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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남의집 문지기 Mar 07. 2017

남의 집 테스트를 마치며

두달간 두가지 아이템으로 남의집 프로젝트를 테스트했다. 취업 준비에 한창인 대학생들과 사회 초년생들을 초대해 멘토링을 진행해 봤고, 거실의 장서를 개방해 도서관으로도 운영해 봤다. 진짜 올까? 싶었던 이벤트들였음에도 적잖은 손님들이 방문했고, 남의 집을 만끽하고 돌아갔다. 이렇게 머리속에서만 그렸던 그림이 실제로 펼쳐지니 확신만큼 질문도 꼬리를 문다. 탓에 혼란스럽다. 글을 끄적이면 생각이 좀 정리될까 싶어 느낀 바를 두서없이 옮겨본다.


방문 동기

커다란 차장을 통해 남의 집 정원이 훤히 내려다 보이는 전망. 그리고 책들로 가득찬 거실. 기획 단계에서는 이런 공간감이 소구하겠지 싶었다. 물론 모든 손님들이 집에 들어설 때마다 어머! 어머! 좋아한다. 그런데 그들과 얘기를 나누고, 이후 설문을 통해 의견을 받아보면 대부분 공간에 대한 호기심보다 모르는 누군가의 집에 놀러간다는 낯선 경험에 혹한 듯 했다.


 TV프로그램 '나혼자 산다'를 즐겨보는데 출연자들이 먹고자는 거실을 들여다 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럭셔리하던, 더럽던, 이상하던 사람의 향이 베어든 공간에 놀러가는 맛. 그 맛에 남의 집 프로젝트를 찾는 것 같다. 그러면 친구집에 놀러가면 되지 않나? 반문해 봤으나 나 역시 학교 졸업 후 친구집에 놀러간 적이 거의 없다는 걸 깨닫는다. 왜 한국인은 성인이 되면 남의 집에서 놀지 않을까 궁금해졌다.


어색함

'내 집처럼 있다가 가세요'라고 말하지 않았다. 여긴 남의 집이니까. 게다가 다들 초면이다. 모르는 이의 집에 생면부지의 사람들이 모여 있으니 참으로 어색할 수 밖에. 이를 없애려 노력하지 않았다. 되려 더 어색하게도 만들어 봤다. '자기소개부터 시작할까요?'


남녀간에도 어색한 썸이라는 게 있듯이 주인장과 손님간에도 그런 게 있을라나? 처음 집에 올 땐 엄청 친절히 맞이해 준다. 코트도 받아주고, 마실거리도 챙겨준다. 그러곤 난 부엌앞 의자로 가서 멀뚱히 앉는다. 손님 입장에선 처음 보는 남의 집에 왔으니 주인과 얘기도 해야할 것 같은데 옆에 다른 손님은 책을 읽고 있는 걸 보니 부러 말을 시키는 분위기 같지도 않고. 그런데 느닷없이 주인장이 자기소개를 하란다.


기껏 자기소개를 했더니 다시 책 보란다. 그래 뭐 도서관이니 책을 봐야지. 하며 책장의 책들을 뒤져본다. 은근 재밌는 책이 많네. 아. 근데 오줌이 마렵다. 여기 화장실 써도 되겠지. '저기요 화장실' 물어보고 가보니 진짜 가정집 화장실이다. 손님 온다고 부랴부랴 청소한 티가 그득하다. 근데도 찌린내가 좀 나는 것도 같고.


거실에 앉아 멍하니 주위를 둘러보니 아직도 신기하다. 저 주인장은 어떤 사람일까? 내 옆에서 책보는 저 사람은 여기 왜 왔을까? 그보다 나는 왜 여기 왔을까? 아직도 모르겠다만 이런 어색한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은 편안한 가정집의 안정감이 괜찮네. 씁쓸한 녹차 뒤에 이어지는 초코렛 맛이랄까?



만족도

멘토링이건 도서관이건 방문하신 대다수의 손님들이 만족하셨다. 흔치 않은 구조와 분위기를 풍기는 거실이 개방된다. 게다가 멘토랍시고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잔소리도 해주고, 거실의 장서도 마음껏 보라고 내준다. 커피와 간식거리도 무한 제공. 싫어할 이유가 없다.


이게 문제다. 어필되는 포인트가 여러가지다 보니 효과 분석 차원에서 어떤 점이 가장 어필했을까 가늠하기가 쉽지 않다. 설문을 통해 장소, 콘텐츠 그리고 호스팅에 대해 따로 의견을 취합했으나 모두 높은 만족도를 기록해 우위를 점치기 어렵다. 모두 잘해도 문제네.


아이템 두 가지로만 진행했기 때문에 섣부른 판단일 수 있겠으나, 어떤 아이템이건 간에 남의 집에서 주인장과 교감하며 콘텐츠를 즐기고 처음 보는 옆손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경험의 총체가 만족감으로 이어졌다고 생각한다. 남의 공간이 주는 낯선 따스함. 그것을 소비한 것이다.


wherever

지리학적 접근성 측면에서 연희동 브라더스는 꽝이다. 일단 연희동이라는 동네 자체가 지하철역도 없을 뿐더러 주차할 공간도 마땅치 않다. 게다가 연희동 브라더스는 그런 연희동 내에서도 깊숙하게 숨어있다. 탓에 기획단계에서 이런 외진 곳에 사람들이 찾아올까? 싶었고 의지가 있더라도 잘 찾을 수 있을까 미심쩍었다. 근데 잘만 찾아오더라.


콘텐츠가 소구했건, 남의 집이라는 공간이 소구했건간에 사람들의 호기심과 참여욕구가 발동하면 어디에 있건 찾아간다는 걸 체험했다. 모바일 지도의 역할도 한몫했다. '찾아오는 데 힘들진 않았어요?' 라고 물으면 다들 '**앱 지도 따라오니 쉽던데요?' 란다.


검증되지 않은 가설이지만 찾아오기 힘든 공간이라는 것이 주는 도전감 비스무리한 것이 있지 않을까? 싶었다. 특히나 연희동처럼 골목길이 구비구비 꼬여 있고 '동네'느낌이 물씬 풍기는 장소를 헤매며 목적지를 찾아가는 재미가 여행지에서의 그것과 비슷했으리라 짐작해 본다.


비효율

어렸을 때 비디오가게 아저씨를 보면 항상 부러웠다. 저 아저씨는 하루종일 영화를 보면서 돈을 버니 참 좋겠다고. 직장인들의 로망인 카페 사장 역시 향기로운 커피향 맡으며 글을 끄적이거나 책을 보다가 손님을 맞을 수 있으니 좋겠다 싶었다. 남의 집 도서관장을 맡으며 하루종일 책을 보며 한가지게 손님과 잡담을 나누는 여유만땅 하루를 기대했으나 여유는 개뿔.


멘토링의 경우, 2~3시간 안에 식사와 멘토링을 집중적으로 진행했다. 시간 활용면에선 나름 효율적였다. 근데 에너시 할당면에선 글쎄. 멘티들을 보내고 나서 지친 몸을 이끌고 설거지까지 할라치면 '내가 왜?'라는 생각도 조금. 아주 조금 들기도 한다.


도서관의 경우 6시간에서 9시간까지 공간을 운영해야 하니 시간 활용면에서 비효율 대마왕였다. 기획 단계에선 사람들이 책 볼때 나도 책을 보면 되겠지 싶었으나 주인장 입장에서 신경쓸 일들이 적잖았다. 음료, 다과를 주기적으로 체크하고 채광에 따라 노래 선곡이 적당한지도 신경을 써야했다. 그외에 이것저것 챙기다 보면 하루가 홀라당 지나있다.


부엌에 앉아 뭔가 했으나 무얼 했는지 모르겠다.


다양한 사람들

멘토링이건 도서관이건 내 만남의 기럭지를 늘려주어 좋았다. 수의사, AI 개발자, 러시아어 교수님 등 이거 아녔으면 평생 못만났을 다양한 업계(?)분들을 만났다. 심지어 그들이 찾아와 주었으니 더욱 고마울 따름이다.


다양한 사람들의 다채로운 취향은 책에서 뭍어났다. 당연한 얘기겠지만 관심을 갖고 손에 쥐는 책들이 전부 달랐고 일관성있었다. 만화에 관심있는 손님은 만화만 보고, 잡지만 쌓아놓고 보는 분도 있고, 그림책만 파는 이들도 있다. 그걸 옆에서 보고 있자니 각자의 우주가 연상된다. 저 사람 머리속엔 네모가, 이 사람은 세모.


이번에는 각자의 세계에 온전히 빠지는 경험을 주려고 노력했으니 다음번에 도서관을 또 오픈하게 되면 이들이 충돌하는 경험도 연출하고 싶다. 독서토론, 협독 등등의 워딩으로 같이 책읽고 얘기하는 모임들이 종종있던데. 난 한 공간에서 다른 책을 읽고 여럿이 각자의 이야기로 떠드는 그런 우주 대혼돈의 카오스를 야기하고 싶다.


설레임

프로젝트 전날이면 항상 설렌다. 퇴근길에 슈퍼에 들러 간식거리를 사고 맥주를 냉장고에 채운다. 손님들에게 민망하지 않을 정도의 청결을 유지하기 위해 청소도 한다. 청소기를 돌리고 그렇게 안하던 걸레질도 한다. 역시 청소는 손님이 와야.


당일 아침에 눈을 뜨면 설레임이 긴장감으로 스위칭된다. 안오면 어쩌지? 와서 실망하면? 혹시나 싶어 참석자들에게 옐로아이디로 카톡을 보낸다. '남의 집 방문하기 좋은 날씨네요!!' 춥기만 하고만 무슨.


시간이 되면 마당의 몽글이가 짓기 시작한다. 평소엔 몽글이의 짓는 소리가  그렇게 시끄럽다가도 이럴 땐 반갑다. 님이 오신게다. 초인종 소리가 울리고 인터폰을 들어 소리친다. '연희동 브라더스입니다.'


기사벨류

페이스북으로 메시지를 받았다. '머니투데이 문화부 기자입니다. 남의 집 도서관하시는 거 보고 궁금해서요.' 로 시작된 메시지의 요는 취재요청였다. 첨엔 이게 기사 벨류가 있나? 싶어 긴가민가했으나 기자와 얘기나 나눠보자는 심산으로 통화를 했다.


도서관은 남의 집 프로젝트의 일환이며 이는 직장 생활 이후를 준비하는 주말 프로젝트라고 소개했다. 그랬더니 '오! 그러면 직장을 다니며 직장 이후를 준비하는 컨셉의 인터뷰로 잡으면 되겠네요' 라고 기자분이 제안했다. 첨엔 괜찮네. 싶었다가 다시 생각해 보니 아니다 싶었다. '좋은 제안인데요, 제가 당분간 직장은 다닐 생각인데 그렇게 나간 기사를 제 직장 상사들이 보면 제 자리가 위태로워집니다.'


대신 거실의 재구성이라는 기획기사로 잡아서 그 사례의 일부로 소개하는 것으로 방향을 틀었다. 마침 해당 주말에도 남의 집 도서관을 운영할 예정여서 기자분을 초대해 직접 남의 집 도서관을 만끽하시게 했다. 2시간여 도서관도 즐기고 나와 손님들 인터뷰를 진행해 '책읽고 노래듣고 집에서 즐기는 사람들' 이란 헤드라인의 기사가 났다. 기자분의 취향였는지 아니면 정말 기사 벨류가 있었는지는 모르겠으나 외부의 관심을 받으니 남의 집 프로젝트에 대한 자신이 붙었다.


머니투데이 2.22일자 문화면에 소개된 남의 집 도서관


수익모델

해보니 이대로 돈되긴 글렀다. 입장료, 음료값 명분으로 어느정도 받아볼 순 있겠으나 내 인건비도 안빠진다. 이게 제일 고민이자 딜레마다. 찾아주는 이들이 만족하고, 이 프로젝트에 대한 주변의 반응이 (폭발적이진 않지만) 좋은편이나 돈이 모여들 여지가 요원하다. 아직은.


게임사업에서 잘 써먹는 '부분 유료화' 는 규모면에선 글렀고, 전통적인 오프라인의 수익모델인 건당 과금은 객단가가 너무 낮다. 손님들이 가져오는 선물을 '선물 경제학'으로 풀어볼 수 있을까 싶어 그 재미없어 보이고 비싸기까지 한 '증여론'이라는 고전까지 구매해서 읽었으나 아무런 인사이트를 받지 못했다. 게다가 손님들이 선물을 사올 확률이 50%도 안된다.


남의 집 프로젝트의 근간이 되었던 수익화 경험에의 갈증 은 여전하다. 어느새 남의 집 프로젝트에서 한 발치 물러난 은재형이 그런다. "이걸로 돈벌긴 쉽지 않겠어." 근데 난 뭔지 모르겠으나 뭐가 있을 것 같은 무언가가 나타나 줄 거라 믿으며 다른 아이템들을 남의 집에서 계속 시도해 보련다. 뭐라도, 하나만 걸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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