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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Jan 29. 2017

남의 집 도서관 1

준비하며


설연휴가 다가오니 걱정이 앞섰다. 올해는 집안 모임이 생략되고, 은재형은 시골로 내려간다. 만나줄 벗도 없고, 대부분의 가게는 문을 닫는다. 이래 나 홀로 연희동에 남아 무얼하리요? 생존할 방도를 마련해야 했다. 


놀아줄 사람이 없으면 만들면 된다. 남의 집 프로젝트를 빌어 놀 궁리를 해보자 싶었다. 나말고 연휴에 심심한 이가 또 없겠나? 그들을 찾아내 연희동 브라더스로 끌어들이기로 했다. 엑스맨의 자비에 교수가 전세계 엑스맨을 찾아내 소환하듯이 전국의 명절 심심러를 불러들일 아이템을 찾기로 했고, 그것은 책였다. 



연희동 브라더스에는 책이 많다. 정말 많다. 소유주인 은재형 추산 1,000권이란다. 게다가 넓은 거실창과 이를 통해 쏟아져 내리는 햇살은 책을 읽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나도 가끔 하루 휴가를 쓰고 이집 거실에서 하루종일 책만 보기도 한다. 그러면 세상 모르게 시간이 흐른다.


이 경험을 상품화해야 했다. 좋은 공간에서 책에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을 어떻게 어필해야 할까? 요새 동네 서점이 부각되고 있으니 서점? 아니면 책방? 이건 책을 구매해야 하는 메시지가 전달되니 내 취지와는 맞지 않았다. 구매의 부담없이 마음껏 책을 볼 수 있는 그런 공간을 담는 명사가 필요했고, 거기엔 도서관이 제격였다. 도서관. 남의 집에서 하니 '남의 집 도서관'이네! 


남의 집 도서관 네이버 예약 페이지


도서관 운영방식과 가격을 고민할 차례. 일단 가격부분에선 내려 놓았다. 무료로 오픈하고 도서관 운영의 경험을 살려서 나중에 어떤 식으로든 수익화하면 되지! 그리고 무엇보다 이건 내가 설연휴에 심심함을 달래려 하는 일 아닌가? 무료 입장으로 하고 오는 분들께 마실 것, 먹을 것도 퍼드리자 싶었다. 기왕 남의 집으로 모신 거 해드릴 수 있는 선에서 다하고 싶었다. 검증도 되지 않은 이 공간에, 그것도 교통도 불편한 곳까지 힘들게 와주신 것에 대한 최소한의 감사를 표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도서관 운영방식이 가장 고민였다. 예약제로 운영해야 하기 때문에 이용시간에 제한을 두어야 하는데, 사람들마다 책읽는 속도가 제각각이니 적정한 제한선이 애매했다. 딱히 가이드가 없으니 감으로 정했다. 내 독서 행태를 기준으로 3시간이면 책한권 발췌독은 가능하니 3시간 단위로 나눠서 받고, 입장 인원은 거실 크기상 최대 4명으로 제한하기로 했다. 좀더 수용할 수는 있으나 쾌적한 독서 환경 조성이 최우선이라 생각했다. 


이런 상품 구성이 최선은 아니겠으나 일단 내 마음대로 내놓고 반응을 살펴보며 고쳐나가면 된다. 카카오에서 책으로 전파받았으나 실제 업무에 적용할 수 없었던 린스타트업 방법론을 이럴 때 써보는거지. 이건 내 프로젝트니까.


도서관에 어떤 책이 있는지 보여주는 게 생각보다 쉽지 않았다. 


근데 사람을 어떻게 모으지? 은재형도 없이 나혼자 호스팅을 하려니 생판 모르는 사람을 받기가 저어해진다. 이 험한 세상에 타인을 집으로 들였다가 험한 꼴을 당하는 건 아닌가 걱정도 앞선다. 난 싸움을 못하니까. 그래서 회사 사람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설사 초면인 동료라도 회사라는 소속이 있으니 서로 안심할 수 있겠다 싶었다. 


카카오 사내 게시판인 아지트에 홍보글을 올렸다. 막상 올리려보니 너무 오지랖스럽나? 싶어 잠시 주저했는데 그래도 기왕 기획한 거 끝까지 밀어 부치기로 했다. 근데 웬걸. 입사 이래 아지트에 올린 글 중에서 가장 큰 호응을 받았다. 좋아요가 212개라니! 게다가 총 12석을 마련해서 오픈했는데 11석이 찼다. 이 정도면 선방이지! 브런치팀에서는 우리 도서관에 기증하신다며 책도 여러 권 선물해 주셨다. 기분좋은 출발였다.


카카오 사내 게시판에 올린 홍보글


예상보다 많은 분들이 신청을 해서 거실 구조를 바꾸기로 했다. 원래는 여럿이 한데 모여 밥을 먹거나 담소를 나누는 목적으로 기획된 공간이여서 3인 이상이 함께 독서를 하기에는 적절치 않았다. 오롯이 책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고 싶었다. 거실의 하이라이트인 차창을 마주하며 책을 보는 경험도 더하고 싶었다. 그래서 이렇게 재배치를 했다. 



혼자 낑낑대며 책상이며 의자 등등을 재배치하고 보니 해가 저물었다. 조명을 켜고 물끄러미 보고 있자니 이런 생각이 들었다.


책보다 술이 더 땡기네?



아침에 일어나 다시 보니 '바로 이거지~~' 싶었다. 내 머리속에서 그렸던 그 도서관의 느낌, 그대로였다. 어제는 어두컴컴해서 살지 못했던 구석구석의 디테일이 햇살을 받으니 살아났다. 빛 하나로 공간이 이렇게 달라질 수 있다니.



도서관 설명서를 손글씨로 끄적였다. 아날로그 감성을 살리기 위해서 라기보다 전날 회사에서 프린트해온다는 걸 깜박했다;; 



깨알같은 자기 PR도 곁들였다. 은재형이 공간 기획을 맡았던 네이버 사옥에 대한 책. 내가 대학생 때 1년간 배낭여행을 하며 끄적였던 기록이 담긴 지구 한바퀴 여행책. 요렇게 두 권을 부러 따로 빼내어 '보세요~보세요~' 했다. 근데 내 책은 지금봐도 제목이 참 오글거린다...편집권이 출판사에 있으니 작가에게 제목을 지을 권한이 크지 않았다. 



BGM은 아날로그 감성을 살려볼 생각으로 CD를 택했다. 여행하며 모아온 세계 음악들 위주로 선곡해 봤다. 오랜만에 여행 때 듣던 음악에 취해보고 싶기도 하고.



이렇게 손님맞을 준비를 모두 마쳤다. 잠시뒤면 예약한 손님들이 초인종을 누르고 들어온다. 그들의 표정이 어떨지 너무 궁금하다. 어느 자리를 제일 좋아할까? 무슨 책을 선택하려나? 내가 내리는 커피는 입에 맞으려나?



이제 남의 집 도서관이 문을 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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