 위한 작업으로 시린 손을 후후 불며 난 열심히 디카에 담았다.
그렇게 내려서다 우린 또 O서킷 트레일을 함께 걸었던 동지를 만났다.
이분은 뒤늦게 토레스 삼봉을 향해 올라서는 중...
스치고 지나는 인연이라도 잊지는 못 할 것 같아 우린 기념사진을 남긴 후 이별을 했다.
우리 뒤를 뒤따라 오던 영국 여인도 우리와 같은 마음인 듯....
우리 셋 함께 사진을 찍자 하여 이렇게 셀카로 그날의 추억을 또 남겼다.
토레스 델 삼봉 전망대에선 흐린 하늘이 일순간에 벗어지며
쾌청했던 날씨가 산장을 향한 숲 속길을 걸어 내릴 땐 또 함박눈이 되어 내린다.
드디어 도착한 산장...
물론 새벽에 차려졌던 우리의 식은 밥상은 깔끔하게 치워졌다.
그러나 우린 치워버린 조식보다 더 맛난 아침식사를 했다.
바로 한국에서 가져온 컵라면이다.
한국을 떠나온 이후 처음으로 개봉한 라면맛은 유별나게 맛이 좋았다.
평소 라면 국물은 안 먹고 버렸다는 석민 씨도 알뜰살뜰 국물마저 깔끔하게 비워냈다..
비록 컵라면이지만 황제밥상 부럽지 않을 식사였기에
쿨~하게 한순간에 날아가 버린 칠레노 산장의 조식에 대한 미련을 떨친 우린 길을 나섰다.
이젠 어제 걸었던 능선 사면의 길을 따라 올라서다
필연적으로 만나게 된 갈림길에서 로스 쿠에르노스 산장을 향한
길을 외면 후 아센시오 계곡이 노르덴스크홀드 호수로 흘러들어 가던 저 평원을 향해 내려선다.
우리가 그곳을 향하던 동안에 숱한 트래커들은 이 언덕을 올라서고 있다.
바로 파타고니아 W트레일을 걷기 위해 나선 트래커들이다.
처음 시작하는 그들과 달리 우린 이제 저 계곡만 내려서면 그 힘들다는 O서킷 트레일을 완주한다.
얼마 후...
우린 아센시오 계곡을 넘는 다리를 건너 저 언덕을 넘었다.
우린 곧 처음 발걸음을 옮겼던 여행자 센터가 맞아줄 거다.
그곳을 향해 토레스 산장을 지나자
이정목이 셔틀버스 정류장으로 우릴 안내하고
이내 곧 여행자 안내센터에 도착함으로 우린 O서킷 트레일의 대장정을 끝냈다.
그런데...
너무 일찍 도착한 탓에 우린 셔틀버스를 장장 2시간 20분이나 기다려야 했다.
그러자 석민 씨는 어느새 우리가 여길 떠날 땐 씁쓸한 커피를 내밀더니
O서킷을 완주한 오늘엔 아주 달달한 커피를 구입해 내게 내민다.
마침 여행자 센터엔 내가 고교시절 광적으로 좋아했던
영국의 전설적인 그룹 핑크 플로이드 음악이 울려 퍼지고 있다.
내가 좋아했던 Wall 음반 중 Another brick in the wall 파트 2번이 울려 퍼질 땐 옛 추억 속에 빠저 든다.
신혼 때 난 월급을 받자마자 싸구려 백판이 아닌 아주 비싼 오리지널 음반을 먼저 구입했었다.
그 당시 마눌님은 프로그레시브 한 록을 싫어한 탓에 그녀가 없을 때만
즐겨 들어야 했는데 그런 음악들을 이곳에서 다시 들을 수 있는 게 꿈만 같다.
그건 마치 내 평생 소원였던 버켓리스트 0순위의 파타고니아를
냅따 발로 차버린 순간을 축복해 주는 듯 느껴져 기분이 너무 좋았다.
여행자 센터에서 우린 도시락으로 점심을 먹으며 음악을 듣다 보니
금방 14:00가 되어 셔틀버스로 라구나 아마르가 국립공원 안내소에 도착했다.
만나면 좋은 친구~!!!
ㅋㅋㅋ
이곳에선 유쾌한 영국 여인이 로칼 버스를 기다려야 하는 지루함을 덜어준다.
그런 우리에게 다가선 남정네가 보온물통을
수도꼭지에 연결한 배낭을 메고 커피와 햄버거, 샌드위치등을 판다.
그에게 즉석커피를 구입한 우린 그걸 마시며 로칼버스를 기다렸다.
드디어....
정시보다 좀 늦게 도착한 로컬버스를 타고 우린 광활한 초원을 달린 끝에
종착지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도착했다.
함께 버스에 타고 이동했던 영국 아줌마 그리고 미국인 부부와 이별 후
우린 전에 하룻밤을 묵었던 호텔보다 훨씬 력셔리한 호텔을 향해 택시로 이동했다.
예약한 고급호텔은 그간 고생한 우릴 위해 베푼 보너스....
넓고 아늑한 객실이 마음에 들고 커튼을 제키면 전망 또한 끝내준다.
그런데 뭐가 그리 바쁜지?
사진 한 장 안 남겼넹~!
호텔 안엔 훌륭한 빠가 있어 음식 주문도 가능하다.
그간 수고로운 우릴 위해 오늘은 그래도 된다는
석민 씨의 주장에 따라 저녁엔 이곳에서 우린 좀 비싼 고기를 썰었다.
그리고...
이날 난 오랜만에 반주로 맥주를 마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